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의한 발로
성경적 봉사관
Ⅱ. 봉사의 동기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9:8)
대부분의 인생은 공허의 늪에 빠져있다. 그래서 종교나 일, 취미생활에 몰두한다. 어떤 사람들은 공허의 무력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봉사활동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봉사는 대리만족이나 상실감을 채우기 위한 활동이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성질의 봉사는 지속력이 떨어지며 욕망을 완전히 채워줄 수 없다.
봉사의 동기는 활동의 경중을 떠나 매우 중요한 의의가 있다. 동기부여는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성취도가 다르다. 사람들은 성취욕, 재물, 권력, 자아실현 등의 가치판단에 따라 목표를 설정하고 동기를 부여한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는 인간의 행동을 동기화 시키는데 역부족이다. 인간의 마음을 채울 수 있고, 채워진 힘에 의해서 봉사하게 하는 동력을 살펴본다. 보편적인 봉사의 동기는 다양하다. 인간을 사랑하고 사회적인 약자에게 구원의 손길을 펴고자하는 인도주의적인 정신과 죄책감 및 사회적 갈등 해소를 위한 방어수단 그리고 심리적인 안정이나 자긍심을 확보하기 위한 방책 또는 지식 확대나 경험 체득을 통해서 스펙을 쌓기 위한 수단 등이 있다. 이와 같은 동기부여는 인간의 사회적 감정이나 동정심 또는 목표지향적인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목적을 달성하게 되면 멈추게 된다.
기독교 봉사의 동기는 사랑이다. 기독교적인 사랑은 인간의 이기적인 자기사랑이나 인간만을 위한 이타적인 행위가 아니다. 기독교 봉사의 원천은 숭고한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출발한다. 보편적인 사랑은 상대적인 관계를 통해서 형성되기 때문에 상대방의 희생이나 노력이 요구되지만 기독교의 사랑은 절대적인 신(神)과의 관계를 통해서 공급되기 때문에 은혜의 감동만이 배가된다. 이와 같은 사랑에 의한 봉사의 동기만이 지속성이 있으며 생동감이 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
예수님의 구속사역은 인간의 구원을 넘어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하는데 있다. 은혜의 본질은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사랑의 대상에게 복을 예정하셨고, 인류의 시조인 아담을 창조하시면서 복을 주셨으며,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전하게 성취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복을 실현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새 생명을 공급해 주시고, 희락과 평강(롬 14:17)을 누리게 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창세전부터 시작되었으며, 인간의 행동과 무관하게 형성된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알게 하기 위해서 증거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그리스도를 통해서 복 주시기로 선택하신 것에서 시작하여, 아담에게 복을 주심으로, 노아를 구원하여 복을 주심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복을 주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로 말미암아 사망한 자들에게 새 생명을 주시며 의롭다고 인정하신 것이다. 봉사의 동기는 창세전부터 예비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데서 시작된다.
하나님의 불변적인 사랑의 확신으로만 지속 가능
인간의 사랑은 가변적이기 때문에 변질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이므로 어떠한 여건 속에서도 변치 않는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은 아담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상태에서 영생과를 먹지 못하게 하시고 가죽옷으로 보호하심으로 나타난다. 타락한 인류를 물로 심판하심에서 노아의 식구들은 방주를 통해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애굽의 문화에 종속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예생활에서 해방시키신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는 죄로 인해 죽은 자들을 세상 끝날까지 구원하신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은 스스로 세우신 절대적인 언약에 기초해서 실현되기 때문에 불변적이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을 보호하신 이유는 절대적인 언약에 근거하기 때문이고(창 1:28), 노아를 구원하신 이유는 노아에게 일방적으로 베푸신 은혜 때문이며(창 6:8),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킨 이유도 열조와 세운 언약 때문이고(12:1~2, 17:6), 예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이유도 창세전 세우신 영원한 언약 때문이다(엡 1:4). 봉사는 하나님의 불변적인 언약과 함께 사랑의 확신으로만 지속가능하다.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에 대한 감동의 발산
상대적인 관계는 쌍방 간의 조건적이나 산술적인 계산이 우선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행동이 요건이 되거나 결과로 작용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사랑하심은 무조건적인 사랑의 성질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조건과 대가를 요구하지 않으며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이다. 그래서 인간을 창조하기 이전부터 사랑하심이 하나님의 기쁨이다. 야곱은 태중에서부터 사랑하셨고, 또한 인간을 죄악과 무능한 상태에서 부르시고 일하게 하신다.
노아가 홀로 방주를 제작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한 결과이다(창 6:8). 하나님의 물 심판에 대한 경고가 있었지만 모든 인류는 불신하고 더욱 강포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는 끝까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심판을 대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부르신 것은 살인자가 되어 미디안 광야에서 처가살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사명을 분부하심도 세 번이나 부인한 사건 이후이고,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신 것도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있을 때였다.
고래도 칭찬하면 춤을 춘다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사랑에 감동하게 되면 무슨 일이든 그분을 위해서 살아가게 된다. 바울은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라고 증거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는 숭고한 정신과 사역은 단순한 감정이나 순간적인 결단이 아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사랑에 감동됨으로써 나타나는 결과이다. 기독교적인 봉사의 동기는 산술적인 계산이나 자기만족을 얻기 위한 이기심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깨달음과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의 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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