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유대주의…고대부터 십자군시대까지③
반유대주의…고대부터 십자군시대까지③
교회의 교부들은 유대인들이 신약을 거부하고 오직 구약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는 것을 비난했다. 교부들은 더 나아가 기독교 신앙의 뿌리가 유대교에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고자 애썼다. 저명한 변증론자이자 철학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지는 성 저스틴은 트리폰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하례를 더이상 선민의 증표가 아닌 그리스도를 거부한 자들의 수치를 나타내는 표식으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아브라함에서 비롯된 육신의 할례가 그대들에게 징표로 주어진 것은 그대(유대인)들로 하여금 다른 민족들과 구별되고, 우리와도 구별되고, 지금 받고 있는 마땅한 고난들을 겪고, 그대들의 땅이 황폐해지고, 그대들의 도시들이 불태워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주후 180년경 로마의 주교였던 성 히폴리투스는 유대인들이 바벨론 70년 포로생활이나 이집트 430년 포로생활에서 해방되지 말았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그들에게는 어떠한 자비도 주어져서는 안되었다는 것이다.
‘성령의 도구’라고 불렸던 성 에프렘(306-373)은 “모두 영광의 교회를 찬양하라. 너희가 이제 악취가 나는 유대인에게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유대인들을 몰아내라! 그들이 하나님의 피를 쏟았으니 이제 그들의 피를 쏟자”라는 가사의 찬양을 쓰기도 했다.
이어서 니케아 종교회가 있었다. 기독교 공동체 내분이 심해지면서 콘스탄틴 대제가 서기 325년 5월 20일 천명의 주교 중 300명을 니케아로 모일 것을 명했던 것이다. 결국 그 당시 여전히 태양신을 섬기고 있던 콘스탄틴 대제가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 사이에 벌어진 신학적 논쟁의 결판을 낸 셈이다.
이 논쟁은 글자 ‘i’를 놓고 벌어졌다. 아리우스는 예수가 하나님과 비슷하다(Greek:homoiusios)고 가르친 반면, 아타나시우스는 예수와 하나님은 같은 본질(Greek:homousios)을 가졌으므로 그가 곧 하나님이라고 가르쳤다. 고린도전서 15장 28절에서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께 복종시키셨다는 점을 근거로 예수가 하나님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햇던 아리우스는 결국 파문당했다.
일부 학자들은 콘스탄틴 대제가 아타나시우스가 주장한 예수님의 신성을 받아들인 것이 단지 신학적 근거에서만은 아니었다고 믿고 있다. 그보다는 그들은 콘스탄틴 대제가 교회를 유대교의 영향에서 확실히 독립시키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첫째 계명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다’, 곡 ‘여호와는 한 분이시다’는 것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니케아 종교회의 결과로 기독교 기념일들이 생겨났는데 이는 모두 유대인 명절보다 일주일 가량을 전후로 지정됐다. 이렇게해서 유대인을 향한 교회의 적대감은 콘스탄틴 대제를 통해 정식 승인을 받게 됐던 것이다.
〈By Ludwig Sshnei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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