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만화
“애들아, 요즘 책별로 안읽은 것 같구나. 뭐 읽고 싶은 책 없니?” “응 메이플 스토리 신간이 새로 나왔대”
일에 바빠 정신없던 엄마가 아이들 교육에 얼핏 정신을 차릴려고 할때마다 한번씩 불쑥불쑥 내뱉는 뻔한 질문이요, 애들에게서 돌아오는 똑같은 답변이다. “만화책은 안되”라고 거절하지만 내심 ‘요놈들 왜이리 날 닮은거지’ 하는 생각이 든다. 학교와 집만을 왔다갔다 하던 내 학창시절, 어둑어둑하고 낡은 종이냄새 가득한 만화방이야 말로 엄마의 자궁같이 편하고, 완전 몰입의 경지에 이를수 있었던 종교 사원같은 곳이었다. 만화는 나쁘기만 한 것 이었을까? 내인생의 만화를 몇편 골라본다.
■캔디=주일 아침마다 꼼짝없이 나를 TV앞에 앉히게 했던 만화였다. 어떤일이 있어도 밝고 씩씩하게 희망을 잃지 않는 캔디 캐릭터는 주변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바이러스 같다. 직장에서도 그런 밝은 직원들이 유달리 예뻐보이고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것은 인지상정이 아닐까 한다. 캔디에는 대조적인 두 남자가 나온다. 테리우스와 안쏘니. 나는 고독하고 멋진 테리우스 보다 부드럽고 따뜻한 안쏘니가 더 좋았다. 딸아 테리우스 같은 남자는 매력적이지만 널 힘들게 할거야. 밝고 따뜻한 안쏘니 같은 남자를 사위로 델고 와다오~
■주먹동자=왼쪽주먹이 머리통만하고 머리를 길게 땋아 늘어뜨린 조선시대 남자아이인데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힘이 엄청 쎄서 나쁜 무리를 거뜬히 무찔렀다. 줄거리는 전혀 기억나지 않으나 힘쎈 삐삐가 좋았듯이 어린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나쁜 어른을 무찌르는 주먹동자가 너무 좋았다. 빨리 힘센어른이 되고 싶었던 나의 바램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애들아 어른이 되었다고 힘이 세지는 건 아니더라. 그리고,힘으로 제압하면 부작용도 많더구나. 부드러운 사랑으로 설득하고, 안되면 적어도 동의라도 구하는 것이 가장 힘센거란다.
■로봇 찌빠의 모험=따발총으로 변하는 코, 머리에는 헬리콥터 프로펠러로 변신하는 꽃 한 송이, 도청장치가 장착된 귀. 가젯트 형사는 이 만화에서 영감을 얻은게 아닐까 한다. 로봇찌빠는머리의 프로펠라를 펴고 주인을 데리고 모험을 떠나는데 심지어 대륙을 횡단할 수 있기까지 한다. 나도 프로펠라가 달린 로봇타고여행을 가고 싶다. 적군이 나타나면 따발총으로 따따따따 없애고…
■빙상의 하얀날개=초등학교 고학년 부터는 김영숙의 ‘빙상의 하얀날개’를 비롯한 수많은 피겨 스케이팅 만화를 보았다. 빙상이 전혀 인기가 없었던 시절이었으나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과 가슴아픈 로맨스에 빠져 너무 재미있게 보았던 만화가 아닌가 한다. 후에 김연아가 피겨 스케이팅으로 세계를 재패했을때, 만화에서만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정말 우리나라 선수가 이런 꿈같은 일을 해내다니 너무 감격스러웠다. 김연아의 엄마도 혹 이 만화를 즐겨보지 않았을까?
■늘푸른이야기=이미라 작가는 대구를 배경으로 만화를 그렸다. 내고향 이야기가 나오는 만화에 더 잘 감정이입이 되었던것 같다. 근데 애석하게도 내 주변에는 솔베이지 노래를 부르는 서지원 같은 멋진 남학생은 없었다. 주인공인 솔비는 캔디같은 캐릭터로 너무 평범한 여학생인데 푸르메와 서지원 둘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그래서 난 내가 어른이 되면 당연히 두명의 남자가 동시에 날 사랑해서 그 둘중에서 고민하며 선택해야 하는 줄 알았다. 음~그치만 한명의 남자와 사랑하고 가정을 이루는 걸 부러워하는 친구들도 많더라. 너희같은 보물도 얻었잖니?
■아르미안의 네딸들=신일숙 작가는 그림이 예술이었다. 역사적 배경도 그럴싸 했고 스토리도가장 완성도가 높은 만화가 아니었나 한다. 너무 빨리 읽어 내는데 신간발간이 그 속도를 못 따라왔다. 신간이 나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며 몇번이나 만화방에 헛걸음질했던 기억이 난다. 요만화가 없으면 그냥 집으로 돌아왔냐고, 무슨소리? 만화방에는 아르미안의 네딸들 말고도 재미있는 만화많았거든~
■공포의 외인구단=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유명한 국민 만화가 아닌가 한다. 까치 오혜성의 집념이 너무 강하고 독해서, 만화를 읽고난 후에도한동안 뇌가 얼얼했던 기억이 난다. 엄지를 향한 집착에 가까운 사랑도 인상깊었지만 성공을 향한 헝그리 정신과 치열한 승부욕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 같다. 이제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무언가를 꼭 이루려고 하는 열정과 집념이 반드시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때로는 몸에 힘을 빼고 한발 물러나야 할때도 있다는걸 이제 몸으로 마음으로 느낀다. 아들아, 그러나 네 나이에는어떤 일을 소망하고 열정과 최선을 다해 그일에 매진해 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단다. 그래야 힘을 뺄 때도 알게 되고, 제대로 힘도 잘 조절할 수 있단다.
인터넷에 추억의만화를 뒤져보니 오래된 초판 만화가 상당한 고가에 팔린다. 우리 애들 메이플 스토리 51권은 언제쯤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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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혜숙 권사 (장안중앙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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