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작성일 : 11-10-03 09:51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22, 통째로 성경을 볼 수 있나?


한국 교회를 포함한 세계 교회의 진정한 소망은 성경을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증하는 것이다. 이 소망이 흐려져서 오늘의 사태를 불러 왔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성경관이 철저하게 증명되어 증거 되고 있는가? 우리 모두에게 이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중대하고 어려운 문제를 안고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교회에 소속된 성도의 진정한 소망이 어디에 있는가? 성경 자체가 전체적이며 논리적으로 밝혀  주고 있다.
 
1)眞理의 성령에 의하여

 바울 사도는 성도를 가리켜 편지라고 하였다. 성도들의 마음에 기록된 것은 그리스도의 편지이다. 그 편지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라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 판에 쓴 것이 아니라 육체의 마음 판에 쓴 것이라고 한다(고후3:2~3). 이 구절 “쓰다”의 헬라어는 영구적으로 새겨진 식각(蝕刻; etching)을 가리킨다고 한다. 이렇게 기록된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전체적으로 성령의 감동을 강조하고 있다(창41:38, 출35:21, 딤후3:16, 벧후1:21, 계4:2 등). 
 
①生命으로 인도하는 성령
 생명은 머리로부터 연결되어 있는 체계이다. 그 머리는 만유의 아버지인신 여호와 하나님이다. 그 만유의 아버지께서 교회의 머리로서 그리스도를 계시하셨다. 성령은 진정으로 살아 있는 존재이다. 그런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 생명의 성령의 법이다. 성령의 중요한 속성은 거룩함이다. 거룩하다는 의미는 살아 있다는 것과 밀접하다. 거룩한 것은 하늘로부터 주어진다. 진정한 생명은 뜻을 지니고 있으며 운동한다. 그 운동함의 대표가 바로 말씀이다. 그 말씀은 생명이며 이 말씀을 먹는 자가 생명을 지니게 된다. 육의 양식은 진정한 생명의 양식이 아니다. 이 땅의 시간적 존재 속에서 사용되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은 살리는 것은 영이고 육은 아무런 유익이 없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기록하게 하신 성경말씀은 영이며 생명이다. 

②그 분 성령의 감동
 진리의 성령께서 참 자유를 주신다. 죽음의 근본적인 의미는 분리이다. 죽음은 영과 육의 분리이다.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기 때문에 죄의 권세로부터 분리되었다. 십자가는 성도에게 진정한 권세를 주었다. 이것이 성도들에게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자로 여기라고 하시는 말씀(롬6:11)이다. 진리의 성령께서 성도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말씀을 깨닫게 하신다.
2)정리된 主題를 통하여

성경 공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주제일 것이다. 그 주제는 성경의 논리적 통일성이라는 의미와 동일하다. 분명한 주제는 알차고 견고한 목차를 제공해 주는 기초이다. 신구약성경 전체의 주제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논리의 기초이다. 이 주제는 관점과 바로 통하고 있다. 

①논리적으로 묶어진 관점
하나로 정리된 주제는 논리적으로 잘 묶어진 관점인 셈이다. 이렇게 잘 정리된 관점이 있으면 성경의 길을 알아 원래의 기록 목적대로 볼 수 있다. 그 관점은 전통적으로 구속사(救贖史)에 비중이 있어 왔다. 그러나 이 구속사의 관점으로 성경 전체를 논리적으로 이해하려고 했지만 많은 어려움에 봉착한 것이다. 이 관점은 위의 진리의 성령께서 절대적으로 주시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와 맥락을 같이하여 귀 있는 자를 언급하고 있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들을 수 있는 귀 있는 자들에게 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성경의 논리적 통일성의 확보는 2000년 교회사의 꿈이었다. 

②그 관점대로 보이는 法
듣고 보는 대로 살 수 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자연스러운 이치이며 법일 것이다. 사람의 두 눈은 하나를 보도록 되어 있다. 오른 쪽의 눈은 오른 쪽의 물체를 보고 왼 쪽의 눈은 또 다른 왼 쪽의 물체를 볼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위의 성령의 감동과 연계된다. 인간 스스로 이쪽과 저쪽을 동시에 다 볼 수 있는가? 육신의 눈도 이러한 데 소위 말하는 신령한 눈은 어떠하겠는가? 이 신령한 눈은 성령의 감동과 통한다. 신령한 눈이 이쪽과 저쪽을 다 볼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심에 집중하여 본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질은 이목 집중과 정신 집중에 바로 통하고 있다. 두 눈이 볼 수 있는 것은 하나의 中心이다. 그 중심은 바로 관점을 의미한다. 성경이 하나님을 계시(啓示)하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보이는 法이다. 이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감동적인 은혜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중어중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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