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학적 종말론
성경신학적 종말론
시작하는 말
임박한 종말 사상은 세기말에서 발생한 사건만이 아니다. 주후 40년 초대교회시대 데살로니가 교회를 시발점으로 대두되었고, 150년 몬타너스의 종말론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으며, 999년 12월31일의 종말설은 구라파 전 지역을 강타했다. 그리고 특히 19세기 이후에는 여호와의 증인들에 의해서 1844년․1914년․1988년 설의 허구적인 종말론이 유포되었으며, 영국의 저명한 신학자 벵겔 역시 1917년 9월17일의 재림을 주장하다가 망신을 당한 적이 있었다. 이러한 종말 사상이 한국에 상륙한 것은 1960년 3월28일의 재림을 주장하는 에덴 수도원의 박인선으로 시작하여 1980년대의 용문산 나운몽과 1992년 10월 24일을 주장하는 다미선교회의 이장림에 이르기까지 다수가 출현하게 되었다. 1999년 현재의 심각성은 한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극도에 도달하고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이상과 같은 시한부 종말사상의 발생 원인을 살펴보면 첫째, 개인적인 관점에서 볼 때 현실적으로 처해진 극도의 고난을 도피하기 위한 현실 도피적 수단으로서 예수의 재림만을 지나치게 고대하는 현상이다. 둘째, 사회적인 관점에서 볼 때 사회의 총체적인 위기 상황이나 경제적 파탄에 처할 때 교회가 자기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결과로서 현실을 무시하는 경향이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세기말의 종말론적인 현상은 전적으로 교회에 책임이 있다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그동안 한국 교회는 성경을 가르치고 이해하는 일 보다는 교회의 양적 성장과 팽창에 초점을 맞추어 교인들을 기복적․요행적․신비적․한탕주의적 황금만능주의에 함몰되게 인도하였으며 이미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 중심의 올바른 신학 사상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실정에 놓여 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교회는 이러한 문제를 계기로 하여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면서 양적 성장보다는 질적인 면에 치중하여 교회의 본래 사명에 충실하는 각성 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1. 종말의 개념
종말의 개념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종말에 대한 구분을 정리해 본다. 종말은 개인적 종말과 우주적 종말로 구분되는데, 먼저 개인적 종말은 보편적인 육체적 죽음과 죽음 이후의 영원한 삶에 대한 성질로서 영생(永生)과 영사(永死)를 의미하는 것이고, 우주적인 종말은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로 전개되는 재림시의 심판․천년왕국․백보좌 심판․새 하늘과 새 땅으로 연관 지어 이해할 수 있는 것인데 여기서는 우주적 종말을 중심으로 언급하는 것이다.
종말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사46:10)라는 이사야의 말처럼 창조로부터 시작해야 될 것이다. 즉 이 말은 창조의 사역이 종말을 함의하고 있다는 뜻이며 창조와 종말이 하나의 범주에서 취급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창조와 종말의 개념을 정리해 보면, 창조란 영원한 것을 시․공․형의 세계로 계시한 것이고, 종말은 시․공․형으로 계시된 세계가 본래의 영원한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말을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하여 시간의 끝으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하는 본질적인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종말이란 시간․공간․형상으로 창조된 피조 세계가 끝이 나고 시간․공간․형상을 초월한 본질의 세계가 시작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종말이란 계시적 관점에서는 새로운 세계의 시작으로 보여 지지만 본질적인 관점에선 원래의 상태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2. 종말의 성격
종말의 성격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심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고 그에 따른 잘못된 낭설에 얽매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심판이라고 해서 무조건 두려워 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심판은 저주와 축복의 이중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한 종말 사건에 대해서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기대하며 소망해야 할 것이다.
심판의 성격을 살펴보면, 먼저 불택자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저주와 멸망의 심판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무서운 심판이며 형벌로서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모든 자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사망을 뜻하는 것이다. 영원한 사망이란 영혼이 죽은 상태에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한 심리 상태와도 유사한 것이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고통, 생각하기 싫어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죄책감과 두려움을 말한다. 피조세계에서 가장 괴로운 것은 마음의 고통과 두려움과 불안과 초조함이다. 이것들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인데 이러한 불행의 상태가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보다 더 큰 저주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간에게 종말 즉 끝이라는 것은 단순히 끝난다는 것 때문에 두려운 것이 아니라 저주가 영원히 지속되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이러한 성격으로 심판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의 행복으로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택자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축복과 구원의 심판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심판은 가장 행복한 것을 뜻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보좌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영광을 누린다는 것인데 이것을 영생이라 정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서 종말이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축복․영광․행복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도의 종말(육체적인 죽음)은 불택자들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사망과 성질을 달리하는 것으로서 바울의 말대로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강한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는 것이며(고전15:42-44), 계시록의 말씀처럼(21:1-4)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께서 친히 눈물을 씻어 위로해 주시고 사망․애통․곡․아픈 것이 다시없는 진정한 행복을 규정하는 것이다.
