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작성일 : 13-05-02 21:5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축(逐)!, 선행학습


“선생님 그거 학원에서 다 배웠어요.”
몇 주 전부터 일반고의 위기라는 주제로 몇 개의 중앙지에서 시리즈로 연재했던 실상은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신문의 속성상 약간의 침소봉대를 고려하더라도 현장의 교사들조차 위기의식을 느낀다는 점에서 오늘날 공교육의 위기로 진단하는 것에는 무리가 없다. 한 아이의 말마따나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은 ‘학원에서 다 배운 내용이라고 자고’, 공부 안하는 아이들은 ‘관심이 없거나 못알아 들으니 자고’ 그런 식이다. 공교육에 불신을 가진 사람들은 학교가 자초한 일이라고 나무라며 무능한 교사들을 ‘교원평가’를 통해 퇴출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불사한다. 하지만 보여지는 현상이 진실을 보증하지는 못한다.
오늘날 선행학습이라고 명명되는 일종의 기형적 예습은 교육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중등학교에서 주로 시행되었던 선행학습이 초등으로 내려온 지 오래고 유치원까지 ‘영재교육’이라는 이름하에 이루어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미 배운 내용을 학교에서 반복한다는 점에서 아이들의 흥미는 오간데 없고 시간 떼우기로 학교생활을 이어간다. 단지, 중등학교 아이들의 경우 교실을 취침의 장소로 생각한다면 초등의 경우 놀이터로 생각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새로운 지식을 알아가는 기쁨이란 학원의 차지가 되었다. 학교는 복습의 의미를 가질 뿐 무능한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그래서 ‘학교를 없애자’는 선동이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지는 현실이다. 그러나 공교육의 위기는 국가의 위기다. 2013년에는 58조원에 가까운 세금이 교육현장으로 투입된다. 만약 현재대로 학교의 기능이 상실된다면 천문학적인 돈을 허공에 내다 버리는 꼴이 된다. 그렇다고 학교를 없애고 모든 기능을 사교육에 의존할 수는 없다. 국가의 책무를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교육에, 모든 짐을 학부모들에게 떠맡기는 꼴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공교육의 정상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것의 첫 단추는 선행학습 금지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선행학습은 상업적인 이유에서 출발했다. 사교육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몇 단계 높은 난해한 문제를 취급해야 했고 몇 개월 또는 몇 년 앞서가야 했다. 그것은 학부모들의 조바심을 자극했고 그들을 성공적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과정이 지속되고 구조화되면서 공교육은 뒤쳐진 이미지로 각인되어갔고 결국 사회로부터 ‘무능함’을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에서도 선행학습을 하는 것은 가능한가? 아니다. 불법이다. 학교의 교육과정은 수준이 낮은가? 아니다. 오히려 외국보다 수준이 높아 교육과정이 개정될 때마다 학습의 양을 줄이겠다고 하지 않는가. 교사들의 수준이 낮은가? 아니다. 교사되기가 좀 어려운가.
사실, 이런 현상은 법적 강제권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되는 구조적인 문제다. 교육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선행학습의 폐해를 지적해왔지만 대입제도라는 주요 이슈에 묻혔다. 학부모들도 선행학습의 폐해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따라서 오늘날 정치권까지 관여할만큼 심각한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상민 의원은 "명확한 효과도 입증되지 않은 선행학습을 유행처럼 많은 학생들이 따라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이에 대해 자정능력이나 자기조절능력을 잃어버린 것 같다"며 "사교육 시장의 과도한 선행교육 상품에 관한 규제가 필요하다"며 법적 개입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던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방안으로 일명 '선행학습 금지법(공교육정상촉진특별법)'의 국회 발의가 초읽기에 들어간 까닭이다. 근본적으로 선행학습은 인간의 근본적 속성인 이기성과 욕망의 발현이다(창6:5,롬3:10). 남보다 높아지기 위한 총력전의 일환이거나 뒤처지지 않기 위한 고군분투다. 그런 까닭에 공교육의 위기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다. 손가락질보다는 이해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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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직식’, 주술적인 권위의 이양인가?
요한계시록의 근거<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