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결론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장중에 있어 왔으며 지금도 그 은혜 속에 있다. 선교 역사 이래 유례없는 부흥과 성장을 구가해왔다. 그러나 이제 교회의 진로가 심히 불투명한 상태이다. 매우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교회 이제 어디로 가야하는가? 이 질문 앞에 우리 모두가 서있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하나님 편에서 보자면 새로운 출발을 향한 디딤돌이며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실 바탕이 된다”
1. 한국교회의 역사와 현존의 위기
한국교회의 부흥과 현존은 그야 말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기적의 역사였다. 36년간 일제의 탄압, 50년대 한국전쟁의 참상, 그리고 60년대의 극한 가난을 거치면서 하나님께서는 말할수 없는 은혜를 베풀어 한국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을 키워왔다.
특히 선교초기의 해외 선교사들의 고난에 벅찬 헌신을 통해 드러난 복음을 향한 열심은 한국의 역사를 바꾸어 놓을 만한 일 이었다. 그래서 선교 역사상 어느 나라에 비교할 바 없는 교회개척과 설립의 밑바탕이 형성되었다. 그런 토대위에 한국교회 성도들의 각별한 신앙적 열심과 교회를 향한 헌신은 오늘의 교회를 키워오는 견인차 역할을 담당했다. 특별히 교회 지도자들의 희생적 헌신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교회 역사 가운데 한국교회의 위치는 독특하고도 놀랍다. 아시아 교회 가운데 독특한 부흥의 역사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일본은 한국 보다 훨씬 먼저 복음이 들어갔지만 교회가 미미한 정도이며, 필리핀이 기독교적 국가라고 하지만 변질된 복음을 가르치는 카톨릭 교회가 대세이다. 이미 유럽 교회는 영적 생명을 거의 소진한채 후기 기독교사회로 진입했고 오히려 모슬렘과 불교가 부흥하는 이교사회가 되었다. 미국 역시 유럽의 전철을 밟고 있다.
이런 시점에 오직 한국만이 성경의 권위를 중시하고, 교회생활에 열심을 내는 성도들이 존재한다. 이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역사의 기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교회는 문화대혁명기(66년~76년)의 탄압을 거치면서 오히려 강건하게 성장했고 지금은 신학적 갈증을 겪고 있다. 즉 성경이 가르치는 체계적인 복음을 기다리고 있다. 이 시점에 한국교회의 위기가 심각하게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하나님 편에서 보자면 새로운 출발을 향한 디딤돌이며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실 바탕이 된다. 한국교회의 사명은 분명하다. 아시아 시대를 맞아 아시아 교회를 세워가실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길이다. 그 전제조건은 성경 전체가 가르치는 복음의 재발견이다. 이전 서구선교사들과 신학자들이 전해준 구속사적 신학과 그 신학에 근거한 복음이해로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 그동안 그들로부터 배워왔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서구신학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성경적 신학의 출현과 정립에 한국교회의 미래가 달려있다.
2. 한국교회는 바벨론 포로시기로 진입
“한국교회는 이른바 바벨론 포로시기로 진입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세속화
한국교회의 문제상황은 80년대를 지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교회의 성도수가 늘어나고, 돈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교회는 부패와 세속화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적인 요인일 뿐 이다. 한국교회의 결정적인 문제점은 신학의 빈곤과 그로 말미암는 강단의 변질에서 찾아야 한다.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복음이해의 결핍, 이는 교회 세속화의 지름길이다. 인간은 너나 할 것없이 죄인이며 하늘로 부터의 말씀의 공급이 없는 한 자연스럽게 타락의 길을 걷는다. 한국교회 초기 개척기에는 그저 예수 이름만을 외치며 열심만으로도 교회가 세워지고 운영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모여든 성도들에게 체계적이고 성경적인 복음의 지속적인 가르침이 부재할때 교회의 세속화는 불을 보듯 뻔한 현상이다.
교회지도자들이 세상 정치를 빰치는 정치공학적인 머리가 돌기 시작했고, 교회직분이 점차 권력화 세속화 되면서 직분을 얻는데 거래가 존재하는 성직매매등과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목사직이 괜찮은 직장이 되기도 하고, 대형교회지도자는 기업의 CEO와 같은 지위에 서 있다. 이천년 교회사에서 간헐적으로 반복되어온 교회타락의 역사가 한국교회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설교의 타락과 변질
그러나 이런 현상들은 위에서도 지적한대로 결과적이며 지엽적인 현상일 뿐이다. 무엇이 근본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강단의 변질이며, 더 나아가서 신학의 왜곡과 빈곤에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 강단은 그야말로 신랑의 사랑을 저버린 음부들의 놀이터가 되어가고 있다. 강단에서 외쳐져야하는 복음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복음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위대한 영광의 가감없는 선포이다. 인간의 죄악의 실상을 드러내되 그 모든 죄악을 덮고도 남음이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자비하심의 확증이 복음인 것이다.
