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2小先知書에 뼈 있나?
12소선지서는 호세아-요엘-아모스-오바댜-요나-미가-나훔-하박국-스바냐-학개-스가랴-말라기서이다. 이처럼 12소선지가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제목에서의 뼈는 당연히 중심내용이나 일의 핵심 또는 속뜻을 의미한다. 성경전체를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연구하고자 할 때, 이 제목의 의미는 매우 크게 다가올 것이다. 이렇게 큰 내용이나 의미를 여기서 제기하는 것 자체가 이 글의 주된 목적이다.
이 12소선지서는 구약성경을 마무리하고 있는 부분이다. 특히 말라기서가 구약성경의 마지막에 붙어 있는 의미는 대단히 크다. 그것은 말라기서의 내용자체가 그것을 입증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말라기서의 3~4장에서는 언약의 사자 곧 메사야가 올 것을 강하게 증거하고 있다.
또 말라기서의 마지막 문장의 바로 앞에서 메시야에 앞서 올 세례요한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방향성에서 12소선지서를 연구하고 이해해 가고자 한다면, 그 의미는 구약성경 전체가 여호와의 언약이라는 것과 절대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이 12소선지서는 크게 세 시대(북왕조 패망시대와 남왕조 패망시대와 전 제사 회복시대)에 걸쳐서 예언되었다.
이 시대의 남왕조 패망과 전(殿) 회복 사이에 바벨론 70년 포로기간이 들어 있다. 이 예언시대의 배경에서 바벨론에 70년 포로가 된 기간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 의미는 이 12소선지서 앞의 대선지서들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시대 배경과 그 내용 자체의 뼈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1)예언 시기상의 뼈
구약성경의 선지서(사~말)에는 시작하는 글에서 대부분 그 예언의 시기를 밝혀주고 있다. 그 예언의 시기는 펼쳐지는 내용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12소선지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 예언 시기는 남쪽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가 된 70년을 기준으로 그 전과 그 후로 되어 있다. 바벨론에 포로로 사로잡혀 가기 이전에 호세아서부터 스바냐서까지 예언되었다.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학개서부터 말라기서까지 예언되었다.
①포로기 이전
호세아서는 시작하면서 “유다의 왕들인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하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다(1:1바른 성경)”라고 밝히고 있다. 아모스에서는 시작하면서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의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묵시받은 말씀이라”고 밝혔다. 미가서의 시작하는 글에서 “유다 열왕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하였다. 스뱌냐서의 처음 문장에서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시대에 스바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하였고, 마지막 문장에서 “……너희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로 천하 만민 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성경 자체가 예언한 시기를 적절하게 밝혀 주고 있다.
②포로기 이후
스바냐서 다음의 학개서에서 그 예언 시기를 확인할 수 있다. 그 시작하는 글에 “다리오 왕 이년 유월 곧 그달 초하루에”라고 아주 자세히 밝히고 있다. 다리오 왕 이년은 B.C. 521년이다. 이와 같은 그 해의 6월 21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학개에게 임하였고(학2:1) 또다시 그 해의 9월 24일에 임하였다(2:10,2:20). 학개 다음의 스가랴서에서는 시작하면서 다리오 왕 이년 팔월을 제시하였다. 또 그 해의 11월 24일을 밝혔다(슥1:7). 그리고 바벨론의 70년을 마쳤다고 증거하고 있다(슥1:12, 7:5). 말라기서는 대개 주전 400년경 전후에 기록되었다. 포로에서 돌아온 제사장들(말1:6, 2:1, 3:3 )과 성전에 관한 증거(말1:10, 3:10)와 등등이 있다.
2)예언 내용상의 뼈
구약성경의 선지서를 예언한 시기와 그 내용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바벨론 포로기를 중심으로 그 전후에 예언된 이 12소선지서는 당연히 그 시대와 관계 깊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북왕조 패망시대에 예언된 호세아서부터 미가서까지는 북왕조와 남왕조의 패망과 그 회복 그리고 열방과 선민의 결국이다. 남왕조 패망시대에 예언된 나훔서부터 스바냐서까지는 열방에 대한 보수와 유다에 대한 징계와 그 회복에 관한 것 등이다. 망하여 가는 시대에 하나님 여호와의 나라는 영원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포로에서 돌아온 성전과 제사 회복시대에 예언된 학개서부터 말라기서까지는 성전과 제사 회복에 관한 것 등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 마음이 여호와에게로 돌아올 것을 강조하고 있다.
①여호와의 영원한 백성
여호와의 영원한 백성이라는 이 소제목은 부분적으로는 호세아서(14:1)와 미가서(4:7)와 스냐냐서의 마지막 문장(3:20) 등에 근거한 것이다. 또 전체적으로는 북왕조 패망시대와 남왕조 패망시대에 예언된 내용의 개요에 근거한 것이다. 이것은 호세아서부터 스바냐서까지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어가 된 셈이다. 이것의 속뜻은 하나님 여호와께서 정한 백성은 모든 세상 나라의 흥망성쇠 속에서도 영원하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속뜻은 호세아서부터 스바냐서까지에서 전체적이며 체계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체계적인 의미는 그 앞의 4대선지서와 원리적으로는 동일하다. 특히 바로 앞의 다니엘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다니엘서의 원리적인 의미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나라를 멸하고 성민나라를 세우신다는 것이다. 이 취지는 다니엘이 바벨론의 포로기에 예언한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것이다.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가 멸망되어가는 시점에 예언된 호세아서부터 스바냐서까지의 이 내용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비록 세상 나라에서 망하고 포로가 되어도 그 존재의 본질은 영원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면서 그 분의 전(殿)을 회복하시며 제사 회복의 예언 섭리를 하신다.
②만군의 여호와의 개혁
이 만군의 여호와의 개혁이라는 소제목은 부분적으로는 학개서(1:14)와 스가랴서의 마지막 부분(슥14:20~21)과 말라기서의 마지막 4장 등에 근거한 것이다. 또 전체적으로는 전 제사 회복시대에 예언된 내용의 개요에 근거한 것이다. 여기서 성전 회복은 학개서부터 스가랴서까지이고 제사 회복은 말라기서의 내용이다. 이러한 내용의 개요를 기초로 삼아 ‘만군의 여호와’와 연계하였다. 이 ‘만군의 여호와’는 구약성경에서 이 학개서부터 말라기서에 가장 자주 나오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전과 제사를 회복하는 주관자를 강조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만군의 여호와’는 학개서부터 스바냐서까지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어가 된 셈이다. 이 ‘만군의 여호와’가 구약성경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부분에서 자주 사용된 것은 구약성경 전체의 논리적인 흐름과 분명히 관계가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개혁의 정신은 회복이나 심판과 그 의미가 상통하고 있다. 성전 회복을 이상과 말씀으로 비교적 길고도 자세하게 예언한 스가랴서는 그 명칭 자체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선지자의 이름인 스가랴는 ‘여호와께서 기억하시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구약성경의 마지막 인 말라기서의 끝 부분에서 모세의 율법을 기억하고 마음을 돌이킬 것을 강조하고 있다. 만군의 여호와의 개혁은 바로 그 분의 언약을 이루시는 것이다.
(이 글은 기본적으로 <박용기 저, 진리의 말씀사, 2008~2009, 성경강론 제12~13권>을 참고하여 문학성과 시사성을 가미하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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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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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땅과 때를 택할 수 있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