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중앙아시아의 이슬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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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해 전부터 소위 “백 투 예루살렘”(Back to Jerusalem)이라는 기치 아래 과거 실크로드(Silk Road)를 따라 복음을 예루살렘까지 전하자는 기치아래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에 전하자는 운동이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모순점이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복음 전파의 경로는 실크로드를 따라 온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소아시아, 유럽을 경유, 미국의 거쳐 19세기말 들어온 것이다. 물론 경교(景敎, Nestorianism)가 중국 당을 거쳐 통일신라 신대에 경주까지 들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먼저, 에베소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431년에 추방된 네스토리우스 일파가 중국 당나라에 들어왔고, 635년 중국 당(唐)나라의 수도 장안(長安)에 도착하여 선교한 데서 비롯된다. 전래된 후 15년부터 50년간 번성하다가 원말 명초에 완전히 소멸된다. 그러니까 “백 투 예루살렘” 실크로드가 아닌 미국을 시작으로, 유럽을 거쳐서 예루살렘으로 가야 맞는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어째든 실크로드 상에 위치한 카자크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즈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 다섯 나라는 1991년 소련이 붕괴한 이후 새로운 선교지로 각광을 받고 있으나, 만만치 않은 곳이다.
중앙아시아의 개괄적 역사
실크로드가 위치한 유라시아 대륙은 공활한 초원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은 스텝 기후로 심한 일교차에 한랭 건조한 기후로 인해 인구 증가와 더불어 대도시의 발달이 어려운 곳이다. 수렵과 목축에 기초한 생활로 유목 민족으로 수많은 군소부족을 이룬 중앙아시아에는 몽골로이드 인종에 속하는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인종들이었다. 그러나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의 등장으로 부족들이 공동체의 이익이나 정치적 이유에서 다른 부족을 정복 통합하여 거대한 유목민족제국을 이루기도 하였다. 그 첫 번째가 흉노제국(B.C 3세기 말 ~ A.D 1세기말)으로 시작으로, 게르만족의 이동을 만들어 낸 훈(Hun)제국(4세기에 발흥 5세기에 전성기), 연연(5세기초 ~ 6세기 중엽, 유연(柔然)이라고도 함), 그리고 자신들의 문자기록을 남긴 돌궐제국(6세기 중엽 ~ 8세기)이 등장하였다. “돌궐”(突厥)은 중국인 북방 오랑케를 경멸적인 의미로 만들어낸 명칭이다. “튀르크”라는 말은 6세기 말 비잔틴 역사가 아가티아스와 아랍시인 나비가트 알 주브야니의 아랍문서에 처음 나타난다. 이들 유목기마민족은 동으로는 아시아문화가 서쪽으로는 유럽문화가 만나는 전략적 위치에서 생존해야만 했다.
이슬람의 전래
돌궐제국당시 중앙아시아는 애니미즘적인 샤머니즘이 신앙의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6세기 중엽에서 7세기 중엽사이에 불교가 전래되어 서돌궐의 대다수가 불교를 신봉하게 된다. 경교도 기독교가 전파되었으나 별로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아라비아반도를 통일한 이슬람교도 아랍인들은 7세기 중엽 사산조 페르시아를 무너뜨리고 페르시아를 이슬람화시킨 후, 중앙아시아 스텦의 서쪽과 경계를 같이 하게 되면서 중앙아시아에 대한 이슬람의 영향을 증대하기 시작했다. 아랍의 무슬림들은 처음부터 전쟁을 통한 중앙아시아 지배나 혹은 포교를 목적으로 직접 선교사를 파송하지 않았고, 이슬람화 된 페르시아계 무역 상인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슬람이 전파되기 시작했다.
8세기 중엽 중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이 증대된 아랍 이슬람은 기존 세력인 돌궐, 티벳, 당나라 등과 경쟁하게 되었다. 움아야드(Umayyad) 왕조의 페르시아 지역 통치자 쿠타이바 이븐 무슬림(Qutaiba ibn-Muslim)은 서돌궐의 여러 부족을 점령하며 박트리아, 부하라, 사마르칸드 지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스텦의 서쪽 트란속시아나 사람들은 이슬람의 영향권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734년 스텝제국인 돌궐이 붕괴될 무렵, 아랍 이슬람제국과 당나라의 현종, 티벳은 각기 세력 팽창정책을 실시하고 있었다. 결국, 747년 당나라는 고구려 출신 고선지 장군을 파미르로 보내어 티벳을 물리쳤다. 750년 중국의 타쉬켄트 원정 때 잔악한 약탈행위는 서부 투르크인들에게 이슬람 압바스왕조 칼리프에게 원조를 요청하게 만들었다. 이리하여, 아랍 이슬람 압바스 군대와 티벳, 돌궐계 카를룩이 연합하게 되었고 중국은 튀르크계 위구르제국과 연합하여 전쟁에 돌입했다. 751년 이들은 중앙아시아 타쉬켄트부근의 탈라스강 유역에서 충돌하여 탈라스 전쟁을 치렀다. 이 전쟁은 아랍, 티벳, 카를룩 동맹군의 승리로 끝나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이슬람은 튀르크족의 군소국가들과 부족들에게 전해져 중앙아시아에 확장되었으며 오늘날 거대한 이슬람 세력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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