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작성일 : 09-07-05 00:4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구약성경 최후의 개혁론


1. 시작하는 말

 모든 책 중에서 성경책만큼이나 처음부터 끝까지 강하게 묶어주고 엮어주는 것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작품이며 하나님의 계시이기 때문이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에서 증거되는 의미적 핵심어는 하나님이다. 창세기의 시작 말씀인 “태초에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부터 요한계시록의 끝 말씀인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 지어다”까지는 하나님 계시의 목적으로 기록되어 책으로 엮어졌다. 창세기 1장 1절의 “하나님”과 요한계시록 22장 21절의 “주 예수”는 의미적으로 동의어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영원하신 “하나님”과 영원한 은혜가 예정된 모든 자에게 있게 하시는 “주 예수”는 신구약성경 전체의 연결을 통하여 성경자체가 동의어임을 입증해 주고 있다. 창세기 1장 1절의 “하나님이”와 구약성경 마지막 절의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하시니라”(말4:6)에서 “내가”는 완전한 동의어이다. 여기서 “내가”는 말라기 4장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키고 있다.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가 저주와 복의 심판주로 온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이렇게 구약성경 마지막장 마지막 절(말4:6)에서 온다고 하신 그 만군의 여호와는 마태복음 1장 1절에서의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동의어이다. 구약성경의 내용 연결에 있어서 중요한 1000년 간격의 두 인물을 통하여 증거된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언약대로 오신다는 여호와(말4:6)는 성경적으로 완전한 동의어이다. 이처럼 구약성경의 마지막부분과 신약성경의 시작부분은 너무도 강하게 연결되고 있다. 때로 언약의 주체와 대상이 그 표현상 주어와 목적어로 다르게 나타나지만 그 의미가 동일하다는 것은 성경이 증명해 주고 있다. 마태복음 1장 1절의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 보다 1000여 년 전의 다윗의 혈통을 따라 언약대로 이 땅에(말4:6,롬1:3) 오셨다. 구약성경 전체의 언약대로 이 땅에 오신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신약성경 마지막부분(계22:21)에 증거된 “주 예수”와 동일하신 분이다. 이렇게 성경의 모든 문장은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 주부(主部)와 술부(述部)로 되어 있다. 마치 인간의 머리부터 발까지의 전체를 통해 한 몸임을 나타내는 것과 흡사하다.
 이러한 맥락을 따라 구약성경의 마지막 부분인 말라기 4장을 통하여 하나님의 개혁을 확인하고자 한다. 근본적으로 성경은 여호와의 손으로 개혁한다고 증거한다. 겉으로 보면 사람이 제도를 개혁하고 사람의 마음을 바꾸어 놓는 것처럼 보이고 그렇게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개혁을 하신다고 증거한다. 이런 의미와 의도에서 이 글의 시작부분에서 성경전체에 대한 핵심어를 언급하게 되었다. 개혁을 여호와의 손으로 한다고 비유적으로 표현될 때에 말라기는 마지막 새끼손가락에 해당될 수 있다. 그 중에서 말라기 4장은 새끼손가락 중에서도 마지막 끝 한 마디에 해당된다고 이해상 그렇게 비유하면 쉬울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마지막에 붙어 있는 한 마디라도 여호와의 손에 붙어 있는 것이고 그 손은 목을 통하여 뻗어 나온 여호와의 팔에 달려 있음이 분명하다. 구약성경의 마지막인 말라기서는 여호와의 제사 회복 내용을 통하여 결국 메시야 보낼 것(여호와의 오심)을 언약한 것이다. 여호와(메시야)가 오신다는 내용이 말라기 4장에는 너무도 강렬하게도 또한 직접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보통 종교개혁이라는 말을 잘 사용한다. 그 종교개혁은 아마 성경이 말하는 종교대로 회복된다는 의미를 지닐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개혁론을 논하기 위해 말라기 4장을 택한 것은 여호와(메시야)의 오심이 성경이 말하는 개혁의 본질과 완성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구약성경 최후에 나타난 개혁론을 논하기 위해 말라기 4장 전체의 내용을 아래에 인용한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2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3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4◦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5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2. 개혁의 주관: 만군의 여호와

