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구원하심을 믿었던 지도자, 여호수아
수년 전 미 항공우주국 NASA에서 아모리 다섯 왕과의 전투를 기록한 여호수아 10장의 ‘해가 중천에 머물러 거의 종일토록 내려가지 않은’ 사라진 시간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는 기사를 접했었다. 천문학과 역사 기록의 사이클을 분석해 실제의 사실로 확인했다는 결론은 예전 설익은 학구열로 열독했던, 작고하신 모 교수님의 『성경은 사실이다』에 실린 ‘없어진 하루’의 내용과 너무나 흡사했다. 열왕기하 20장의 10도 뒤로 물러간 해 그림자 사실까지 곁들여 지구의 자전이 멈춘 24시간을 산출했다는 주장은 볼티모어 시 커티스 기계 회사의 사장이었던 해럴드 힐의 증언에서 출발하는데, 꼬리에 꼬리를 물며 확대된 인용은 저명한 모 기독교 신문에까지 실리게 되었다. 각설하여 과연 천문 기록을 통해 지구의 정확한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가의 과학적 논쟁 여부를 떠나 NASA의 그 어떤 확인도 없던 이론은 여전히 정보의 바다를 심심치 않게 떠돌고 있다.
근동 고고학의 권위자인 영국의 존 가스탱(John Garstang) 박사는 1930년대에 여호수아 6장의 여리고성의 폐허와 해당 유물을 발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무리가 불로 성읍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사르고(수 6:24)’의 본문을 증명하는 것으로 간주된 두꺼운 숯과 재의 층, 불탄 벽돌이 발굴되었으며 박사는 이외에도 11장의 여호수아에 의해 불태워진 하솔(Tell el-Qedah) 유적 연구 등을 통해 성경 기사의 신빙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그렇다면 고고학은 구약 역사의 연구에 객관적인 근거를 제공한다고 보아야 하는가? 일례로 무너진 여리고의 잔재를 B.C. 1400년경으로 파악한 가스탱의 이론과 달리, 20여 년 뒤 캐틀린 케년(Kathleen Kenyon)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에 의해 B.C. 2300년경으로 소급하기도 하였다. 어디까지나 고고학은 당대의 맥락 속에서 기록된 말씀의 이해를 돕는 보조 학문이 되어야 함에도, 혹자는 극히 한정된 유적층과 고기물(古器物) 및 이를 분석하는 해석자의 판단에 주로 좌우되는 한계를 갖는 고고학의 결과로 성경을 변증하려 하며 다른 혹자는 오히려 이를 통해 성경 기록의 사실성을 부정하려 한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창 12:7) 아브람에게 일방적으로 말씀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 요단 동편과 서편 땅을 차례로 정복하게 하시는 성취 섭리의 구조를 따라 접근하지 않으면 여호수아서는 세속 학문의 성과와 관계된 논쟁에 치우칠 소지가 다분하다.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고전 4:6) 강조한 바울의 지적은 인간의 어떤 초등 학문이건 성경 자체의 권위를 뛰어넘을 수 없음을 환기시킨다. 성경을 통해서만 변증되어야 하는 성경, 그 성경을 개별의 파편이 아닌 전체의 구조로 이해해야 하는 당위성은 개혁 신앙에서 이어져야 할 소중한 가치이다. 그렇기에 에브라임 지파 출신으로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 헬라어로 ‘예수’였던 그가 주께서 마르게 하신 요단강을 건너 선민 이스라엘을 약속된 땅으로 이끌었던 사명의 완수는 장차 택하신 언약 백성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실 그리스도 사역에 대한 모형이 됨에 우선적으로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인간적 조건과 무관히 일방적 은혜로 성취될 자손 언약을 보이시려 예수의 선조가 되게 하신 천한 이방의 기생 라합을 등장시키신 뜻 깊은 섭리로 시작된 여리고성 정복 이후, 의기양양했을 이스라엘을 실족케 하신 아이성 전투는 매 순간 크고 작은 모든 일에 오직 여호와만을 의지하고 경외해야 함을 재차 깨우치고 있다. 사람의 헤아림으로 가능할 듯한 아이성의 상황에서 꺾으셨으며 사람의 헤아림으로 불가능할 듯한 여리고성의 상황에서 펴셨던 여호와 섭리 가운데 여호수아가 쌓았을 지식은 자신에 대한 포기, ‘포기하면 편해’ 식의 여호와를 모르는 무기력함이 아닌 ‘장래를 헤아릴 수 없게 하신(전 7:14)’ 여호와만을 신뢰하는 당찬 용기였을 것이다.
모세를 수행하던 시절부터 85세경 스승을 계승하여 약 25년간 가나안 지역을 정복하고 12지파를 정착시키기까지 여호수아가 치렀던 모든 싸움은 그 조상에게 주리라 맹세하신(수 1:6) 땅 언약의 철갑으로 승리가 보장된 선승구전(先勝求戰)이었다. 약속의 땅 분배 후 세겜에 모인 백성들에게 그는 이스라엘의 칼이나 활로 이루어진 정복이 아님을 철두철미하게 교훈하였으며, 모든 우상을 제하고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라는(수 24:14) 마지막 유언의 당부는 그의 삶 전체를 통해 수많은 불가능의 난관을 가능의 기적으로 이끄신 여호와 땅 언약 성취의 역사를 생생히 배워 간 믿음의 결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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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이재규 집사(자유기고가) |
전통교육의 회복, 건투를 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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