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4) - 은혜 아래 행복했던 자, 바울 (上)
4세기 초 순교한 가톨릭의 성녀 데클라의 카타콤에서 사도 바울로 추정되는 프레스코화가 최근 발견되었다. 복원을 담당한 전문가들은 현존하는 여러 초상화와의 유사성 등을 근거로 바울의 모습임을 확인하였는데, 외경 <바울과 데클라 행전>에도 붙은 양 눈썹과 벗겨진 머리, 매부리코 등 상당 부분 비슷한 묘사가 전해진다. 기록을 더 참조하자면 얽은 얼굴과 작은 키에 굽은 등을 가진 그는 심한 안질(眼疾)에 더해 수시로 간질병과 두통에 시달렸으나 활기차고 매력이 넘쳐 ‘때로는 사람처럼 때로는 천사처럼’ 보였다는 묘사가 특이하다. 한편 성경에 기록된 바울의 외모에 대한 언급은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음(고후 10:10)’ 외엔 거의 찾기가 어렵다.
옛 동양의 인물 평가 기준인 신언서판(身言書判)에 준하자면 신언보다는 서판이 두드러졌던, 곧 준수한 풍채의 바나바와 화려한 언변의 아볼로에 비할 때 빼어난 외모와 유창한 말주변은 아니었으나 강한 문필력과 강단(剛斷) 있는 성격을 가졌던 인물로 여겨진다. 외모가 경쟁력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모 포탈의 설문에 응답 대학생의 55.8%가 전적으로, 35.8%가 부분적으로 동의한다고 답했으며 동의할 수 없다는 응답은 1.1%에 그쳤던 기사를 떠올릴 때 요즘의 기준으로는 크게 어필하기 어려운 인물이었을 듯싶다. 각설하고 기원후 1년경 그가 태어난 길리기아의 다소는 일찍이 로마의 실력자 안토니우스와 (금은으로 치장한 배에 여신 복장으로 올라탄) 클레오파트라가 처음 만났던 곳으로, 소아시아의 아테네라 일컬어질 정도로 그리스 학문의 영향이 짙게 배인 유명한 교육 도시였다.
출생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졌던 그는 생후 8일 만에 할례를 받은 베냐민 지파의 순수 유대교도였고, 그리스 문화에 대한 학식과 더불어 대학자 가말리엘에게서 율법을 사사(師事)했던 바리새파의 촉망받는 엘리트였다. 매사 적당한 타협을 거부하던 그는 유대교 전통 수호에 투철한 정의감으로 앞장섰으며, 30년경에는 율법과 성전을 모독하며 나사렛 예수를 전하던 스데반의 처형에도 입회하였다.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자들을 열성으로 잡아들이던 삶에 획기적 반전이 있던 해는 33년경, 고향 다소와 멀지 않은 다메섹 근처에서였다. 살기등등하게 대제사장의 허가장까지 들고 예수의 도를 따르는 자를 결박하러 향하던 청년의 걸음은 하늘의 빛에 의해 고꾸라졌고 그 위로 준엄한 예수의 음성이 내려왔다. 이후 그는 눈이 먼 채로 다메섹에서 사흘간 식음을 전폐(행 9:9)하기에 이른다.
사울이 다메섹 사건 직후 바울로 개명했다는 혹자의 주장은 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 로마 치하에서 히브리식 이름과 로마식 이름을 함께 가졌던 당대 유대인처럼 그 역시도 히브리식 ‘사울(여호와께 구하다)’과 로마식 ‘바울(작은 자)’을 함께 가졌던 것이며, 회심 후에도 그는 여전히 사울로 등장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사도행전 13장 이후 로마를 포함한 이방(異邦) 전도를 시작하게 되면서 그들에게 친숙하게 들릴 수 있는 바울이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으로 간주한다. 다시 예루살렘으로 복음이 한 바퀴를 휘몰아 돌아오기 위한 거대한 출발, 이방 선교의 첫 횃불을 올린 이는 아이러니하게 누구보다 극렬히 복음을 탄압하며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오하던 박해자였다. 주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롬 11:33)이라 천명(闡明)한 바울의 고백은 그런 이유로 더 심오한 의미로 다가온다.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던 그 3일, 과연 핍박자의 뇌리에는 어떤 번민이 찾아왔을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천둥처럼 울려오던 소리, 그 예수를 하나님 우편의 인자(人子)로 찬양하다 피 흘리며 잠들어간 스데반의 평온한 얼굴, 자신에게 돌 던진 이들의 죄 사함을 간구한 이해할 수 없던 마지막 기도..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 했던 터툴리안의 표현처럼 스데반으로 하여금 흘리게 하신 그 피가 이방 교회 설립의 중요한 발단인 바울의 영적 변화에 귀한 밀알이 되었으리라 추측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 무엇도 볼 수 없던 처절한 고뇌의 암흑이 있었기에 사흘 뒤의 밝은 개안(開眼)은 한없는 감사의 눈물이 되었을 것이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빛과 어두움은 다른 가치로 나누어지나, 만사를 선하게 섭리하시는 여호와의 눈으로 보면 빛이나 어두움이나 모두 유의미한 가치를 갖는 영광 선포의 방편일 뿐이다. 홍대용 선생의 <담헌서(湛軒書)>에 나오는 ‘無大疑者 無大覺(무대의자 무대각)’을 떠올려본다. 누구보다 큰 의심과 시험에 빠져들게 하신 삶이었으나, 가차 없이 내동댕이쳐진 바닥으로부터 ‘전적인 은혜’로 끌어올려진 바울의 큰 깨달음은 신약 형성과 이방 선교를 위한 도구로 쓰임 받게 되었다. 무너질수록 강해지던 바울의 겉이 아닌 속 모습, 이는 오직 여호와의 ‘전적인 은혜’를 소망하게 하신 언약백성만의 행복한 특권 아니었던가.
이재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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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이재규 집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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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과연 성경적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