 개혁의 주관은 개혁을 근본적으로 계획하고 수립하여 그 계획대로 주관하고 주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개혁은 누가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 하나님 외에 감히 어느 인간이 했고 한다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성경적 개혁은 회복이나 심판과 그 의미가 상통하고 있다. 말라기 4장 1-3절의 요지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악인을 심판하고 여호와 경외하는 자를 승리하게 해 주신다는 뜻이다. 1절을 시작하면서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고 하시고 3절을 마무리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재삼 확증하였다. 개혁의 주관자나 심판의 주관자는 오직 만군의 여호와이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천지를 창조 하시고 천지를 다스리시고 개혁하시며 심판하신다. 이러한 내용이 창세기 1장 1절부터 말라기 마지막장 마지막절까지에서 잘 나타나 있다. 만군이라는 용어는 군사적인 성질을 지니는 것으로 아군과 적군 모두를 지칭한다. 그래서 천지의 모든 인간은 여호와께서 개혁하시는 대상이다. 만세전에 작정되고 예정된대로 여호와께서 반드시 택한 자를 구하시고 버린 자를 멸하시는 것이다.     

3. 개혁의 시기: 여호와의 정한 날

 개혁의 시기는 큰 변화와 심판과 같은 큰 사건이 일어나는 때이다. 이 인류 역사의 기준이 B.C(before Christ; 주님 오시기 전부터)와 A.D(anno Domini; 주님 오심의 후부터)로 되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말라기 4장 1절에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라고 했고 다시 3절에서 “나(만군의 여호와)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고 했다. 이 인류 역사상 B.C와 A.D의 기준이 정해진 것보다 더 큰 일은 없을 것이다. 어떻게 ABCD라는 4개의 문자로 역사의 기준이 정해졌다라고 단순하게 보고 지나갈 수 있는가?  이것은 여호와의 정한 날 곧 작정한 날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성경에는 “때”와 “날”이라는 말이 수많이 나온다. 그러한 때와 날의 의미는 여호와께서 정하셨다는데 있다. 전도서 3장에는 “천하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라고 하였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께서 주야를 나누시고 사시(四時)와 일자와 연한을 나누라고 하신 내용이 있다. 일반적으로 사주팔자라는 사상과 말이 만연되어 있다. 그 사주팔자는 시간성을 핵심으로 한 사상이다. 이러한 시간문제는 근본적인 시작과 결말이 없으면 그 과정의 부분으로는 도무지 풀릴 수 없는 것이다. 구약성경의 모든 때와 날은 하나님이 정한 날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구약성경은 “태초에”라는 말로 시작하여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그 구약성경 마지막 문장에서의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은 여호와의 정한 날이며 인류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 일어난 날이다. 그래서 여호와의 정한 날에 모든 일은 개혁되며 회복되는 것이다.         

4. 개혁의 도구: 모세에게 명한 법

 개혁의 도구는 여호와께서 개혁을 하실 때 무엇을 가지고 하시는가의 의미이다. 성경은 회복과 성취의 의미를 지니는 개혁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고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이루어짐을 말한다. 그 말씀이 언약이 되고 그 언약은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로 구체화 되었다. 이러한 말씀의 본질은 결국 여호와 하나님이다. 이런 논리에 의하여 개혁의 주관이 근본이라면 개혁의 도구는 그 근본의 지엽이다. 여호와의 작정이 근본이라면 모세에게 명한 법은 그 근본의 지엽이다. 근본은 하나이고 그 지엽은 근본에 붙은 것으로 아주 다양하고 자세하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 국가와 그들의 제사 등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작정(뜻)에 근거하여 개혁하고 회복하며 이루셨다. 지엽적(직접적)으로는 모세에게 명한 법 곧 계명과 규례와 율례에 의해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개혁하며 심판하신다. 모세에게 명한 모든 율법은 여호와의 언약을 이루는 부분과 도구이며 과정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영혼이 돌아가시기 전에 다 이루었다(요19:30)고 하신 말씀의 의미는 모세에게 명한 그 모든 율법을 다 완성하고 성취하셨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선지자와 왕과 제사장들은 이 모세에게 명한 법을 가지고 가르치고 다스리며 제사를 지냈다. 이러한 율법에 근거한 3가지 일 곧 교훈과 통치와 제사는 참 메시야가 오심으로 완전히 회복되고 완성된 것이다. 모세에게 율법을 명한 것은 여호와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한 한 도구이며 회복하고 개혁하기 위한 과정이다.

