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작성일 : 11-07-01 15:3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19,시편의 主


시편(詩篇)에는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키는 主가 최소 1000번 이상 나오고 있다. 이것은 성경의 핵심어인 여호와 하나님을 의미하기 때문에 아무리 강조되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특히 시편 119편에만 200번 정도 나오고 있다. 이 主는 시가서의 핵심적인 시어(詩語)로서 사용되고 있다. 이 主만을 신구약성경 전체와 연계하여 분석하여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역사서(창~에)에 기초하여 나온 시편을 안배하여 복 주시는 主와 성실하신 主로 분석한다. 성실하신 주는 시편 자체의 주제(主題)이다.
 
1)福 주시는 主

 창세기 1장 28절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복을 주신 내용이 있다. 그 내용은 국가의 3요소인 국민과 국토와 국권이다. 이 복은 하나님께서 명령문의 형식으로 언약하신 복이기 때문에 창세기부터 에스더까지에서 그대로 성취되고 있다. 이 언약을 이루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한 것이 바로 시편이다. 창세기 1장의 복과 시편의 시작하는 시어인 복과 그리고 신약성경의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은 모두 잘 연계되고 있다.

①國家를 주시는 主

 먼저 위의 복(福)자와 나라 국(國)자가 깊게 연관되고 있기 때문에 어원적으로 간단히 분석하고자 한다. 福자에는 神자와 어원이 같은 시(示)가 있다. 이 示는 계시(啓示)에 사용되고 있다. 여기까지만 살펴보아도 이 示가 神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렇게 하여 이 글의 主와 연결되고 있다. 이 主의 본질적인 의미는 福자의 핵심인 示가 의미하는 神이 이방신을 가리키는 것이 되느냐 아니면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냐에 달려 있다. 이러한 구체적인 내용은 성경에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福자와 國자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글자 분석을 통해 확인하고자 한다. 예로부터 자주 보아온 이 福자에 국민과 국토와 국권이 있다. 오른 쪽에는 위에서부터  一과 口 와 田으로 되어 있다. 一은 통일이나 통치이고 口는 가족이나 식구이며 밭 田은 농지나 국토이다. 복이라는 글자에 神이 국권과 국민과 국토를 장악하고 있다. 이 神자 자체에도 펼 신(申)에 밭전이 들어 있다. 福자와 어원상 아주 밀접한 國에는 글자 밖의 큰 입구(口)와 글자 안의 입구(口)가 있다. 밖의 口는 테두리나 국경 또는 범위를 의미하고 안의 口는 국가의 국민이나 백성을 의미한다. 나머지는 한 一과 창 과(戈)이다. 一 은 통일이나 통치를 의미하고 戈는 국권이나 무기를 의미한다. 나라 國의 범위에는 국민과 국토와 국권이 들어 있음이 확인된다. 나라에 집 가(家)를 붙여 국가라고 표현하고 있다. 국가는 나라라는 집인 셈이다. 누가 국가를 만들어 진정한 평강을 주는가? 라는 것이 이 주제의 복과 관련되고 있다.

②평강을 주시는 主

시편에 복이 있다는 표현은 다른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27권에 비교하여도 가장 많이 나온다. 특히 시편의 시작하는 시어가 福인 것은 참으로 그 의미가 크다. 구약성경의 역사서가 복의 요소인 국민과 국토와 국권이 이루어지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 역사서의 내용을 한 글자로 요약하고 정리한 것이 바로 福이기 때문이다. 성경이 가리키고 있는 복의 본질은 에베소서 1장 3절에서부터 밝혀져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으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것이다. 이러한 입체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신령한 것이며 하늘에 속한 것이다. 이 하늘에 속한 것은 시편에서 말하는 主의 손에 있는 것이다. 복이 있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복으로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 신령한 복을 가지신 분이 복을 줄 수 있다. 이 복이 있는 사람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와 동의어이다. 그리스도는 s진정으로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고 섬긴 분이시다. 이 시편에서  복은 主께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노래하고 있다. 그 복은 허물에 사함을 얻고 죄의 가려진 사람에게 있다. 하늘이 진정한 국가인 하나님 나라에서 이러한 평강을 누리게 된다.

2)성실하신 主

 복의 근원이 되시는 주는 성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이다. 여호와의 성실성을 찬양한 것이 시편이다. 이 성실성은 복이 되는 신령한 하나님 나라를 계시하는 과정에서 증명된 것이다. 성실하신 주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한 시편의 논리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시편에 무슨 논리적 체계가 있을까? 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시편은 시가서의 한 부분으로 욥기부터 아가서까지의 체계 속에 들어 있다. 이 시가서는 앞의 역사서에 기초하여 나온 하나님의 속성이 찬양된 것이다. 이러한 유기적인 체계 속에서 시편 자체도 분명한 논리를 지니고 있다. 그 논리는 주의 언약(1~2편)이 있고 그 언약을 간구하도록 하시고 그 간구를 이루어 주시는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된 것이다.

①기도하게 하시는 主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인간의 소욕이나 계획을 추구하는 것은 기도가 될 수 없다. 시편의 기도는 본질적으로 찬양이기도 하다. 시편의 1~2편은 주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이 노래되고 있다. 이 언약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에 기초한 것으로 주의 복이다.  이 언약의 복을 기도한 것이 3~89편까지이다. 이렇게 보면 언약을 주시고 그 언약을 기도하게 하시는 주가 89편까지 찬양되고 있다. 그 주는 사람을 창조하여 언약하시고 언약을 이루어 주신 여호와 하나님이다. 시편의 이러한 논리적은 체계는 근본적으로 앞의 역사서에 기초하고 신약성경과도 긴밀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②찬양하게 하시는 主

시편의 전반부는 언약을 기도하고 구하는 찬양을 한 것이다. 후반부는 그 기도의 찬양을 주께서 성취하게 하심에 대한 찬양시(90~150)이다. 시편은 여호와 하나님이신 主 때문에 찬양하게 됨을 반복적으로 강조하여 노래한다. 찬양의 근거가 너무도 분명하다. 밤중에도 일어나 주의 의로운 율례(규례)로 인하여 찬양하게 된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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