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유대주의…고대부터 십자군시대까지〈끝〉
주전 5세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주후 70년과 135년에 정점을 이룬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태동을 가능하게 하는 요람과 같은 역할을 했다. 사도바울이 선포했듯이 초기의 사도들은 모두 “먼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대교회에 점점 더 많은 이방인들이 흡수되면서, 유대인 신자들과 이방인 신자들 간의 갈등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두 집단 모두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믿었고 같은 책을 가지고 있었지만 해석에 있어서 차이를 보였다.
반면 로마인들은 믿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구분하지 않았다. 당시 로마 문서들을 살펴보면 그들이 종종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혼동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로마인들이 기독교인들을 ‘제3의 인종’(third race)이라 부르며 사자의 먹이로 던져주기 시작하자, 기독교인들은 이것이 다 로마인의 눈에 기독교는 유대교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라 여기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고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의 갈등을 가속화시켰고, 궁극적으로 유대인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증오로 이어지게 되었다.
유대인들의 본토가 로마인에 의해 점령당하고 성전이 파괴되자, 이방 기독교인들은 이제 하나님께서 아스라엘을 버리셨고, 열방을 통해 이스라엘을 심판하고 계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이로인해 많은 기독교인들이 스스로를, 하나님께서 유대인의 징벌을 위해 사용하시는 심판의 도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후로 기독교인들의 눈에 비친 유대인들은 타락한 민족 그 이상의 무엇도 아니었다. 초대교회들은 점점 더 이방인들을 중심으로 사역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이교도적 문화와 영향이 교회 내에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고대의 교회 문서 중 하나인 디다스칼리아(Didaskalia)에 따르면, 부활절의 기념을 통해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함과 더불어 유대인들에 대한 복수심을 다지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By Ludwig Schneider |
성경의 언어6 |
해/외/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