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예배의식, 성경적인 근거 있나?
<히 9:9~10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
보편적인 예배(禮拜, worship)의 의미는 신앙의 대상에게 바치는 종교적인 의례(儀禮)를 중심으로 이루는 의식이며, 신앙의 대상에 대한 인간의 상징적인 표현방식이다. 이슬람교에서는 하루 5회씩 메카를 향해 예배를 하고, 로마 카톨릭교회는 미사의식과 함께 십자가(성호)를 긋는 행동을 하기도 하며, 불교에서는 절하는 배례(拜禮)와 절차에 따른 설법의 모임인 법회(法會)가 있다. 발전된 형태로는 사원이나 교회당 등의 특정한 장소에 제단(祭壇)을 설치하고, 희생제물이나 헌물(獻物) 그리고 노래나 춤을 통해서 그들이 믿는 신에게 찬미와 감사와 기원을 공동으로 행함으로써 예배를 드린다.
정통기독교의 예배는 전통적인 의식이 가미된 의례가 아니다. 즉, 내용전달의 방식이지 의전적인 형식이 아니며, 제사의례가 아니라 교육(성경공부)의 일환(一環)이다. 그런데 다수의 개혁주의교회는 여전히 의례적인 의식에서 탈피하지 못한 가운데 의식이 예배의 거룩성을 보완하는 제도로 정착하게 되었다. 특히 주일날의 예배는 거룩한 날에 드려지는 예배로써 명칭에서부터 대예배로 분류한다. 절차를 보면, 성가의 찬양과 주악에 맞추어 집례자(목사)가 가운을 입고 제단(강단)에 등단하고, 참석한 성도들은 주악에 맞추어 신에게 회개의 묵념을 하며 교독문을 낭독하고, 일어서서 찬송을 부르고, 신앙고백을 암송하며, 성가대의 장엄한 찬양이 울려 퍼지고, 장로가 나와서 대표기도를 올리며, 성경구절을 봉독하고, 예배의 핵심인 설교는 짤막하게 끝이 나며, 연이어 장문의 광고가 낭독되고, 헌금궤가 군중 사이를 돌며 헌금을 실시하고, 헌금궤는 신에게 제물을 헌납하듯이 강단위에 올려놓고, 목사가 축복기도를 중재하며, 엄숙한 축도를 선포함으로써 예배가 마쳐진다. 이러한 의식과 절차는 장로교 헌법에 표기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교회들은 헌법에 기초한 식순에 따라 공적인 예배를 드린다.
이러한 예배행위는 마치 법도에 따라 제사를 드리는 형태와 유사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식과 절차에 따른 예배가 신에게 열납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래서 주일날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신 앞에 나와 중재자인 목사를 통해서 신과 소통하고, 지난 한주간의 잘못을 용서받고 앞으로의 날들을 위해서 축복을 받는 의례적인 행사로 착각하고 있다. 문제는 전통적인 장로교 예배의식이 초대교회의 예배와 동일하지 않다는데 있다. 초대교회의 예배는 구약적인 제사행위에서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이다. 즉, 지정된 공간에서만 시행되는 건물 중심의 예배개념을 탈피하고, 구약적인 제사의식에서 내용중심의 교육을 지향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의례중심의 구약적인 제사에서 신령과 진정의 예배 문화를 창출했고(요 4:23~24), 사도 바울 역시 언제 어디에서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영적예배를 주창했다(롬 12:1~2). 초대교회시대에는 모이면 성경을 가르치고 상고했으며, 성도들 간의 애찬(식사)이 예배의 전부였다. 초대교회에는 가정과 회당에 모여 밤을 새며 성경을 공부했으며, 어떠한 절차와 의식도 시행되지 않았다. 초대교회시대에는 어떠한 모임이나 예배 시에 현재와 같은 의례에 따라 실시된 사례가 전무하다.
그렇다면 현금의 예배의식은 언제부터 유래된 것인가. 알렉산드리아의 교부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AD 150~215)는 예배에 시각예술을 최초로 도입하였는데 이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그리는 관습의 시초가 되었다. 2세기 말부터는 성도들의 애찬(고전 11:17~34)이 일정한 양식을 갖춘 만찬으로 둔갑하기 시작하여 4세기에는 떡과 잔이 위압적이며 두려움과 신비한 분위기를 창출하는 화체설이 등장했으며, 떡과 잔을 두는 거룩한 제단을 만들어 성직자만이 다루게 하였다. 3세기에 접어들면서는 장소와 물건 그리고 제사장 제도에 신성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4세기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재위 306∼337)는 성전의 개념을 본격적으로 도입하여 예배처소를 거룩한 성소로 미화시키고, 신이 특별한 장소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각인시켰으며, 이교도의 예법을 가미시켰고, 등불과 향을 피우는 관습에 따라 성직자가 등단할 때 등과 향이 같이 입장하게 하였으며, 성직자는 집전 시에 로마 행정관들이 입었던 복장과 유사한 특별한 의복을 착용하도록 허용했고, 로마관습의 의식을 도입하여 성가대가 조직되며, 예배의 극적인 효과와 의식적인 냄새를 진하게 풍기게 되었다. 그레고리우스 1세(Saint Gregory, 540~604)는 성례전 신학을 수립하여, 인간은 회개하고 세례 받을 때 구원을 받고, 세례 후에 지은 죄는 회개와 함께 보상을 통해서 속죄된다고 한다. 속죄의 보충적인 수단으로는 성찬예식을 도입함으로써 화체설 수립의 기초를 닦았다. 또한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예배의식이 행해지던 관습을 일반화 시켰고, 성가와 시편송을 만들어 교회음악을 증진시킴으로서 예식과 교회음악을 예배의 요소로 고착시켰다. 이러한 제도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미사예전을 확립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현금의 예배가 의식식적인 의례가 되도록 하였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미사의 특징은 성경을 공부하기 보다는 낭독하는 것에 불과하며, 예전을 통한 제사와 행위와 유사하다. 예배시간은 온통 절차에 따른 의식으로 엄숙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성직자는 예전의 중재자가 되어 거룩을 외친다. 전통적인 개혁주의 교회의 예배 모습 역시 이와 유사하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후의 예배는 복잡한 절차나 거룩성이 부과된 예전의식이 없었다. 예배는 오직 하나님의 자기계시서인 성경을 교재로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딤전 4:13)는 바울의 말과 같이 오직 성경공부에 전념하는 것이다. 물론 찬송과 기도는 자유롭게 행해지지만 정해진 절차에 따라 규정된 적은 없었다. 이제라도 교회는 복잡한 절차와 보여주는 예전에서 탈피하여 예배의 본질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딤후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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