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26-03-10 09:58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역전, 믿음 후 순종에서 순종 후 믿음으로


우리는 『교회교의학 I/1』 §1.3을 “믿음의 행위로서의 교의학(Dogmatik als Glaubensakt)”에서, Glaubensakt을 두 어휘(act of faith, 믿음의 행동)로 번역한 것을 바르트와 동일하게 한 어휘인 ‘믿음행동’을 제언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일단 모양을 같게 한 문자번역을 시도했다.

우리는 『교회교의학 I/1』 §1.3의 첫 문단에 있다(GG., 44). 중요한 어휘는 교의학(Dogmatik), 믿음(신앙, Glauben), 믿음행동(Glaubensakt), 순종(Gehorsam), 들음(Horen), 지적능력(Erkenntnisarbeit), 교회(der Kirche),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us), 소명(Vokation, den Aufruf Christi), 무익한 사색(eine mubige Spekulation) 등의 어휘가 있다. 우리는 앞에서 행동(Akt)에 대해서 집중해서 제시했다. 행동의 강조는 유대교를 정통실천(Orthopraxy)으로 규정한 것과 연계된 것으로 제시했다.

조금 더 오버하면 유대교를 ‘율법종교’에서 ‘정통실천’으로 전향한 것은 E.P. 샌더스(E.P. Sanders)가 ‘율법주의’에서 ‘언약적 신율주의’로 패턴을 전환시킨 것과 유사한 맥락으로 보인다. 모두 믿음에 어떤 행동을 부차하여 완성하는 구도이다. 그런데 바르트는 “믿음과 순종”에서 “순종과 믿음”의 구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명(Vokation)을 듣는(Horen) 행위 자체가 이미 순종(Gehorsam)이며, 이 순종의 사건이 믿음의 결단을 통해 믿음행동(Glaubensakt)이 된다. “그리스도의 소명에 대한 이 복종이 바로 순종이다”(GG., 44). 바르트는 기존의 모든 신학 체계를 리버스(reverse, 역전)시킨다. 존재에서 계시에서 계시에서 현실성(Wirklichkeit)으로, 율법과 복음에서 복음과 율법으로, 칭의와 성화에서 성화와 칭의로 거의 모든 개념을 역전시켰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의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원리는 바르트(1886-1968)에게도 있다. 중세에는 본질과 형식에서 현대에는 형식에서 본질로 역전된 것이다. 참고로 하이데거의 천재성은 30대에 쓴 『존재와 시간』(1927년), 어린 철학자의 사상을 나이 든 신학자들이 기초로 삼은 것이고, 그의 나치 행적도 감춰질 만큼 탁월하다. 당시 독일 사유가들 불트만(1884–1976), 본훼퍼(1906–1945), 폴 틸리히(1886–1965) 등 하이데거의 영향이 없는 사유가는 없었다. 당시 프랑크푸르트 학파(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마르쿠제 등)는 나치즘에 참여한 하이데거를 극도로 싫어했다.

바르트는 §1.3에서 “믿음 후 순종” 구도에서 “순종 후 믿음” 구도로 전환했다고 제시했다. 우리는 앞에서 바르트가 행동(Akt)을 강조한다고 제시했다. 그리고 “교의학을 인간의 인식작업의 한 부분(Stuck)”(GG., 44)으로 규정하고, 교의학이 어떤 절대지식이 아닌 부분지식임을 제시한다. 그래서 매우 정확한 것처럼 보이지만 바르트의 문장은 교리의 확정적 가치(삼위일체 믿음)를 의심하고 재해석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가치를 진행하겠다는 명제이다.

바르트는 §1.3 첫 문단에서 ‘믿음’에 대한 몇 가지 명제 문자를 제시했다. Dieser Gehorsam gegen den Aufruf Christi ist der Glaube(그리스도의 부름에 대한 순종이 믿음이다). Im Glauben wird das Gericht Gottes anerkannt und seine Gnade gepriesen(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심판은 인정되고 그의 은혜는 찬양된다). Der Glaube ist die Bestimmtheit menschlichen Handelns durch das Sein der Kirche, also durch Jesus Christus(믿음은 교회의 존재, 곧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인간의 행위가 결정되는 것이다). Dogmatik ist nur moglich als Glaubensakt(교의학은 믿음행위로서만 가능하다). Schon mit diesem dritten ist gesagt, daß es in der Dogmatik außerhalb des realen Gegenuber Gott und Mensch und das von ist eben der Glaube(즉, 교의학 안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실재적인 마주 섬(Gegenuber)’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바로 이 ‘마주 섬의 사건’이 곧 믿음이다: GG., 45).

