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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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사역은 일부 유다와 사마리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갈릴리 호수의 해변을 따라 이루어졌다. 호수에서 20㎞ 이상 떨어진 곳으로는 나사렛, 가나, 나인성만을 복음서는 언급하고 있다. 갈릴리 호수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담수호로 오늘날에도 중요한 수자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여러 가지 명칭
갈릴리 호수는 시대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구약시대에는 긴네렛(Chinnereth, 민 34:11; 신 3:17; 수 12:3, 13:27)이었으며, 동시에 호수의 북서쪽의 요새화 된 도시의 이름이기도 하였다(수 11:2, 19:35). 여호수아 19장 35절에는 “그 견고한 성읍들은 싯딤과 세르와 함맛과 락갓과 긴네렛과”라고 언급하는데 오늘날 텔 오레이메(Tell Oreimmeh)이다. ‘긴네렛’은 히브리어로 ‘하프’를 의미하는 것으로 호수가 하프 모양으로 생겼기 때문이다.
헬라-로마 시대에는 호수뿐 아니라 도시, 주변의 평야를 ‘게네사렛’(마카비상 11:67; 마 14:34; 막 6:53; 눅 5:1)으로 불렀다. 공관복음에는 ‘갈릴리 바다’(마 4:18; 막 1:16, 3:7; 요 6:1)라고 적고 있는 것은 히브리어의 ‘얌’(yam)과 헬라어의 ‘탈라싸’(thalassa) 모두 바다와 호수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에는 ‘디베랴 바다’(요 6:1, 21:1)로 적고 있으며, 로마의 저술가 플리니(Pliny)는 ‘타리케에 호수’(Lake of Taricheae)라고 호칭하였고, 또 다른 이름은 ‘막달라’(Magdala)였다.
자연적 조건
우리가 잘 아는 데로 해수면 보다 210m 낮은 갈릴리 호수는 남북으로 21㎞, 동서로 가장 넓은 곳이 13㎞로, 면적은 166㎢ 가 된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는 25.2×7.2 ㎞로 되어 있는데, 만약 그의 기록이 정확하다면 예수님 시대에 갈릴리 호수는 남북으로는 더 길고, 동서로는 좁았을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상부 요단강에서 내려오는 침전물이 지난 2000년 동안 호수의 북부 해안선을 충분히 변화시켰을 것이다. 그 증거로는 벳세다가 해안선에서 2㎞나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호수는 남, 남서, 북서쪽의 작은 평야지대를 제외하고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 상부 요단에서 유입되는 물외에 주변의 작은 시내와 샘에서도 물이 유입된다. 그 가운데는 치료에 효과가 있는 유황온천도 있다. 만약 순례를 한다면 하맛 디베랴(Hammat Tiberias)는 한번 가볼 만한 곳이다. 1세기의 회당 구경과 함께 워터 파크에서 밤 시간에 수영을 즐길 수 있다.
갈릴리 호수의 바람에 대해서는 반드시 설명해야 할 것 같다. 호수 서쪽으로는 와디 하맘(Wadi Hamam)과 벹 네토파(Beit Netopha) 계곡으로 열려져 있어서 특히 여름 오후에 강한 서풍의 영향을 받는다. 이 바람은 몇 분 내 잔잔하던 호수에 2m가 넘는 파도를 만들기 때문에 오후의 항해는 위험하다. 겨울에도 역시 동풍이 2m가 넘는 파도를 만들어 내는데, 어부들은 이 바람은 ‘샤르키예’(sharkiyeh, 동풍)이라고 부른다. 강한 동풍은 물고기를 해안으로 날려 보내기 까지 하여 줍기도 할 수가 있다.
예수님과 호수
예수님 당시에 갈릴리 호수는 팔레스타인 북동부의 중요한 경제 중심지였다. 어업과 농업이 번성하였을 뿐 아니라, 해안도로를 거쳐서 북으로 올라온 도로는 호수 북단을 거쳐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성경에는 다메섹)와 멀리 메소포타미아로 이어지는 요충지였다. 고고학 발굴을 통해서 주거지 부근에서 소, 양, 염소의 뼈들이 발견되었고, 포도주 항아리, 두로의 동전, 고기 잡는 도구, 로마의 유리 그릇, 포도주와 올리브기름 틀 등이 발견되었다. 이는 이곳이 농업, 수산업, 상업, 산업의 중심지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복음서와 고고학적 자료를 살펴보면, 예수님은 목수인 동시에 어부였을 가능성이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대부분은 어부였을 뿐 아니라,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셨다. 단순히 목수 혹은 농부였다면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 증거로는 사복음서는 76번이나 갈릴리 호수 주변에서의 고기 잡는 일, 항해 등을 언급 하고 있는데, 이는 호수와 어업이 예수님의 공생애의 중요한 부분임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목수였다는 사실을(마 13:55; 막 6:3) 부인하려는 것은 아니다. 목수라면 배도 제작할 수 있고, 수리할 수도 있다. 예수님은 공생애 이전에 고기를 잡으려 가셨을 것이다. 이 기간에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과도 친분이 있었을 것이다. 어느 날 아무런 친분도 없는 사람이 “모든 것을 버려두고 나를 따르라”는 주문은 무리가 있음 직도 하다. 더욱이 풍랑을 잔잔케 하신 일이나, 고기가 예상 밖에 많이 잡힌 사건들은 예수님이 갈릴리 호수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셨음을 입증해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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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벨 절벽에서 바라 본 갈릴리 호수의 서북단 “게네사렛 평야”이다. (그림 출처 flickr.com)
1999년 필자를 포함해서 8명이 이스라엘을 배낭여행을 한 적이 있다. 시내산은 순례반 등산 반을 목적으로 다녀왔다. 타바의 국경에서 이스라엘 보안 요원이 “목적지가 어디입니까?” 묻기에 “갈릴리”라고 대답했더니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때 생각난 것이 타이베리아스(디베랴)였다. 현대 이스라엘 도시인 타이베리아스는 우리가 아는 갈릴리 호수서안에 위차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갈릴리 호수은 그 명칭이 여러번 바뀐 것을 성경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
準
대부분의 성지 순례의 일정은 이집트를 거쳐서 이스라엘로 들어오는 출애굽 여정을 따른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는 요르단을 거쳐야 하며, 비스가 산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요단강을 건너 이스라엘로 들어와야 그것이 정통 출애굽 여정이다. 여러 차례 성지를 여행해 본 결과 요르단이 없는 순례는 상상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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