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작성일 : 14-07-20 12:1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교회 교육개혁을 제창한다 (4)


현대 교회교육 방법의 관습화를 단호히 경계한다. 관습은 일정한 사회에서 오랫동안 전통을 따라 인정되고 습관화된 질서나 규칙을 말한다. 따라서 관습은 대중의 의견이나 편의(便宜)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져 불문율(不文律)의 하나인 관습법으로까지 발전한다. 이와 같은 관습은 인본주의에 기초한 것으로 신본주의에 반하는 결과를 낳는다. 현대 교회교육 방법은 다분히 관습에 젖어있다. 성경은 이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인간의 타락성은 관습에 젖어 안주하려는 본능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편의에 의한 관습을 만들어 그 속에 함몰되어 살아간다. 관습화된 교회교육 방법을 개혁해야 하는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현대교회는 관습에 의해 체제를 갖추고 제도와 형식을 만들어 의식을 집행하는 인위적인 종교집단으로 둔갑했다. 그리고 이권에 혈안이 되어 교권까지 행사하는 정치집단으로 변절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집단에 안주하며 거짓 안식과 평안을 누린다. 성경적인 진정한 교회는 관습에 의한 종교 체제 및 제도와 인위적 형식에 의한 의식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성령 안에서 성경을 깨닫고 머리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참 평안을 누리며 그의 지체로서 받은 은사 따라 사는 삶이 있을 뿐이다.

교육방법에 있어서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가르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로 남는다. 곧 교육방법 모두가 관습화되어 있는 것이 심각한 문제이다. 목사만이 성경을 교회당에서 주일 예배시간에 평생토록 가르쳐야 하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있다. 물론 목회 훈련생이나 전도사가 각종 기도회나 구역모임에서 가르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이러한 교육방법은 모두 타성에 젖은 관습에 지나지 않는다. 일단 누구나 교회에 등록하면 관습에 따른 교육을 받으며 종신토록 목사의 제자로 살아가게 된다. 결과는 제반 교육에 잘 참여하는 교인일수록 철저히 타성에 젖은 노예가 되어간다는 사실이다.

교회교육은 대부분 목사의 고유권한으로 되어있다. 부목사나 전도사 및 교회학교 교사들은 목사의 지시를 따라 교육에 종사한다. 이들은 철저히 목사의 검증을 받아 임명된 자들이다. 그러기에 목사의 규제를 받아 교육활동에 위축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문제는 목사마다 객관성을 결여한 자기만의 고유한 주장과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절대 진리인 성경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파생한 문제이다. 목사의 주관성이 강하게 작동하면 할수록 성경 진리의 객관성은 그만큼 사장(死藏)될 뿐이다. 주관적인 견해가 강한 목사의 교육활동은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따라서 교단은 물론 교회마다 성경을 사사로이 풀어 그 주장하는 바가 모두 다르게 나타난다.

현대교회 목사들은 주관적인 상식으로 짜 맞춘 설교문이나 해마다 바뀌는 공과들을 주입식 방법으로 가르친다. 교육내용의 체계적이며 논리적인 일관성이나 객관성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의 교육이 교회 시설 확장이나 양적인 발전을 위한 충성과 봉사를 독려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피교육자의 신앙상태나 지식정도는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주관적 상식과 요구 조항으로 짜맞춘 목사의 설교를 하나님 말씀으로 수납하도록 강요한다는 데 있다. 뿐만 아니라 성도가 일방적인 목사의 설교를 아무런 비판없이 수납해야만 한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 교회교육은 주로 교회당을 중심으로 시행했다. 실은 교회당이 교육보다는 제전(祭典) 중심의 의식을 집행하는 처소로 사용되었다. 교회당이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성전이 아니고 성경을 가르치며 성도의 교제를 위해 편의상 마련한 처소일 뿐이다. 성경은 교회당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어디서라도 다양한 방법으로 가르칠 수 있고 배울 수 있다. 누구라도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자는 깨달은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차서를 따라 가르칠 수 있다. 따라서 교회당 강단을 신성시하여 강단권을 오직 목사에게만 부여하는 것은 관습화한 제도의 폐습일 뿐이다.

현대교회 교육기간은 거의 무한정으로 평생동안 끝없이 이어진다. 교인들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목사의 제자로만 살아야 하는 셈이다. 한평생 열심히 배워도 성경을 모르고 세상을 떠난다. 바른 목사는 제자를 가르쳐 형제가 되게 할 뿐 아니라 복음의 동역자가 되도록 한다. 곧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같은 지체로서 살아가도록 한다. 성경은 평생동안 배워도 알 수 없는 어려운 내용이 아니다. 주제가 단일한 진리 체계이기 때문에 알고 보면 매우 쉽고 분명하다. 따라서 성경을 분명히 깨닫게 되면 누구나 믿어질 뿐 아니라, 자신이 받은 은사를 따라 살게 된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생활의 근본원리이다.

성경은 어느 누구도 성도를 자신의 제자로만 살게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겨우 몇 년 신학을 하고 선생의 자리에 앉아 평생 성도로부터 존경만 받는 것 역시 악습이 된 제도의 폐습이다. 성도는 근본적으로 사람의 제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중매자는 신랑에 대한 정보를 신부될 자에게 속히 잘 알려서 결혼이 성사되도록 노력한다. 중매자가 신부될 자를 오랫동안 만나는 것은 중매자의 도리가 아니다. 교회교사란 성경을 짧은 기간에 간명하게 가르쳐 그리스도의 신부로 살아가도록 하는 자이다. 교사 자신에게 충성하는 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신부가 되도록 중매하는 자이다. 예수님과 바울은 제자들을 가르칠 때, 일 년 반에서 삼 년을 크게 넘지 않았다. 현대교회 성경교사들의 평생 제자화 교육의 실태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결국 현대교회 교육방법은 관습화된 제도의 폐습임이 분명하다. 성경을 가르치는 임무가 오직 직업적인 목사의 고유권한인 것이 그러하다. 그리고 주관적인 상식으로 짜 맞춘 설교문이나 해마다 바뀌는 공과들을 주입식 방법으로만 가르치는 것도 그러하다. 그뿐만 아니라 교회교육이 주로 교회당을 중심으로만 시행되거나, 교육기간이 같은 대상에게 무한정 계속 이어지는 것이 그러하다. 이 모든 관습화된 교육제도의 폐습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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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재)성경신학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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