3. 종말의 성질
종말의 성질은 첫째, 사역의 주체적 관점에 볼 때 하나님에 의해서 주도되어 지는 것으로서 절대성을 갖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독자적인 계획에 의한 독단적인 사역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창조에 의해 예고되고(사46:10 :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는 피조세계의 법칙), 그리스도를 통해서 예언된 것이며(마24:29-31․눅21:25-28), 제자들과(행1:11) 바울서신(데살로니가) 및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예언된 것이다. 그리고 “이미 작정되었은즉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사10:23)는 이사야의 말씀대로 예고된 종말의 작정은 절대자 하나님의 섭리이기에 반드시 이루어지는 특성을 갖고 있다. 둘째, 사역의 형태적 관점에서 볼 때 단일성을 갖고 가시적으로 임한다는 것인데, 단일성이라 함은 세대주의자들처럼 공중에서 7년 동안 혼인잔치로 인해 머물다가 지상으로 다시 재림하는 이중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강림하여 심판하시는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특수층에게만 알 수 있도록 임하시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가 다 볼 수 있는 상태에서 가시적이며 우주적으로 강림하시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사역의 본질적 관점에서 볼 때 모든 것이 끝나는 종결의 의미뿐만 아니라 새로운 상태로서 영원한 것을 말한다. 이것은 ‘태초’가 영원과 시간의 분기점인 것처럼 ‘종말’ 역시 시간과 영원의 분기점으로서 영원한 세계로의 시작이며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실존을 뜻하는 것이다.
4. 종말의 목적
다수의 학자들은 종말을 인류의 심판과 구원이나 하나님의 나라 관점에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사역 자체를 논하는 것이지 근본적인 목적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종말의 목적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종말 사건의 근거와 이유를 먼저 알아야 한다. 종말의 근거는 하나님의 작정 계획에 기초하는 것이다. 이것은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모형적으로 제시된 것인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열조 아브라함과 민족의 출애굽을 언약하시고 약속대로 사 백년 만에 애굽에서 해방시킨 것이다. 뿐만 아니라 창세 전 그리스도안에서 택하신 자기 백성들을 약속대로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출하신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남겨진 종말 사건은 구약과 그리스도의 예언에 기초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예언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주도된 것이기에 종말은 하나님의 작정에 기초한 것임에 틀림없다. 종말의 이유 또한 동일한 의미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작정 계획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종말 사건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을 이루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하려 하심에 있음을 규명할 수 있다.
5. 종말의 유형
종말의 사건들에 관해 성경이 말하는 의미를 분별하기 위해서 다양한 해석들이 제시되었다.
첫째, 다수의 학자들이 수용하며 건전한 관점의 「시작된 종말론」이 있다. 이것은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 속에서 시작되어 현재로 다가와 구원의 역사로 실현되었고 최후의 재림이 그리스도인의 소망으로 남아 있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인간의 구원은 실현되었으나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건설 중에 있다는 것(너희의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완전성에 대해 의혹을 갖게 한다.
둘째, 예수의 사역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었다는 관점의 「실현된 종말론」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예수의 사역으로 단번에 성취되었다고 간주하는 것으로서 미래의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승리가 이루어졌고 그리스도가 이를 쟁취했으며 우리가 함께 이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측면은 강조하지만 미래의 사실적 재림을 부정하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으로 재림이 이미 성취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과, 예수의 영적 재림으로 이해하는 것이며, 종말을 허구적인 것으로 정의하여 상징적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신화 또는 당시 초대교회의 신앙으로 규정하는 다양한 성향으로 나타난다.
