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교육의 회복, 건투를 빈다
대안학교나 홈스쿨링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교육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대안학교가 비교적 최근에 출현했고 공교육과 비교되어 이해되는 반면 홈스쿨링은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초기의 대안학교가 학교 부적응 학생들을 위한 위로의 성격을 가졌다면 최근에는 일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식 인가를 받은 학교가 증가하고 있으며 일부 대안학교는 귀족학교로 불리며 경쟁률도 상당하고 상류층을 위한 교육 기관으로 자리하고 있다. 설립 주체에 따라서는 종교적 대안학교나 환경 대안학교 등이 있고 활동 시기에 따라 방과 후, 주말, 방학 중에 여는 대안학교 등도 있다. 대부분 비인가 교육기관이다.
홈스쿨링은 사적이고 가정에 따라 교육방식이 각양각색이라서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관련 연구물을 통해 이론적•실제적인 교육적 효과가 입증되면서 확대일로에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홈스쿨링의 기본 가정은 “누구도 우리의 아이들을 우리보다 더 사랑하고 더 잘 양육하며 더 잘 가르칠 수 없다.”라는 생각에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대안적 교육 체제는 공교육에 대한 불신에 터해 있다.
공교육에 몸담고 있는 필자는 공교육의 정상화를 통해 교육의 혁신을 바라지만 대안을 찾는 사람들의 생각과 의식에 충분한 공감을 갖고 있다. 이는 공교육의 정상화라는 목표 달성이 간단치 않다는 현실론에 바탕을 둔 것이기도 하고 교육의 관료주의에 따른 획일화 역시 교육적이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오늘날의 공교육은 근대의 산물이다. 서구에서는 기독교의 추상성 등과 같이 비현실적이라 생각되었던 사상을 탈피하고 인간의 근본적 속성과 관련하여 긍정적 시선을 기반으로 하는 인문주의가 출현했다. 인문주의는 십자군 원정 이후 상공업의 발달과 그에 따라 부를 거머쥔 시민 계급이 형성되므로 가능했고 과학의 발달에 빚져 있다. 과학은 합리성을 생명으로 하였고 기독교의 내세주의는 합리적이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후 기독교를 비판하는 철학자들이 많아지고 기독교의 신은 상상의 산물이라는 생각을 보편화시켰다. 베버(M. Weber)가 근대사를 ‘점진적인 합리화의 역정(歷程)’으로 규정했던 것은 합리성이 증가할수록 세계는 주술로부터 해방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합리성의 증대는 일관성, 체계적 조직, 예측 가능성, 통제 가능성, 조직적 기획의 증대를 의미하고 그것은 근대 국가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관료주의적으로 변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오늘날 공교육은 철저히 관료주의화 되어있다. 교육의 내용은 군대처럼 상명하달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창의적 체험활동’을 운영하는데 무엇을 몇 시간 가르칠 것까지 지정되어 하달된다. 이처럼 국가 주도의 근대 교육은 인문주의의 발로, 과학의 발달, 산업의 발달에 따른 산업화 인력 양성이라는 경제적 필요 등에 의해 추진되었다. 유치원의 창시자인 프뢰벨(F. Frobel)이나 교육계의 거장인 듀이(J. Dewey)가 이룩한 업적은 간단치 않고 단순화할 수는 없지만 산업화의 인력 양성이나 합리주의라는 근대의 목표를 교육에 구현하기 위해서 그들은 유아들이나 어린 학생들을 부모로부터 떼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천했다. 오늘날 대학가에 부는 학과 통폐합 현상들도 근본은 이와 같은 철학에 연결된다. 즉, 실용적 인력 양성이 합리적이므로 이에 부합하지 않는 학과는 폐지돼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충북대, 한양대를 비롯하여 두산그룹 소유인 중앙대의 대대적인 학과 통폐합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근래 공교육의 시스템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안학교, 홈스쿨링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교육 현상이 이를 대변한다. 굳이 따지자면 근대 교육 이전의 청교도식 교육의 회귀이며 전통적 가정 교육의 회복이다. 시대와 불화를 겪을 각오를 해야 하기에 용기가 필요하고 부모 교사로서의 인내와 성실함 그리고 뚜렷한 교육 철학이 바탕이 되어야 하기에 신앙적 바른 세계관이 필요하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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