그러나 많은 한국교회 강단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확증하는 복음의 영광이 사라진지 오래이다. 그저 성도들의 행동을 지적하고 열심을 독려하는 지루하고 생명력을 상실한 도덕 설교류가 대부분이다. 설교자의 관심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의 확증과 영광선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성도들로 하여금 교회에 열심을 내게 하려는 방법론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는 설교의 타락이다. 기독교 설교는 인간의 자기주장에 담긴 강연이 아니다. 기독교 설교는 선동이 아닌 것이다. 기독교 설교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가감없는 선포이다. 기독교 설교는 예수가 구약에 언약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함으로 하나님 여호와 되심을 확증하는 일이다. 이것이 종교개혁자들이 그렇게도 염원했던 하나님 영광의 선포라는 명제이다.
일부 유명 설교자의 설교에 나타나듯이 강단 선포가 허무개그로 바뀌었고, 성도들은 그런 사이비 영적 흥행을 즐긴다. 이는 비극이다.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의 목적대로 선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와 영광을 선포하는 목적으로 기록된 말씀이 설교자의 자기 목회의 도구로 변했다는 사실이다.
신학의 파편화와 빈곤
문제의 진원지는 신학교이다. 성경은 원리적으로 하나님의 자기계시라는 목적으로 단순하지만 그 해석의 정도와 깊이를 고려하자면 체계적인 해석을 요한다. 이천년 신학의 역사는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어떻게 해야 성경을 올바르고도 깊이 있게 해석할수 있는가에 대한 부단한 추구였다. 이 일에 신학의 사활이 걸려 있다.
그러나 한국신학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한국의 신학의 상황은 서구신학의 수입 복사판이다. 오히려 더 사대주의적이다. 서구신학은 이미 현대학문의 절대적인 영향아래 세분화되고 말았고 신학이 지니고 있어야할 학문적 품격과 권위를 상실했다. 서구신학은 주경신학, 조직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 목회상담학 등등으로 나누어져 연구되고 있다. 각 신학의 분야에서도 또 더 세분화되어 연구된다. 이른바 신학의 파편화현상이다.
이런 신학의 실정에서 성경 전체를 바라보는 신학적 안목과 해석학적 원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 결과 신학자들 간에 소통이 안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도무지 신학은 성경 전체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에 기초해야한다. 그러나 신학교의 실정은 어떠한가? 세분화된 신학의 이론과 지식들을 배우느라고 성경 전체에 대한 해석학적 토대에서 나오는 복음적 안목을 키울 수가 없다. 이런 신학에서 성도의 영혼을 살리고 교회를 새롭게할 생명력이 나올 수 없다.
그러나 신학은 그런 차원의 학문이 아니다. 신학은 여러 학문중의 하나가 될수 없다. 당대 헬라 문화를 섭렵하고 구약 율법에 정통했던 바울은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하다고 고백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성경 전체를 통해 확증하는 신학은 최고의 학문이며 모든 학문을 아우르는 근본 학문인셈이다. 이를 구약의 솔로몬은 하나님 여호와를 아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지 않던가!
성경은 나누어 해석될수 없는 한권의 책이다. 66권으로 되어 있지만 그 의미상 진리의 구조적인 통일성을 가진다. 이런 성경전체를 아우르는 새로운 해석학적 원리를 표방하면서 출현한 신학이 바로 언약성취사적 성경신학인 것이다.
3. 결론-성경신학의 출현
“언약성취사적 성경신학은 30여년 전에 태동되고 지난 세월을 거치면서 확립되어 왔다”
한국교회는 이른바 바벨론 포로시기로 진입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교회가 붕괴되고 있는 소식이 들여온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기득권을 지키고 바벨론의 침공으로부터 살아날 수 있을까 하는 전략을 세우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구약적으로 말하자면 애굽으로 가면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던 남유다의 어리석은 지도자들과도 방불하다.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음성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 바벨론 포로 생활 을 하라는 것이다. 70년 포로생활은 고난의 시간이지만, 그 기간은 과거의 자신들의 죄악을 통렬하게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새롭게 체험하는 시간이다. 더 나아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주권적인 능력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성을 깊이 깨닫는 복된 기간이다.
무너질 것은 무너뜨리시고 다시 세워야할 한국교회를 세울 것이다. 이것이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이다. 하나님만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온 어리석었던 삶을 돌이켜 성찰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런 중차대한 시점에 하나님은 한국교회를 새롭게 갱신해갈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다. 그것은 성경 전체를 포괄적으로 심도있게 볼수 있는 신학의 출현이다. 우리는 이를 언약성취사적 성경신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언약성취사적 성경신학은 30여년 전에 태동되고 지난 세월을 거치면서 확립되어 왔다. 이는 언약에 신실하신 여호와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주권적인 인도였다. 이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였다. 이는 앞으로 세워져갈 아시아 교회를 위한 탄탄한 신학적 무장의 준비 역사였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들을 부르시고 오직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만을 통해 아시아 교회를 세워가도록 역사하실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언약적 성취를 주권적으로 행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시다. 할렐루야!
|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
23,참된 自由 있나? |
사도신경5,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음의 의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