먼저 독자는 바르트가 정의한 ‘믿음’에 대한 개념을 인정할 것인가를 결정하면 된다. (1) 부름에 대한 순종이 믿음이다. (2) 믿음 안에서 신의 심판이 인정된다. (3) 믿음은 교회의 존재, 인간의 행위가 결정되는 것. (4) 믿음은 신과 인간의 마주 섬의 사건이다. 시간과 공간에서는 언제든지 원인자(인과관계)가 있다. 전통적으로는 객체에서 주체가 나왔는데, 바르트는 주체에서 객체로의 역전을 구도화시켰다. 우리는 이 구도가 바르트의 발상이 아니라 하이데거의 발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1.1.1에서 지식의 시작을 ‘하나님’으로 주장하고, 그 지식은 인간을 아는 지식으로 순환하는 구도로 제시한다. 바르트의 지식 구도는 순환이 아닌 예측 불가능한 구도로 왕복한다.

혹자들은 바르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신앙은 교회의 존재에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간에로의 하나님의 은혜로운 향해 오심을 통한 인간적 행위의 특정성이다”(GG., 44)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 행위의 결단(in der Bestimmtheit menschlichen Handelns)”으로 규정했다. * Bestimmtheit을 ‘특정성’이란 추상명사로 번역했는데, 영어 번역처럼 determination, ‘결단’, ‘단호한 응답’으로 번역하면 좀 더 이해가 용이하다. 실존주의에서는 ‘결단’을 강조한다.

바르트를 읽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은 같은 용어에 다른 개념이 있는 것이다. §1.3에 eine mubige Spekulation(무익한 사변), idle speculation이 있다. 칼빈은 empty speculations(Beverage, 헛된 사색, inanes speculationes)으로 제시하며, 성령의 조명이 없는 성경 해석을 헛된 사색으로 규정했다, 바르트는 믿음행동이 없는 믿음을 헛된 사색으로 규정했다. 사색은 표현이 아닌 정신세계인데 바르트는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다. idle speculation은 영역자(Battles)가 칼빈의 『기독교강요』 번역 용어와 일치시켜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칼빈은 성령을 통해 인간의 ‘영혼’을 정화하고 새롭게 하는 구원에 관심을 두었는데, 바르트는 계시와 만남의 사건으로 현재에 구체화되는 어떤 Glaubensakt(믿음행동)으로 세웠다. 칼빈의 신학 구도에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죄 사함의 구주와 만유의 주)과 인간의 전적인 부패의 고백적 지식(Identity)이고, 바르트의 신학 구도는 죄인인 인간에게 무한하게 주는 신의 자유와 사랑에 반응(Responsibility)해야 할 인간의 무한한 자유와 선택이다. 칼빈은 믿음에서 시작해서 믿음으로 진행되는데(믿음(칭의, 죄 사함의 은혜), 믿음(성화, 거룩의 은혜), 완성(영화의 은혜)), 바르트는 믿음, 하나님의 부르심에 ‘예(Ja)’라고 응답하는 결단(Entscheidung), 믿음행동(Glaubensakt)으로 전개된다.

바르트는 이 본문에서 ‘믿음’을 반복해서 제시하지만, 그는 ‘믿음행동’을 말한다. 바르트에게 믿음은 믿음행동(Glaubensakt)이라는 형식을 통해서만 현실성이 된다. 바르트는 기독교의 현실화된 상(Bild)을 그리스 철학과 더불어 형성된 것으로 제시했다(GG., 44-45). 그래서 그는 기독교가 아니라 신화를 벗어버린 믿음, 신과 인간이 마주 선(des realen Gegenuber Gott und Mensch) 신인간적 현실성(gottmenschliche Wirklichkeit)이다. 바르트는 칼빈의 문장, “모든 올바른 하나님 인식은 복종에서부터 탄생된다(Omnis recta cognitio Dei ab obedientia nascitur), 『기독교강요』 I. 6. 2”에서 바르트는 칼빈의 이 문장을 가져와 자신의 ‘Glaube auf Gedeih und Verderb(흥하든 망하든/사느냐 죽느냐의 믿음)’ 논리에 끼워 맞췄다. 바르트는 그리스 철학적 세계관을 탈피한 “하늘의 음성(himmlischen Stimme)”을 주장했다. 칼빈은 “하늘의 교리(doctrina coelestis, heavenly doctrine)”를 제언했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고경태 목사 (주님의교회 / 형람서원)
이메일 : ktyhbg@hanmail.net

믿음의 행위로서 교의학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