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숲으로
단상 하나! (온라인 사회)
현대사회는 유비쿼터스로 상징되는 온라인 사회라 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엮어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파괴하고 과거와 현재, 미래의 정보(예측)를 실시간으로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온라인 사회는 ‘개인 대 개인’의 대인관계를 ‘개인 대 다수’의 만인관계로 만들었으며 긍정적 미래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즉, ‘트위터’나 ‘페이스북’, ‘카카오톡’에 열광하는 현상은 신인류로 그려지고 있으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아이폰’이나 ‘갤럭시’ 혹은 개발중인 ‘스마트워치’에 흥분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현상적으로 보면 버스나 전철의 객차 안에서 폰을 열심히 터치하거나 사무실이나 가정에서 홀로 자판을 두드리는 충혈된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결국 온라인 사회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엮어주는 동시에 모든 사람들에게서 자신을 이탈시키는 역설을 가진다. 말하자면 사람과 사람사이의 라포(친밀감) 형성을 방해하고 원만한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갖게 하며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혼동하는 부작용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온라인 사회와 고독은 상관관계다.
단상 둘! (팬덤)
사람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존재다. ‘사회적’이라는 말은 인문 환경에 강조점을 둔 것이며 사람 자체가 의존적 존재임을 말해준다. 팬덤(fandom)을 떠올리는 이유다. 팬덤이란 ‘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그런 현상’을 일컫는다. 양성희의 말을 빌리자면, 현대인은 ‘취향의 공동체’이며 “열정적인 팬덤은 이미 현대인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이나 조건이 되고 있다. 누구의 팬이라는 것 자체가 이 시대의 새로운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
팬덤은 양면성을 가진다. 우선, 팬덤은 사람들과의 관계성이라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팬과 스타가 없는 팬덤은 있을 수 없다. 또한 팬덤 현상은 자존자의 실체를 알지 못하고, 스타를 신의 경지에 올려놓고 숭상하는 종교성을 연상케 한다. 혈서를 쓰면서까지 자신을 스타에게 내어 보이고자 했던 ‘사생팬’의 사례를 보고 하는 말이다. 고독한 존재는 신적 지위에 올려놓을만한 존재가 필요하고 동일한 취향을 가진 존재가 필요한 것이다.
단상, 셋! (환경의 변화)
오늘의 아이들은 시대적 추세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외로움과 공허함을 극복하기 위해 누군가를 향해 맹목적인 열정을 불태운다. 그래서다. 아이들에게 여유를 안겨주자. 창의성이나 인성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떠올리고 그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여유로움에서 나온다. 뒤처질까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파일(pyle)은 아이들에게 특별한 장소 자체가 바로 교실에 필적할만한 교육을 제공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스스로 학습하는 존재이며 그들의 교육과정은 자신들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것에서부터 만들어진다.
단상, 넷! (가자, 숲으로)
4월이다. 신록의 조짐이 보이고 샛노랗고 연분홍빛으로 물드는 이 순간이 좋다. 각종 생물로 뒤덮인 숲이 마음 한가운데로 다가온다. 숲은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만들고 호기심을 유발하며 스스로 찾아볼 수 있게 만든다는 ‘자발성의 원리’를 구현하기 좋은 교육장소이다. 카슨(Carson)은 “자연을 탐험하는 것은 단지 어린 시절의 황금기를 보내기 위한 좋은 방법에 불과한 것인가? 나는 거기에 훨씬 더 깊고 영구적이고 소중한 의미가 있음을 확신한다.”고 했다. 그가 기독교적 시각에서 한 말은 아닐지라도 자연현상의 이면에 하나님의 “더 깊고 영구적이고 소중한 의미”를 캐치하도록 아이들을 향해 넌지시 던지는 속 깊은 말들은 최고의 교사인 부모의 특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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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진희(교육학박사, 이천 표교초 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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