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동남아시아의 이슬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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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피즘
더 나아가 동남아시아에서의 이슬람의 전파와 관련되어져 수피즘(Sufism)이 초기 이슬람의 확대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수피즘은 알라와의 합일과 영적 체험을 중시하여, 금욕적 수행과 영적인 감성의 표현으로서 노래와 춤, 그리고 꾸란의 암송을 강조한다. 수피즘은 따리까(tariqa)라고 불리는 조직을 바탕으로 그 공동체의 회원들을 강하게 결속한다. 이 같은 성격의 수피즘은 주술신앙과 힌두교 및 불교의 전통을 가진 말레인과 인도네시아의 자바인의 혼합주의 및 신비주의적 종교 전통에도 잘 들어맞아, 동남아 토착인들을 이슬람으로 끌어들이는데 매우 효율적이었다. 특히 1258년 몽고의 침략으로 페르시아의 압바스(Abbasid) 왕조가 멸망하였을 때 건너온 무슬림 학자 및 초자연주의 신비주의에 바탕을 둔 수피들은 인도네시아 군도, 말레이 반도 및 동남아시아의 다른 지역에 이슬람을 전파하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수피들은 여러 왕국의 왕족과 귀족들에게 아랍세계의 정교한 문물을 전파하면서 종교적 전통, 금욕주의, 춤 문학 등을 전파하였는데, 초자연적인 힘을 주장했을 이들은 오랫동안 힌두교와 불교의 교리에 식상했을 왕족들에게 상당히 매력 있는 중개인이었을 것이다. 또한 이슬람의 가르침은 신왕(神王)과 브라만, 그리고 티베트 불교의 신비주의자들이 지배해온 힌두교와 불교의 사회에 정치적, 문화적으로 큰 무리 없이 잘 융화하였다. 물론 때로는 무력을 동반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종교적인 이유만 아니라 왕족간의 내분 문제, 영토 확장 등 전략적 경제적인 문제에 기인한 것이었다.
도서 동남아시아에 전파된 이슬람
14세기부터 도서 동남아시아에 대중적인 종교운동으로 확산된 이슬람은 14세기 후반 수마트라와 말레이 반도로 침투해 들어간다. 그 확산과정에서 이제는 토착인, 특히 말레인 및 자바 상인들이 그 중심추진 세력이 되는데, 15세기 초 강력한 해상무역 왕국으로 발전한 말라카(Malacca)였다. 15세기 중엽에는 수마트라의 여러 지역과 말레이 반도 남부 그리고 자바의 북부 해안이 이슬람화 되기 시작한다. 15세기 말에는 말루꾸(Maluku) 제도로 이슬람이 전파되며, 보르네오와 술라웨시를 거쳐 필리핀으로 건너가, 스페인이 필리핀에 오게 되는 16세기 중엽에는 필리핀 중부지역까지 퍼지게 된다.
동남아시아는 도서 동남아시아(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와 대륙 동남아시아(태국, 미얀마,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싱가포르)로 나눌 수 있는데, 조흥국(부산대 국제전문대학원)은 다음 두 가지 이유로 이슬람이 도서 동남아시아에만 전파 된 이유를 다음 두 가지로 추측하고 있다. 하나는 이슬람의 상인문화적인 성격으로 이미 말레이인과 자바인들이 오래전부터 상업 활동에 익숙해 있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슬람이 동남아시아 지역에 들어와 전파될 14-15세기 즈음에 대륙 동남아시아인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등에는 불교가 사회의 보편적 신앙이 되어 있었고, 베트남은 유교가 그 같은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중앙집권적인 정부는 불교 혹은 유교를 국교로 채택하고 있었고, 지배 엘리트들은 국교를 후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이념인 이슬람이 뚫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이와 반대로 도서 동남아시아는 한 섬 전체를 통치하는 중앙집권적인 왕국들이 없었고, 동시에 사회 보편적인 신앙과 왕국 전체에 적용되는 국교가 존재하지 않았다. 귀족들만이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민간에서는 정령신랑이 만연해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의 과제 - 분리주의 운동
동남아시아에서의 이슬람으로의 개종은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공동체 또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 결과는 이슬람 세계와 비이슬람 세계와의 경계가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분명한 공동체와 정치 체계의 경계를 가져왔다. 바로 이것이 동남아시아의 이슬람 분리주의 운동의 배경이 되었다. 사실 지금까지도 동남아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정치적 ․ 사회적 ․ 문화적 ․ 종교적 분쟁들이 일어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아체(Aceh)분리운동, 필리핀 무슬림의 모로(Moro)의 분리주의 운동, 태국 남부의 말레이 무슬림의 분리주의 운동 등 뿌리 깊은 갈등의 존속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와 ‘타자’를 구분하는 것이 모든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이며, 그 구분의 기준은 성(性), 게급, 연령, 종교, 지역, 종족, 국가와 같이 다양하고 서로 중첩되는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풀어야할 과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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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하나되는 총회 반드시 이룩” |
제2장 법궤에 대한 오해〈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