셋째, 문자적 해석 원리를 실행하는 「세대주의적 종말론」이다. 이들은 칠일 창조의 하루를 천년으로 환산하여 그리스도 출현 이전을 4,000년 이후를 2000년으로 하여 1999년을 재림의 해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구원의 방법에 있어서 시대별로 구분하여 일반통치 세대에는 양심구원, 모세율법의 세대에는 율법구원, 그리스도의 세대에는 믿음 구원으로 분리해서 가르치는 형태에 이르게 된다. 또한 환란전 휴거설을 언급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이러한 종말론은 종말의 시기를 설정하게되는 실수를 범하게 되며 성도에게 주어지는 재림 전 환란의 의미를 왜곡하게 하여 마치 환란 시에 특수층이 공중에서 잔치를 배설하는 이기적 성향도 갖게된다. 이와 같은 「세대주의적 종말론」은 세기말적 「시한부종말론」 자들에게 왜곡된 신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역할도 하게된다.
6. 종말의 시기
성경적 순서에 의해서 검토된 종말의 시기는 먼저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어 이방인 구원의 때가 차야 한다.(마24:14) 그리고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받는 때가 차야 한다.(롬11:25) 유대인 시대에 정치권세의 통합과 종교권세의 통합이 이루어지고 정권과 교권의 야합이 있으며 최후 바벨론 정권의 등장으로 온 세계가 굴복하게 된다.(계17:) 그리고 자연의 파괴현상과 대환란이 전개된 뒤(마24:29-31) 온 세계가 볼 수 있게 그리스도께서 영광중에 강림하여 세상권세를 심판하고(계18:) 사단을 무저갱에 투옥하며 저주가 덮히기 이전 에덴동산과 유사한 상태의 지상(地上) 천년왕국이 실현된다.(계20:) 그리고 천년의 기간이 되어 잠깐 사단을 풀어서 천년동안에 출생한 자들을 시험한 후에 사망부활과 생명부활로 양분되는 영원한 백보좌의 심판과 함께 영생(永生)과 영사(永死)하는 영원한 세계가 실현된다.(계21:-22:)
예수께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로(마24:32-33) 재림의 시기에 따른 징조를 말씀하셨다. 이 말은 재림의 정확한 시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 수 없으나 그 징조를 통해서 재림의 시기를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은 예수 재림 전에 나타나야 할 징조들이 전개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는 이방인 구원의 시기로서 유대인 구원의 문이 열리지도 않은 상황이다. 이런 시점에서 예수의 재림을 운운하는 「시한부종말론」 자들의 주장은 너무나 허구적인 것이다.
끝맺는 말
첫째, 성경신학적 종말론은 하나님을 계시한다.
일련의 종말적인 모든 사건들은 구약과 그리스도와 사도들을 통해서 약속하신 것으로서 이것들을 그리스도에 의해서 성취 실현시킨다. 그 결과 약속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속성이 명백하게 드러나게 된다. 다시 말해 재림․심판․천년왕국․부활․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종말 사건의 실현은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하여 그리스도를 통해서 실현하심으로 언약대로 이루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영광을 보여주어 알게 하는 것이다.
둘째, 성경신학적 종말론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종말사상은 당시의 극심한 환란을 극복하기 위한 초대교회의 신앙도 아니며, 상징적이거나 신화로 간주되어지는 것은 아니고 더더욱 그리스도와 바울의 실언(失言)도 아닌 것이다. 이것은 피조세계의 역사 선상에서 반드시 실현되어지는 역사적 사건이며 아울러 교회와 성도의 궁극적 관심이고 소망의 대상이다.
셋째, 성경신학적 종말론은 영원적인 사건이다.
종말 사건은 피조세계의 역사 선상에서 시작되는 사건이면서 영원세계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피조세계과 영원세계의 분기점으로서 역사의 종결과 함께 영원의 시작을 뜻하는 것이며 계시의 종결과 함께 영원한 본질의 실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전에 없던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계시된 피조세계의 역할이 끝나고 영원히 존재하던 본질적인 본래의 세계가 도래함을 가리키는 것이다. 영원의 범주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고찰하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초월하는 것으로서 이미 이루어진 과거사도 아니며, 현재에 건설되고 있는 진행형도 아니고, 장차 완성될 미래형도 아닌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시작과 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존재하는 것으로서 다만 영원한 나라를 시대적으로 계시하시는 방법상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적 차순에 따라 이해되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계시된 피조세계가 종결을 고할 때 영원의 본체로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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