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작성일 : 13-07-28 19:20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언약 백성을 건지기 위한 아름다운 희생, 모세

성경 속의 인물 (10)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는 정성을 흔히 교육에 비유한다. 투입 대비 산출의 효율성이 미덕이 되어버린 현대 사회에서 내일이 지구의 종말임에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다짐은 얼핏 우매한 무엇이겠으나, 그 우매한 끈기로 끊임없는 위협 속에서도 성경적 신앙의 전승을 위해 여호와의 주권에 생명을 맡겼던 마르틴 루터(1483~1546)는 테첼의 허황된 면벌부 판매에 맞서 인간의 의지나 노력이 아닌 오직 은혜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만이 살 것이라는 95개조 반박문을 내걸었다. 종교개혁기에 의무교육의 필요성을 최초로 주장한 교육사상가이자 어린이를 신의 선물로 표현하기도 했던 그가 청소년기를 보냈던 독일 튀링겐 주의 고즈넉한 전원도시 아이제나흐의 루터하우스 앞엔 (17세기 범신론자 스피노자가 인용했던) ‘그리고, 내일 세상이 멸망함을 알지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소년 루터가 일기장에 적었던 글귀의 비석이 작은 사과나무와 함께 세워져 있다. 비석의 글은 바르트부르크 성의 감옥 같은 골방에서 기사로 변장한 채 외로이 성경을 번역하던 그의 일생 속에 주신 굳은 인내와 신념을 간명히 담아내고 있다.

고난과 인내의 연단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성경 속 인물 모세, 그가 이집트인을 죽이고 도망했던 미디안에서 돌아와 18왕조의 아멘호텝(Amenhotep) 2세로 추정되는 파라오 앞에 섰던 나이는 80세였다. 열왕기상 6장에 따른 전통적 출애굽 연도인 1446년을 기준한다면 모세의 생몰년은 1526~1406년이 되는데 이를 구분하자면 정체성 혼란의 40년, 사역 준비의 연단 40년, 그리고 변덕스런 백성들과 동고동락한 광야의 40년으로 볼 수 있다. 불붙은 떨기나무 가운데 영원한 여호와의 이름(출 3:15)을 밝히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진행하신 출애굽의 역사는 당신의 주권적 사역으로 시련을 통해 불신앙적 구습을 제거하시고 성화를 이루어 가신 구절양장(九折羊腸)처럼 치열했던 굴곡의 과정이었다. 열 차례의 재앙을 통해 만물을 주관하심과 어느 신보다 우월하심을 가르치셨으며, 예비하신 해방의 섭리를 따라 홍해를 가르는 장대한 기적을 보이셨음에도 찬송(출 15:1~21)은 잠시였을 뿐 백성들은 여호와의 전능하심을 신뢰하기는커녕 끊임없이 모세를 향해 성마른 불만을 쏘아대는 한편 종살이에서 건져내신 여호와를 까맣게 잊는 가증스러운 우상숭배를 뻔뻔히 자행한다.

목이 곧은 그들을 진멸하시려다 모세로 간구케 하심으로 원래의 정하신 뜻대로 돌이키신(출 32:14) 여호와께서는 레위기의 각종 규례를 통해 언약 자손들을 보호하셨다. 두 번째 언약 수립 과정에서 세우신 성화 규례의 초두인 레위기 11장에 기록된 먹을 수 있는 혹은 없는 생물에 대한 상세한 구별은 일반의 오해처럼 잡다한 나열이 아닌 이방과의 구별된 모습을 통해 출애굽의 여호와를 기억하게 하시려는 섭리이며, 나아가 그 정결한 양식이란 결국 신약 성도에게 공급될 신령한 말씀인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의 의미를 갖는다. 그렇게 시내산 언약이 세워지고 언약의 성지로 진군하며 이어진 광야의 일차 시련 기간 중 문제의 가데스바네아 사건이 자리한다. 12정탐꾼 귀환 이후의 패역에 의해 이십 세 이상은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는 약속의 가나안에 입성하지 못할 것이며 이십 세 미만은 선대(先代)의 시체가 소멸되기까지 광야에서 40년의 방랑을 거쳐야 할 것임을 밝히신 여호와의 준엄한 언명에 좌절했을 백성들, 또한 동족의 애곡을 지켜볼 수밖에 없던 모세의 지도자로서의 상심은 과연 어떠했을까.

때로는 주께서 능력이 모자라 백성들을 광야에서 죽였다 할까 염려된다는 식의 불경한 발언까지 불사하며 동족들을 옹호하던, 어느 비난이나 배신에도 꿋꿋이 언약하신 땅에 대한 소망을 포기하지 않던 모세에게 내리신 ‘돌이킬 수 없는’ 장면은 광야의 삼차 시련 중 다시 머무른 가데스, 불평에 대한 여호와의 진노로 14700명의 백성들이 염병으로 소멸되기도 했던 가데스에서 터진 두 번째 므리바 물 사건(민 20:1~13)이었다. 집요한 물 요구에 지친 그는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 외치며 반석을 두 번 내리쳤으며, 여호와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은 자만의 거역으로 모세와 아론의 가나안 입성은 허락되지 못한다.
 
‘아버지에게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다. 아이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을 위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교사를 찾아 무릎을 꿇고 자기 아이를 부탁하는 일이다.’ 종교 개혁의 지속적 성공을 위해 교직과 성직의 동등한 가치를 주장하였던 루터처럼 모세 역시 호렙산 언약 재교육의 사명을 세심히 완수했던 성실한 교사였다. 과거의 회고로부터 계명과 율례와 규례의 교육, 그리고 마지막 교훈과 최후의 축복까지 끝마친 모세는 파란에 찬 일생의 소원이던 몽매난망(夢寐難忘)의 가나안을 느보산의 비스가봉에 올라 회한에 찬 그리움으로 바라본(신 34:1) 이후 숨을 거둔다. 그러나 그로 하여금 정리케 하신 토라, 곧 모세 5경은 작정에 따른 언약의 말씀으로 후대 선지서 예언의 핵심적 원천을 이루었으며, 동족의 구원을 위한 고난으로 점철되었던 120년은 장차 오실 메시아 희생의 고귀한 모형이 되게 하셨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이재규 집사(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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