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 믿음으로 다가오는가
사도신경 비판3
우리는 지금 로마가톨릭의 대표적인 신학자「한스 큉」의 저서「현대인을 위한 사도신경 해설 믿나이다(2006)」를 요약 비판하고 성경신학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 호에서 저자는 하나님을 정의할 수 없는 존재, 한정 지을 수 없는 존재로, 볼 수 없고 잴 수 없고 붙잡을 수 없는 실재로 이성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고 쓰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신앙은 이성적인 증명도, 비이성적인 감정도, 의지의 결정론적 행위도 아니며, 하나의 근거 있는 이성적 신뢰라는 것이다. 즉 무한한 실재의 하나님을 이성적 신뢰로 존재를 전제하고 시작하는 믿음이다. 알 수 없으니 믿고 시작하는 믿음이되 이성적 믿음인 것이다. 성경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존재를 모르는 신학은 이런 것이다. 그나마 맹신이 아닌 이성적 신뢰라고 붙이는 믿음이다. 저자의 주장처럼 믿음의 대상이 되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증명조차 되지 않는 상태에서『믿나이다』라는 고백은 시작부터가 이른 아침 사라지는 이슬과 같다.
하나님의 존재가 증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저자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로서의 창조신앙에 대해서 논리를 전개한다. 저자는 창조신앙과 우주학 및 진화론이 충돌되고 있는 건 아닌지 문제제기를 한다. 먼저 성경의 창조기사를 자연과학적 사실언어가 아니라 은유적 상징 언어로 보고 있으며 성경은 자연과학적 사실들을 확언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고 있으며 성경의 창조 기사는 우주의 궁극적 기원에 관한 신앙의 증언으로 본다. 그 증언은 이 세계의 처음에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 의지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신앙을 온전한 자유 안에서 결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저자는 생명 발생을 진화과정으로 인정하면서 “진화가 어떻게 진행되는가 하는 것이 비밀이 아니라, 진화가 진행된다는 사실 자체가 비밀”이라고 한다. 그래서 전체 진화과정의 궁극적 근원․의미․목적을 묻는 실존적 물음 앞에 인간은 서는 것이고, 하나의 실존적 결단과 이성적 신뢰의 문제라고 결론 내린다. 전체 진화과정의 궁극적 근거 없음․뜻 없음을 택하든지 또는 모든 것의 궁극적 근원․의미, 창조주․주재자․완성자를 택하든지 둘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오직 궁극적 근원․의미에 대한 신앙 안에서의 긍정만이 진화과정의 궁극적 기원과 의미를 묻는 물음에 대답할 수 있고, 인간에게 궁극적 확실성과 안전함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우주와 생명의 창조를 언급하면서 현대 과학적 방법을 인정하며 하나님을 찾고자 한다. 과학은 어떤 전제를 갖고 있는가? 과학적 연구 방법은 자연만물을 관찰하여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하여 검증된 것을 이론화하고 반복되는 현상을 추가하여 체계화한다. 정교하고 미세한 현미경으로 세포들을 관찰하고 수십억 광년이 떨어진 하늘의 별들을 망원경으로 관찰한다. 그러나 과학적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하여 현상과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이점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피조물의 인간의 관계를 모르는 무지의 소치이다. 성경전체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계시하고 있고 특히 욥기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집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천지를 주관하시는 권능의 섭리를 가르쳐 주신다. 땅의 기초를 누가 어떻게 놓았는지, 바닷물의 경계가 어떻게 정해져 있는지, 누가 심연의 근원을 거닐었는지, 누가 빛의 길과 흑암이 있는 곳을 아는지, 누가 눈과 우박 또 태양과 동품의 길을 아는지, 누가 하늘의 별들과 구름․번개를 주관할 수 있는지 물으신다. 또 동물들을 누가 주장하시는지, 누가 악어와 하마를 마음대로 주관할 수 있느냐고 물으신다.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능력 앞에 얼마나 하찮고 미약한 존재인가. 인간의 눈에 인간의 귀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현상적인 과학법칙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하나님의 존재와 전능성을 부정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과학적 이론과 지식에 대한 현상적 가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영역과 세계의 존재가 더 크고 광대하다는 것이다. 자연과학이 측정할 수 없다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 하늘을 모두 가렸다고 하는 것과 같다. 저자의 주장대로 우주과학과 진화론에 설명한다면 하나님의 창조를 증명할 수 없다.
또한 저자의 주장처럼 창조기사가 신앙인의 증언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창조가 사실이 아닌데 어찌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성경의 창조는 우주와 생명에 대한 과학적 방법을 밝히고자 기록된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당신을 계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피조세계를 펼치시고 역사를 섭리하신다. 창조는 창세전 하나님의 작정을 시간과 공간과 형상을 통해 드러낸 피조 세계의 출발이며 언약의 준비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계시형식의 원리는 그리스도를 보내시겠다는 언약을 세우시고 그 언약대로 성취하시는 것이다. 하늘의 궁창에 별들을 지으시고 바다의 생물과 새들과 짐승들과 가축들을 지으시고 여섯째 날 사람을 창조하시고 복을 주신다. 그 복은 세 가지 언약이다. 우리는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과 어떤 방식으로 창조하셨는지 피조물이기에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세우신 세 가지 언약(자손번창, 생육번성, 통치)인 하나님 나라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 이스라엘 나라를 통해 모형적으로 성취되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를 통해 실체적으로 성취됨을 확인하기에 하나님의 창조 섭리와 능력은 자연스럽게 이해되고 믿어진다. 성경을 통한 언약과 성취의 원리 없이는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도 없고 믿음은 내게서 아득하다. 자연과학의 해박한 지식이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속성이 확인되면 우주의 기원과 생명의 본질은 너무나 쉽게 수납된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 드러나신 하나님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는다면 ‘신경’은 뜻 모를 꽹과리소리이며 웅얼거리는 염불일 뿐이니 고백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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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성경의 核心 있나? |
하나님은 살아 존재하시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