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해석되어지는 기쁨
지난날 구속사 신앙이었을 때, 항상 전도를 하면서도 나의 내면에서는 진리가 말하는 인생의 복된 삶과 천국의 삶에 대한 확증이 없어 늘 목말라 했었다. 그리고는 “태생이 있고 인생이 있고 영생이 있는데 그 영생은 예수를 믿어야 가는 곳이라고…”
성경을 억지로 풀어 설득하여 어떻게든 그 사람을 교회에 데리고 오려했고, 데리고 오면 마치 내가 그 사람을 구원한 것처럼 기뻐했다.
전도가 된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병들었거나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심방을 가서 거기에 맞는 성경구절을 읽어주고 그들의 문제를 놓고 기도했다. 목소리에 힘을 주어 ‘이 병들게 하는 귀신아 예수이름으로 물러갈 찌어다!’
마귀를 쫓아내고, 예수 이름으로 복을 빌어도 그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의 심정이 되어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철야도 하고 새벽기도도 하고 믿음을 달라고 목이 쇠도록 울부짖었다. 왜 빛과 어두움을 창조하셨는지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성경 어디에 혹시 답이 있을지 몰라 성경을 읽어보면, 해석은 되지 않고 의문에 꼬리를 달고 나를 괴롭혔다.
미칠 지경이었다. 구하면 들어준다면서 왜 응답이 없냐고 두 주먹 불끈 쥐고 한탄하듯 원망하듯 기도했다.
많은 날들이 지나고 교회에 문제가 있게 하시고 진리가 없어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하신 하나님께서 드디어 나를 구속사에서 뽑아 언약성취사로 옮겨 심으셨다. 말씀은 듣는 첫날부터 참으로 꿀송이었다. 보화였다. 가슴이 확 트였다. 밥 먹는 시간도 자는 시간도 아까웠다. 마치 누군가와 연애하듯, 말씀과 사랑하는 사람처럼 함께 살았다. 밤새워 성경을 읽으며 그렇게 알기를 소원했던 문제들이, 성경이 논리적 통일성으로 해석되어졌다.
하나님의 계시적 관점으로 해석된 성경공부 속에서 왜 빛과 어두움을 창조하셨는지, 나의 삶과 저들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이 왜 일어나는지, 나는 누구인지… 해석되지 않아서 괴로웠던 그동안의 시간들은 사라지고 큰 감동과 기쁨이 내 안에 가득했다. 강론을 들을 때마다 옳습니다. 맞습니다. 아멘입니다. 창피할 정도로 고개를 끄덕였고 울고 또 울었다. 매일매일 천국 생활의 기쁨을 누렸다. 어둠에 있을 때에는 내가 구원자였고, 내가 모든 것을 옳다 혹은 그르다 정죄할 수 있는 판단자였다. 아! 매사에 내가 하나님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모든 과정에 대하여 감사, 감사, 또 감사한다. 지구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의 역사가 하나님을 드러내시어 알게 하시는 섭리 과정이며 저들과 나의 삶 속에서 풀어지지 않는 문제들도 하나님의 뜻을 알고 믿게 하려고 주신 하나님의 깊으신 사랑의 섭리요 은혜였다는 것을. 이제는 전에도 계시고 지금도 계시고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실 하나님을 확신하며, 지난날 있었고 지금 있고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에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외하며 살고 싶다. 그래서 성령께서 인도하시기를 기도한다.
성경을 통한 성취과정 중에 오늘을 살면서 언약하신대로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들을 눈으로 확인한다. 요즘 신학원에서는 기독교 교육학과목에서 통합학문이란 무엇인가를 배운다. 하늘과 땅의 통일, 빛과 어둠의 통일, 역사서와 시가서의 통합, 역사서와 선지서의 통합에 대한 말씀을 배우는데 아멘이 절로 난다. 여러 세대를 거치며 부분적으로 나타내신 하나님말씀을 구속사(어두움)가운데 던져 언약성취사(빛)을 발견케 하신 하나님의 깊으신 섭리에 놀라고 또 놀라면서, 구약에 언약백성을 인도하셨던 하나님의 방법을 기억해본다.
이제 이 복음(언약성취섭리사)을 땅 끝까지 전파시킬 것이며 절대 주권의 능력으로 하나님이 참으로 여호와이심을 확실히 드러내어 그 영광을 천지가 찬양하게 될 줄 믿는다.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을 받은 나, 아버지라 부르게 하신 아버지, 거저주신 은혜에 마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살든지 죽든지 주만 바라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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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순 집사 (장안중앙교회) |
32,욥기와 시편에 논리 있나? |
5,교회의 재산 사유화해도 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