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에 대한 단상
흔히들 사춘기를 ‘질풍노도의 시기’ 라 부른다. 심한 감정의 기복과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 특별한 이유가 없는 반항으로 자신과 주변을 힘들게 한다. 그리고 차츰 어른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외모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거울을 보는 횟수도 늘어나고 이성에 대한 관심도 많아진다.
이를 두고 의학자들은 호르몬 분비의 불규칙을 이유로 들며 심리학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불확실성과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으로 진단하기도 한다. 또 사회학자들은 소년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이유로 들기도 한다. 무엇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러 가지 진단이 나름 근거가 있다고 생각될 뿐이다.
모든 현상이 그렇듯 전체를 보면 그 현상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특징들이 맞는듯하지만 개개인에 적용하면 꼭 그렇지는 않는 것 같다. 국민성이라든지 혈액형에 따르는 성격진단이라든가 I.Q 문제 등이 모두 전체의 특징을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개개인에 적용시킬 때는 무리가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나의 사춘기 현상도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감정의 기복이나 반항, 폭발적인 에너지, 이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내게도 분명 사춘기라는 열병이 있었으니 그 고통은 만만치 않았다.
저녁노을을 바라보거나 꽃이 질 때, 낙엽이 쌓일 때 가슴에는 큰 돌덩이가 떨어져 가슴을 마구 휘 젖고 다녔으며 실제로 물리적인 통증도 따라왔다. 살아 존재하는 모든 것이 슬퍼보였고 심지어 아름다운 꽃이나 웃는 아기의 모습까지도 슬퍼보였다.
사춘기의 열병은 점점 깊어만 갔다. 그 즈음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던 소위 일류여고라는 모 학교(당시는 입학시험으로 중·고교를 들어갔음)에서 문학소녀 3명이 동반자살을 해서 온 국민을 놀라게 한 사건이 있었다. 나는 열광했다. ‘그래, 죽음너머엔 아마 굉장히 아름다운 세상이 있을 거야’ 이 사건은 사춘기의 내 열병을 낫게 해 줄 묘약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 묘약도 방법으로 들어가면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겁이 났다. 자신의 나약함을 비웃으며 다른 묘약을 찾기 시작했다.
이 견디기 힘든 쓸쓸함과 외로움, 안타까움 그리고 수시로 찾아오는 눈물 젖음의 근원은 무엇이란 말인가?
뜻도 모른 채 ‘이방인’ ‘죄와 벌’ ‘죽음에 이르는 병’ 등을 읽으며 지적 허영심을 채워 가기도 하고 ‘폭풍의 언덕’ ‘제인 에어’ 등을 읽으며 연애 감정을 맛보기도 했다. 읽는 동안은 견딜 만 했다. 그러나 세월이 약이라고 대입준비를 하고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그 지독했던 열병은 차츰 잦아들었고 나는 안정을 찾아 갔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내게 찾아 온 성경신학과의 만남은 내 사춘기 열병의 근원이 무엇이었는지를 답해 주었으니 그것은 영원에 대한 그리움이었던 것 같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었으니 아마 나는 그때 우리가 떠나 온 본향(영원)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열병의 근원을 몰랐을 땐 그리움으로 아프고, 안타깝고, 힘들었지만 지금은 돌아 갈 본향 하나님 나라를 아무리 그리워해도 그때처럼 아프지 않다. 그리스도의 지체되어 위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아래로는 지체들과의 완전한 배려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그곳, 그곳에 가기 전 배워야 할 일(5대 속성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 영광)과 해야 할 일 (주신 은사 따라 교회를 세워가는 데 쓰임 받는 일)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 일들이 끝나면 나는 가리라. 그리운 그곳으로.…그리움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레임, 기다림, 순수함 때문에 나는 그 단어를 자주 떠 올리며 미소 짖는다. ‘그리움’ 참으로 따뜻하고 아름다운 말이다. 육신의 고향도 그립거늘 영원한 본향이 그리운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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