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작성일 : 15-05-24 12:2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기독교 신앙의 원형


23. 교회는 오직 약속대로 오신 성령의 사역에 의해서 세워집니다.

The church is established by the Holy Spirit.

우리는 앞에서 교회 설립의 두 가지 기초에 대해 확인했습니다. 즉 교회란 전적으로 창세 전 하나님 아버지의 예정과 그리스도의 구속에 근거하여 세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오늘은 성령 하나님의 역할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에 대한 이해는 교회의 설립과 성장에 관련하여 매우 중요합니다. 여기에는 성령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는 중요한 신학적인 문제가 관련되어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에 대한 오해는 오늘날 한국교회, 더 나아가 세계 신학계에서 매우 심각합니다. 이른바 오순절 운동이라는 것이 20세기 초반에 태동되어 지금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중대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오순절주의 신학의 결정적인 문제는 성령 하나님을 인간의 노력과 열심 혹은 정성에 의해 조정할 수 있다고 하는 지극히 이방종교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 의하면 성령 하나님은 인간의 어떤 신비적인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데 동원되는 초월적이고 특별한 힘 정도로 이해됩니다. 즉 방언현상을 가져온다든가, 아니면 병을 낫게 한다든가 혹은 귀신을 쫓아낸다든가 하는 일입니다. 이는 성경이 증거하는 포괄적이고 근원적인 성령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깊이 이해하지 못한 부작용입니다. 성경이 증거하는 성령 하나님은 그야말로 온 우주를 주관하시며 하나님의 교회를 이 땅위에 태동시키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 하나님은 인간들의 요구에 의해 오시거나 혹은 어떤 인간들의 실수와 죄악 때문에 사라지거나 하는 세력으로 이해될 수가 결코 없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작정과 약속에 의해 이 땅에 오시고, 그의 주권에 의해 사역을 하십니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성령 하나님은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힘이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면 오순절에 오신 성령 하나님의 근본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 진리의 확증을 통해 신약의 교회를 탄생시키고 그 교회를 세워 가시기 위함입니다. 이미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을 거론하시면서 그 의미를 명백하게 밝혀 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을 “진리의 영”(요 14:17)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제자들의 어리석음과 연약하심을 잘 아시고 계셨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이 하늘의 진리를 가르쳐도 제자들은 그 신령한 의미를 올바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늘의 신령한 진리는 오직 하늘로서 내려오는 보혜사 성령의 사역에 의해서만 진리의 깨달음이 가능함을 밝혀 주신 것입니다. 이를 다음과 같이 요한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16-17, 26)

위의 인용한 성경이 명백하게 증거하는 대로 성령 하나님은 인간들의 요구와 노력에 의해 오신 분이 아닙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의 신적인 계획에 의해 준비된 분이시며 그의 사역은 진리에 집중되어 있는 진리의 영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진리의 영으로서 진리를 주관 하시는 성령 하나님만이 진리의 힘에 의해 신약의 교회를 세워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어떤 세속적인 힘에 의해서 세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사역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는 사도행전에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신 후 제자들의 전적인 변화의 근본적인 원동력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근거가 됩니다. 복음서에 나타나는 제자들의 어리석음과 비겁함, 그리고 세속주의에 찌든 모습은 어떤 것에 의해서도 근원적인 변화가 가능하질 않습니다. 그것은 오직 성령의 역사에 의한 진리의 깨달음에 있습니다. 즉 예수가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임의 확증입니다. 즉 오신 성령은 예수님이 살아생전에 가르치신 진리의 내용을 기억나고 생각나게 하시는 사역을 통해 제자들로 하여금 확신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와 확신을 통해 초대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 하나님의 오심은 인간의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임을 더욱 명백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구약의 언약에 근거하여 성령 하나님이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즉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 8)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대로 오순절에 성령이 오시고 제자들을 전격적으로 복음의 증인으로 만들어 가시고 그들을 통해 교회를 설립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전적으로 성령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의하여 세워집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도구로 사용될 뿐입니다. 그것도 성령께서 전적으로 붙들어 쓰실 때 가능합니다. 우리는 이를 신약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통해서 확인 할 수가 있습니다. 복음서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모습과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제자들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참으로 의미 있는 차원이 드러납니다. 즉 복음서에 나타나는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 다니기는 하였으나 성령이 오시기 전이므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깊이 확신하지 못하고 언제나 세속적인 생각과 어리석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순절에 오신 이후에는 제자들의 모습이 이전과는 전적으로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나며 그들을 통해 신약의 교회가 구체적으로 세워져 갑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인간의 옛 모습으로는 교회를 세워 가는데 사용될 수 없으며 성령께서 그들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하여 확신을 주심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던 겁쟁이 베드로는 오순절에 성령의 오신 이후 전격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복음의 증인으로 변화 된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스데반 집사로 하여금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장렬한 순교를 기쁨으로 맞게 하는 사역도 역시 성령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던 바울을 변화시킨 주역은 누구입니까? 이 역시 성령 하나님의 전적인 사역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바울로 하여금 예수가 구약에 약속된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그 진리를 깨달은 이후 한 평생 복음의 증인이 되어 교회를 세워가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은 에베소서는 교회 설립의 신적 기초를 설명하면서 성령 하나님을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어 인치시는 약속의 성령(엡1:13)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시기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세워진 교회를 양육시키고 무장시키면서 선한 싸움을 하게하시는 분이십니다. 말하자면 이 땅위의 교회의 모든 운명을 책임지시고 주관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약의 모든 서신서를 통해 증명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교회의 최종적인 승리를 약속하시고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도무지 성령의 사역이 아니고서는 교회의 설립을 운운 할 수가 없습니다. 신령한 교회는 거룩한 성령 하나님의 전적인 주관에 의해 설립되고 성장됩니다. 다음에 만날 때 까지 평안 하시기를 바랍니다.

The Holy Spirit does more than establish the church. He makes it grow and equips it so that it can fight effectively against “Satan and evil” and for “the kingdom of God.” In other words, he is in charge of the church and guarantees the ultimate victory of the church. This is convincingly proved throughout the New Testament Epist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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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스 칙령과 예루살렘 귀환
아이러니(Iro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