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4,예수 그리스도 : 동정녀로부터의 탄생과 하나님의 아들 됨
우리는 지금 로마가톨릭의 대표적인 신학자「한스 큉」의 저서「현대인을 위한 사도신경 해설 믿나이다(2006)」를 요약 비판하고 성경신학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사도신경을 교회 예배 순서에서 제외한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공식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확인했듯이 역사적으로 사도신경이 사도들에 의해 쓰여 졌는지는 확실한 근거를 찾을 수 없었으며 교회사에서 믿음의 고백들에 사도라는 명칭이 부여되면서 그 권위를 덧입게 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이에 전 교인들이 예배시간에 한 목소리로 고개 숙여 똑같이 고백을 해야 할까?
지난 호에서는 로마가톨릭에서 고백되어지는 사도신경의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라는 부분을 비판했는데 저자는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무한의 실재로 보고 이성적 신뢰를 전제하고 신경을 고백한다. 신앙을 고백하는 신적 대상에 대한 존재 확증도 되지 않는 상태에서 ‘믿나이다’라는 고백을 하는 것이다. 출발부터가 구름 위에 집을 짓는 것이다. 이어서 이번 호에서는 신경의 그 다음 부분인「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부분에 대한 논하고자 한다.
신경의 이 부분 역시도 많은 의문을 갖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즉 신의 아들이다. 하나님은 어머니는 아니고 아버지이며 어찌 인간이 신의 아들이 될 수 있는가. 또 예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 동정녀의 몸에서 잉태 되신 분이다. 어찌 처녀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이 역시도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오늘날의 과학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저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 사용을 그의 죽음 이후 사람들이 부활한 예수를 보고 듣는 확고한 체험에 터하여 받아들여지고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께로 “들여 높여졌음을”믿게 됨으로 신앙 공동체는 “아들”이나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칭호를 적용하기 시작 했다는 것이다. 왕이 즉위의 순간 “하나님의 아들”로 책봉되었듯이(고대 동방의 제왕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함) 십자가에 달렸던 분이 일으켜짐과 들여 높여짐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로 책봉되고 선포되었다고 된 것으로 논하고 있다. 또한 예수의 유년 시절 이야기를 비록 역사적으로 불확실하고 매우 전설적인 이야기로 인정하면서 비정치적이지 않은 고백과 선포의 이야기들로 의미를 부여한다.
이 이야기들은 유대계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기원했을 것이고 그것을 마태와 누가가 손을 대어 복음의 첫머리에 놓았다고 본다. 즉 동정녀 탄생은 그 자체로 볼 때, 그리스도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이 표상은 복음서 기자에 의해 예수의 신자성(神子性:하나님의 아들됨_의 “근원”을 소급하여 제공하기 위한 “원인론적” 전설 혹은 설화로서 사용했다고 본다. 그래서 동정녀의 탄생 이야기는 생물학적 사실에 관한 보도가 아니라 원 상징을 빌려 현실을 해석한 것이며 그것은 예수와 함께 하나님에 의해 - 내 정신의 삶에서만이 아니라 세계 역사 안에서 - 참으로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졌음을 나타내는 매우 의미심장한 상징으로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의 동정녀 탄생은 복음의 중심이 아니고 중심은 예수 자신이며 그 자신의 고유한 말씀과 행동과 고통 안에 있는 예수그리스도라는 것이다. 덧붙여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은 그저 선포 텍스트와 간접적인 역사 보도만을 가지고 있으나 나사렛 예수는 하나의 역사적 인물이라는 점을 밝힌다. 또 이 사람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뜻․사랑이 인간적인 모습을 취했고 그의 모든 말과 선포, 행동과 운명 그리고 온 인격 안에서 인간 예수는 오직 한분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선포하고 계시했다고 정리하고 있다.
그럼 성경은 어떻게 증거하고 있는가! 처녀 잉태를 상징으로 본다는 것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다. 하나님은 이 우주만물을 지으신 분으로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분(롬4:17)이며 생명의 근원이며 본질이신 창조주이시다. 하나님은 첫 아담을 지으실 때 땅의 물질인 흙에 생기를 불어 넣어 생령체로 창조하신 분이다. 이 하나님께서 처녀의 몸에 생명을 잉태시키는 것은 어렵거나 놀랍거나 기이한 일이 아니다. 너무나 쉽고 얼마든지 하실 수 있는 일이다. 피조물 인간이기에 이해할 수 없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무식한 반문을 하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는 왜 처녀의 몸에 예수를 잉태시켰을까. 처녀 잉태는 예수가 구약의 약속대로 오시는 그리스도임을 증거 하는 표적이며 증표이다. 구약에 약속대로 메시아는 처녀의 몸에 잉태됨(사7:14)을 이루시어 그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표적으로 증거 하신 것이다. 모든 인간은 남녀의 육체적 결합으로 생명이 잉태되지만 그리스도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의 몸에 잉태되며, 뿐만 아니라 구약의 언약대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계보를 따라 요셉의 아들로 오심으로 예수가 메시아 되심의 표적을 증거 하는 것이다.
구약 성경 전부가 메시아 보내실 것을 언약하고 있고 신약 전체가 메시야가 언약대로 오심을 증거하고 있다. 특히 그리스도의 전 생애가 구약의 약속대로 오심을 마태복음은 더욱 집중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마태는 그리스도의 잉태, 출생, 성장, 직임(선지직, 왕직, 제사직)으로 예수가 구약의 약속대로 오신 그리스도임을 증거 한다. 처녀 잉태 한 가지 사건만이 아닌 그리스도의 전 생애와 그 생애 동안의 모든 사역이 당신이 구약의 약속된 그리스도임을 증거하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예수께서 육신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서 택한 백성들의 죄를 모두 전가 받으시며,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여 권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신 그리스도라는 것이다(롬1:3~4).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이 신경은 예수의 전 생애가 아닌 처녀 잉태만을 고백하고 있으며 그 역시도 역사적 사실이 아닌 상징으로 보고 있는데 과연 이 신경을 고백해야만 하는가!
|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
사도신경5,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음의 의미 |
22, 통째로 성경을 볼 수 있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