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유대주의…고대부터 십자군시대까지②
최초로 자신들의 역사를 기록한 민족이었던 그리스인들은 유대인들의 윤리적 특성 등과 관련하여 어떠한 부정적인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리스인들은 타민족의 종교 및 예배 행위에 대해 무척이나 관대한 민족이었다. 당연히 그들은 타민족 역시 자신들의 종교와 문화에 대해 같은 관대함을 가져줄 것을 요구했다. 유대인을 향한 그리스인들의 국가적인 증오는 마카비 가문(기원전2세기의 유대 독립을 이끌어냈던 일가)이 안티오쿠스 아피파네스 4세(175-164BC)의 무자비한 헬라화 정책에 대항하여 승리를 이끌어 내면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안티오쿠스는 성전에서 돼지를 제물로 바치는가 하면 유대인들을 아예 말살시키고자 하였는데, 이는 2세기경 아파메아의 스토아 철학자 호시도니오스가 기록했듯이 “모든 민족가운데 유대인만이 그들의 성전에 다른 신을 들이기를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매년 하누카(수전절)때마다 마카비 가문이 일궈낸 승리를 기념하고 있다.
세계 각지로 흩어진 유대인들은 대부분 이교도들 틈에 섞여 살면서도 그들과 융합하기를 거절하였다. 이것은 오늘날의 반유대주의와 비견될 수 있는 종교적 탄압을 촉발시켰다. 자신들이 거주하고 있는 땅의 신을 거부함으로써 유대인들은 그에 따른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있어 신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 뿐이셨다. 유대인들은 타국에서 언제나 이방인으로 살아가기를 선택하였는데, 이것은 그들이 언젠가는 조상들의 땅, 곧 고토로 돌아가게 되리라는 희망을 결코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시온을 향한 믿음이 그들을 이방인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을 제외한다면 유대인들과 타민족 이웃들 간에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 로마제국 전체인구의 8%가 유대인이었으며 그들은 땀 흘린 대가로 음식을 얻었다. 유대인들은 베짜기, 염색, 유리제조, 금세공, 주물 및 제련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수공품 생산에 관여했다.
비잔틴 신학자 코스마스 인디코플레우테스는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지혜를 주시고 신적 영감으로 채워주셨다. 그들로 모든 종류의 수세공을 습득할 수 있도록 친히 지도하셨다”고 기록했다.
유대인들은 존귀한 자들이었고, 직업군인, 기사, 황제 측근의 고위관료, 원로원 의원, 변호사와 의사와 같은 상류 계층에 속하였다. 유대인들은 결코 자신이 거하고 있는 지역의 사람들과 구별된 언어나 복장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많은 경우 헬라식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만일 여기까지가 전부였다면 유대인들이 반유대주의의 폭력에 시달릴 아무런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자신들이 조상들의 땅으로 돌아가게 되리라는 믿음을 단단히 붙잡았기에 이단자가 되었고 궁극적으로 반유대주의의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By Ludwig Sshneider, 이스라엘투데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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