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참된 自由 있나?
자유를 생각하면 두 가지의 중요한 문제가 들어 있다. 참된 인간의 자유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하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인간의 참된 자유는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중요한 문제를 던지고 함께 생각하고 연구하고자 한다. 물론 자유의지나 인간의 죄에 대한 책임문제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여기서는 참된 자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데 그 중심이 있다.
1)眞理에 의한 인간의 자유
자유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먼저 그 자유가 어디로부터 오는가를 제기한다.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하게 생각되어 왔다. 실제 생활에서 생각하고 복을 누리며 갈등하는 이 모든 것들이 이것과 연계되어 있다. 진리가 인간을 자유하게 한다는 기본적인 명제를 다 인식하고 있다. 이 기본적인 문제를 성경의 주제에 근거하여 찾고 확인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①생명의 성령의 法
이 진리 중에서 인간의 자유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그 힘을 부여한다고 증언하고 있다(롬8:2). 예수께서 자신이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였다. 이 말씀의 의미는 두고두고 되새겨져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이렇게 확증한 말씀은 일반 학문에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늘로부터 오신 분이 이렇게 확증하신 것이다. 이 생명의 성령의 법은 구약성경에 이어 나오는 신약성경 전체를 묶어 주고 있는 용어이다. 신약성경의 주제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이다. 그 가운데서 4복음서는 구약성경의 주제에 철저하게 근거하여 예수 자신이 직접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하고 있다. 그 이후의 논리인 사도행전부터 요한계시록까지도 역시 구약성경과 4복음서에 근거하고 연계하여 성령께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하고 있다. 이렇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주제에 맞추어 그 분이 길이 되고 진리가 되고 생명이 됨을 역설하신 것이다. 진리이며 생명이신 그 분의 약속에 맞추어 오신 성령도 바로 그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데 그 중심이 있다. 그러므로 생명의 성령의 법은 신약성경 전체에 연계되어 있는 것이 드러났다. 생명의 성령의 법에서의 法은 힘(power)과 불가분의 관계이다. 이 법을 힘이라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 힘이 인간을 진정으로 자유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②은혜와 의(義)의 선물
그리스도에 의하여 의롭게 되었으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게 된다. 다만 이뿐 아니라 의롭게 된 성도는 환난 중에서도 즐거워하고 자랑한다. 이렇게 되는 것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성도를 자유롭게 한 것이다. 진리를 앎으로 환난을 통하여 인내를, 인내를 통하여 연단을, 연단을 통하여 소망을 가지게 된다. 이 논리는 바로 생명의 성령의 법에 의한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인간을 해방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리에 의한 인간의 진정한 자유다.
2)죄와 사망에서의 해방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정치학의 첫머리에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했다. 이 명제에 대해 대개 크게 부정하지 않는다. 사람과 함께 살아가면서 그 사람들로부터 울고 웃으며 지낸다. 여기서 가장 심각하게 대두되는 것이 죄와 인간의 죽음이다, 그 어떤 인간도 이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이 없는가? 그 답이 이 글의 주제인 참된 자유가 아닐까?
①결코 정죄함이 없는 특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생각 중에서 상당한 시간 동안 죄의 책임에 대하여 고민하고 갈등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 죄는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그 정체가 쉽지 않다. 또 도덕적인 죄나 종교적인 죄 등을 함께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은 인간이 나면서 죄 중에 잉태되었다고 증언한다. 사도 바울도 이 생각을 하다가 자신이 비참하다고 고백하였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주겠는가? 라고 한 것이다. 이 고민스러운 고백에 대한 답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다. 그래서 바울사도 그 그리스도를 강조하고 부각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참된 자유는 그 그리스도께서 주신 성도의 선물이며 특권이다.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확실히 가졌다는 의미이다.
②죽어도 산다는 참된 소망
그 누구도 죽음을 생각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 자체가 죄인이기 때문이다. 한번 왔다가 가는 것이 정한 이치인 줄을 생각하면서도 자나 깨나 언제 죽을까 어떻게 죽을까 하는 것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러한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참된 자유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죽어도 산다는 확실한 소망이 없다면 지금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시 강조하여 참된 자유 없이 사는 것이 사는 것일까? 라는 질문을 함께 던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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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
24,누구를 의지할 수 있나? |
15-결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