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1) - 이야기를 열며
90년대 문민정부 당시 ‘장로 대통령’이 출석하던 모 교회의 담임이자 청와대 예배의 인도자였던 신성종 목사의 『내가 본 지옥과 천국』이 최근 화제가 되었다. 가벼이 지나치기 어려웠던 건 펄시 콜레나 스베덴보리 등 이단 시비의 인물이 아닌 총신대 신대원장을 역임한 예장 합동 측 대표적 원로 학자의 견문담이기 때문이었다. 천국의 실재(實在)를 묻는 장모님의 질문에 신학적으로는 알지만 마음의 확신이 없었던 필자가 ‘천국을 보고자 하는’ 금식의 응답으로 8일간 겪은 환상을 담은 이 책에서, 소설의 형식임을 서두에 밝히고 있더라도 과연 성경적 천국관을 담은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가시질 않았다.
층마다 고통이 다른 지하 3층 4방(方)의 지옥은 그렇다 쳐도 서로 공정히 평강을 나누며 누리는 즐거움이 천국(롬 14:17)임을 밝히는 바울의 변(辯)이 무색하게, 그곳에도 계급은 존재하는지 하나님 보좌를 중심으로 12줄로 배열된 천국의 구조가 소개된다. 그 중에서도 첫째 줄은 12제자와 순교자요 둘째 줄은 선교사와 복음 전도자였기에 참된 상급을 위해 70대의 노구를 이끌고 캄보디아 및 인도 등 열악한 지역으로 섬김의 삶은 걷는다는 고백은 얼핏 감동으로 비칠 수도 있겠으나, 이는 필자 본인이 몸담던 장로교 개혁신앙의 비조(鼻祖) 칼빈이 밝힌바 모든 삶의 영역에서 오직 주의 영광만이 드러나야 한다는 가르침과 배치되는 결과지상주의 내지 공로주의라는 지적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것이다.
성경 속의 특정 인물을 주제로 거론하는 것 역시 자칫 전통 신학의 한계인 인간의 자유의지론 혹은 행위강조로 빠져들 위험이 다분히 도사리고 있다. 그럼에도 성경 속의 인물을 이야기하려는 까닭은 특별계시로서 통일된 일관(一貫)의 구조를 가진 성경의 의미 분석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을 배우는 지식의 말씀이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그 성경 속에 등장하는 각 인물들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섭리 방법으로 감동케 하시고, 변화하게 하셔서, 거룩히 찬양하며 살도록 하신 생활의 말씀을 오늘의 우리 각자를 비추는 거울처럼 되새겨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기신, 한없이 낮아진 공감(共感)의 모습으로 섬기고 사랑하신 예처럼 서로 섬기고 사랑할 것을 가르치셨음에도 누가 천국에서 높은 자인지를 다투던(눅 22:24) 세속적 가치관의 12제자들의 모습은 스스로의 의지적 결단으로 바뀐 것이 아니었다. 달마의 가르침을 얻고자 눈발 날리는 혹한의 밤을 무릎 꿇어 지새우다 종국엔 하얀 눈밭 위에 서슴없이 자신의 왼팔을 잘라 붉디붉은 결의를 보인 제자, 중국 선종 2조(祖) 혜가(慧可)처럼 절실한 결의를 갖고 따른 예수의 제자들이 있었던가.
통행세를 걷고자 세관에 앉아 있다가, 호구지책(糊口之策)으로 물고기를 낚던 도중, 아니면 그저 친구 소개로.. 따라나선 제자들은 메시아의 기적을 생생히 목도하고도 확신에 이르지 못했다. 겟세마네에서 처절한 피땀을 짜내며 기도하던 스승에게 제자 일동은 깊은 잠으로 화답하였다. 그들 중의 수제자는 언제는 감옥도 죽음도 주와 함께 하리라 강변하더니(눅 22: 33) 고작 한 여종의 추궁에 세 번이나 뻔뻔히 스승을 부인(否認)하였다. 피 마르는 골고다에서의 마지막을 보내던 스승의 곁을 목숨으로 지킨 제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 배은(背恩)의 제자들이었음에도 예수께서는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요 13:1) 보듬어 사랑하셨다.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을 닫고 숨어있던 제자들, 구약의 예언대로 이루신 영원한 부활의 몸을 보고도 무서워 떨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친히 손과 발을 보여주시고,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위로부터 능력을 입혀줄 것을 축원하시며 그들의 마음을 녹여주셨다. 제자들로 하여금 치졸한 세속적 가치를 버리고 당당한 전도인의 삶과 순교자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했던 원동력은 단연코 인간의 의지적 결단이 아니었다. 그들의 수없는 허물을 끝까지 덮어주신 사랑의 힘(고후 5:14)이 과거 신앙의 선배들의 삶을 변화시켰으며 오늘날 우리 성도(聖徒)의 삶도 변화시켜 가시는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왜 성경에서 12제자와 사도를 포함한 각 성경 기자(記者)의 순교에 대해 철저히 침묵하고 있는지를 직시해야 한다. 카톨릭에서는 그들을 성자(聖者)로 섬기며 나아가 그들의 공로를 나누어 받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으나 순교보다 더한 인간의 수고일지라도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고전 15:10)인 것이다. 이러한 은혜의 사랑으로 변화된 성경 속의 인물들 가운데 (마가나 누가는 그 명칭을 생략했음에도) 스스로 당당히 수치스런 ‘세리’임을 밝혔던(마 10:03) 마태의 삶을 다음 글에서 조명해 보고자 한다.
이재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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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이재규 집사 (장안중앙교회) |
<남자 그리고 여자에 대한 단상> |
말씀의 힘<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