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작성일 : 09-10-06 09:41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15. 중앙아시아의 이슬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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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전도는 문화적 경계 혹은 장벽을 넘어가는 것이다. 복음 전파자와 수용자 간의 간격에 따라 E0, E1, E2, E3, 네 가지로 나누고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 그 둘이 가지고 있는 역사인식으로 인해 그 문화적 간격(cultural distance)은 크다. 필자는 그 간격이 크기 때문에 ‘E4’라고 주장한다. 그 간격을 넘기 위해 이슬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다. 필자는 “이슬람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는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중앙아시아 5개국의 무슬림 숫자는 대략 이렇다. 카자크스탄은 전체 인구 16,400,000 명 가운데 무슬림은 9,350,000 명으로 전체 인구의 57%이다. 키르키즈스탄은 전체 인구 4,800,000 명 가운데 무슬림은 3,600,000 명으로 75%를 차지한다. 타지키스탄은 전체인구 6,600,000 명 가운데 무슬림은 5,940,000명(순니(Sunni)파 5,610,000 명, 시아(Shia)파가  330,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90%이다. 투루크메니스탄은 전체 인구 4,700,000 명 가운데 4,200,000 명으로 89%가 무슬림이다. 우즈베키스탄은 전체인구 26,000,000명 가운데 80%가 무슬림으로 20,000,000명이 넘는다. 대부분이 순니파이다. 이슬람의 부흥은 중앙아시아에서도 동일한 현상이다.

그 배경

구소련이 중앙아시아를 지배할 때 종교 말살 정책이 성공해 보이는 것 같았다. 특히 천년을 넘게 무슬림들의 일상적인 생활의 구심적 역할을 해왔던 이슬람이 가지고 있던 사법적 ∙ 신학적 인프라가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이 같은 개혁은 소련 내의 “무슬림”이라는 용어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아딥 칼리드(Adeeb Khalid)는 “공산주의 이후의 이슬람”이라는 책에서 중앙아시아의 무슬림이 새로운 무슬림 친구를 만나면서 보드카 건배를 제의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술은 이슬람 율법에서 금하고 있는 것이지만, 러시아의 음주 문화가 무슬림들에게도 큰 영향력을 미친 것이었다.

그러나 구소련의 붕괴는 중앙아시아에 직접적이고 큰 영향을 미쳤다. 공산주의 지도력이 섬겼던 국가와 공산당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사회는 파편화되어, 사상적 도덕적 진공상태가 되어버렸다. 다섯 나라 모두 심각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직면하였다. 그들이 당면한 문제들을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독재 정치는 평범한 시민들의 법적 권리를 위협하였고, 이에 대항하는 군사행동을 야기하였다. 둘째, 부패로 인한 경제 성장의 저해는, 시민들로 하여금 가난과 불법 행위로 몰아내었다. 셋째, 민족주의(nationalism)는 전쟁 발발의 가능성과 국경분쟁, 사회적 긴장을 만들어 내었다. 넷째, 질서와 예상가능성의 결핍으로 정책은 자칭 지도자라는 사람에게 의존되며, 씨족과 가문의 이익에 따라서 발전되어졌다.
 
근본주의 이슬람의 부활
 
이 같은 진공 상태 속에서 1,000년 이상 이곳을 지배하고 있었던 이슬람이 살아나고 있다. 특히 상당수 신세대의 일상적 생활 속에 이슬람의 영향이 증가되고 있다. 예를 들면 남부 키르키wm스탄의 페르가나(Ferghana)라는 작은 마을에 술파는 상점이 15곳이었는데, 음주 문화가 시들어들면서 하나 남은 가게도 두 번이나 방화를 당하였다고 한다. 타지키스탄의 수도인 두산베(Dushanbe)에서도 서구 교육을 받은 지성인들마저도 필요에 따라서 맥주를 마실 정도로 조심하게 되었다. 이것이 지난 20년 동안 변화되어진 현상이다.

이슬람 종교개혁

이는 첫째로 이슬람 교리의 기초인 꾸란과 하디스(Hadith, 무함마드의 언행)에 대한 재발견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이 같은 근본주의의 형성은 기독교의 종교개혁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중앙아시아는 이슬람 포교 과정에서 수피(Sufi) 선교사들이 지역에 토착화된 신앙을 가져왔다. 전통적인 이슬람이 조로아스터교와 샤머니즘과 혼합되었다. 그 결과 중앙아시아는 유명한 수피 종단인 낙샤반디야(Naqshbandiyya)가 창설된 곳이기도 하다. 지금 젊은 무슬림들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곧 바로 “신의 말씀인 꾸란과 하디스로 돌아가자”를 외치고 있다.

둘째, 외부 이슬람과의 교류가 근본주의의 부활을 가속화하고 있다. 소련의 붕괴는 외부 사상과 자금의 유입을 가져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터키 등으로 이슬람 자선기금과 정부 재단으로 지원으로 여행을 한다. 키르키즈스탄 정부는 터키로 일반인과 종교인들을 연수시키고 있다. 이들이 귀국하여 종교 위원회 또는 이슬람학과에서 가르치고 있다. 터키뿐 아니라,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와 걸프 만의 국가 등에도 파송됨으로 최근 이슬람의 국제적 경향에 편승하고 있다.

셋째, 이슬람 근본주의의 확산은 외부의 영향도 있지만, 자국 내에서 일어난다. 키르키즈스탄 무슬림들이 이집트의 알-아자르(Al-Azhar) 대학에서의 공부는 전액 키르키즈스탄 사업가에 의해서 지원되고 있다. 2004년 창립된 아딮 바샤티(Adep Bashati)는 벌써 회원이 1,000명 넘어섰으며, 무슬림들의 교육에 앞장서고 있다. 알콜 중독,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 전통 관습의 수용 등 당면한 문제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또한 많은 서적들은 번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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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유럽의 이슬람 (1)
제4장, 10가지 재앙에 대한 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