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게 하신 여인, 룻
성경 속의 인물 (14)
인종을 뜻하는 ‘genos’와 살해를 뜻하는 ‘cide’가 결합된 제노사이드(genocide)란 특정 집단을 멸절시키려 자행된 대량 학살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180명 남짓의 군대로 8만여 병력을 버틴, 잉카 제국을 무너뜨린 피사로의 불가사의를 포함한 유럽의 신대륙 ‘학살’은 불과 1세기 동안 아메리카 인구의 약 90퍼센트를 몰살시켰다. 나치의 유대인 탄압, 200만을 참살한 폴 포트의 킬링필드, 코소보 인종 청소 등의 잔혹사는 성경에서도 발견된다. 율법을 지킬 이유를 밝히신 신명기 7장은 언약의 땅 진입 시 가나안 일곱 족속을 필히 진멸(殄滅)하되 불쌍히 여기지 말 것과 통혼치 말 것 등의 지시로 시작되며, 여호수아는 무릇 호흡이 있는 자는 진멸(수 10:40)함으로 이를 충실히 이행한다. 이에 모 철학자는 ‘사막의 깡패 하나님’이라 표현을 서슴지 않았고, 마르시온은 구약의 하나님은 폭력과 복수의 신이나 신약의 하나님은 구세주를 보낸 사랑과 정의의 신이라며 신구약의 분리를 역설하기도 하였다.
성민(聖民) 이스라엘로 하여금 다른 신을 섬기게 할 이방과의 혼인을 금지하셨음을 떠올린다면, 모압 여인과 결혼했으며, 그 모친은 가나안 태생의 기생인 보아스를 그리스도 세계(世系)의 핵심인 다윗의 증조부로 배치하심은 일견 모순된 섭리로 여겨진다. 일례로 독일의 바이저(A. Weiser)는 룻기의 기록 연대 산정에 있어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룻 1:1)라는 성경의 자증을 따르기보다는, B.C. 458년 2차 귀환 이후 잡혼(雜婚)을 제거한 에스라의 정책 및 느헤미야의 개혁에 반대한 세력이 그 이후 기록한 것으로 간주한다. 애굽의 절망에서 건져내신 이름을 기억하고 경외케 하시려 성별된 모습을 당부하셨으면서, 왜 한편으로는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줄기에 룻을 비롯한 이방의 피를 섞으셨던 것일까.
사사기의 피비린내 서린 굴곡을 지나면 종족과 나이를 초월한 룻과 보아스의 잔잔한 사랑 이야기가 등장한다. 남편 사후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리라 고백하며 고향 모압이 아닌 낯선 땅을 택한 룻의 순수함과 선량함에 호감을 가졌던 보아스는 그녀의 시부 엘리멜렉 가문의 ‘유업 무를 자(룻 2:20)’였다. 구약 시대의 친족 구속자, 곧 고엘(goel)의 역할이란 가난으로 팔린 재산의 회수, 피살에 대한 복수, 계대(繼代) 혼인이 불가한 과부의 돌봄 등이었다. 발치 이불을 들고 야밤에 보아스의 곁에 누워 프러포즈하듯 다가온 룻의 행동은 언급된 임무와도 관계된 것이었다. 보는 이 없었으나 서툴게 다가온 한참 손아래의 룻을 보아스는 호통이나 욕망으로 대하지 않았다. 고엘이 될 더 가까운 친족이 있으니 그의 의사가 없다면 책임지겠다 맹세하는 사려 깊음, 새벽녘 룻의 체면을 염려해 타인의 시선까지 확인한 뒤 보리쌀을 들려 보냈던 그는 약자를 존중할 줄 아는 따뜻한 가슴의 인격자였다.
도덕적 교훈의 내용이 목적이라면 예수 탄생의 계보에 다말, 라합, 룻, 그리고 우리야의 아내까지 결코 순정치 못한 이름을 넣으심은 어떤 설명으로도 궁색할 뿐이다. 유다로부터 다윗을 거쳐 그리스도에 이르게 하신 구조적 의미, 그 가운데 룻과 같은 이방여인을 참감람나무에 접붙이신 값없는 은혜의 영광 계시가 신구약의 일관된 맥으로 이어짐을 이해할 때 모든 성경을 기록하신 하나님의 감동(딤후 3:16)이 자리할 것이다. 니체는 신약의 계보를 대할 때 추잡하여 장갑을 끼지 않고는 만질 수 없다 하였으나, 아름답지 못한 그 계보에서 태어나 우리의 추악함을 걸머지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은 죄인의 눈을 가진 자에게 모든 것을 견디고 승리케 하는 지상에서 가장 강한 힘이 되게 하시리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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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이재규 집사(자유기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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