5. 개혁의 방법: 마음을 돌이키게 함
 
 개혁의 방법은 여호와께서 어떻게 인간을 지배하여 움직이시며 고치는가의 문제이다. 모든 일의 표면적인 수단과 방법은 아주 다양하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마음을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해 살아왔고 또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간다. 이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어쩌면 그래서 “생각한다”와 “생각난다”는 말이 생겨났을 것이다. 인간 스스로 생각을 하는 것인지 누군가가 생각나게 하니까 생각이 나는 것인지의 문제이다. 성경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인간 모두의 마음을 돌리시며 주관한다고 선포하고 있다. 마음을 돌이키게 한다는 의미는 기억나고 생각나게 한다는 것과 상통한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제도를 개혁하고 법을 만들어 시행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여 수많은 방법론을 제시한다. 인류역사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마음을 먹고 살았고 살며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표면적으로 단순하게 결론 내려 버리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성경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관하시며 돌이키게 한다고 증거 한다. 이러한 논리는 구약성경 전체의 역사가 하나님의 섭리라는 증명으로부터 큰 설득력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앞에 사건을 두시고 자기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2번(마태복음26장39절과42절)이나 기도하셨다. 이것은 예수님을 비롯하여 모든 인간의 마음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되어짐을 확증한 것이다.

6. 개혁의 완성: 여호와의 오심

 개혁의 완성은 작정한 계획을 완전히 성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의 의미가 여호와의 언약인데 말라기 마지막 문장에서 “내가 와서”로 되어 있으니 이 의미는 실로 신비롭다. 그것은 구약성경 전체의 제목과 논지가 여호와의 언약인데 구약성경의 마지막 문장이 완성되면서 “내가 와서”라는 말이 누락되지 않고 들어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의미가 신비롭다는 것은 성경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작품이 아니라면 이렇게 완성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와서”의 의미는 메시야를 보낸다고 언약하신 그 여호와께서 근본적으로 오신다는 것이다. 그 언약이 진리이기에 구약성경이 최종적으로 마무리되면서 여호와가 오신다는 말씀으로 못 박혀 있다. 여호와의 언약이 작정된 일이 아니면 도저히 여기에 기록될 수 없는 절묘한 말씀이다. 하나님이 여호와로 증거 되고 증명되지 않으면 개혁은 이루질 수 없다. 개혁의 완성은 작정대로 여호와의 오심이며 하나님이 여호와로 드러나고 입증되는 것이다.

7.마무리하는 말
 
 이상에서 구약성경 마지막부분인 말라기 4장을 기초로 하여 성경적인 개혁논리를 개괄적으로 구성해 보았다. 종교개혁은 성경에 기초한 기독교로의 회복됨이다.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에서 섭리와 찬양과 예언을 통하여 어김없이 하나님을 여호와로 증명해 놓았다.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시고 초대교회는 오로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였다. 오늘의 교회가 추구하는 목적과 방법이 다양하게 나타나 있다. 이러한 실정에서 성경이 말하는 진리가 증거 되고 진리가 지켜지고 전승됨이 건전한 개혁일 것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개혁파 신학의 문제점과 그 대안
찬송의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