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김진아 ponypony1234@gmail.com
혼자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책을 읽는 것도 엄밀히는 작가와의 소통이며 여행을 떠나서도 사람을 만나게 되고 온라인 게임 역시 가상의 동지와 적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관계의 동물이고 관계의 망은 우리가 사는 세계 어디에나 촘촘하게 그물을 드리우고 있다. 히키코모리가 아닌 이상 우리는 언제나 타인의 공기를 들이마시기 마련이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는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만화다. ‘바람이 강하게 부는’ 까닭은 달리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시종 일관 달린다. 하코네 지역의 대학 역전 마라톤에 참가 신청을 내면서 본격적인 스토리가 시작된다.
역전 마라톤이란 10명의 선수가 어깨띠를 건네며 이어 달리는 릴레이 경주다. 주인공 기요세는 팀의 장 역할을 하며 팀원들을 준비시킨다. 이 팀의 팀원들은 오합지졸이다. 한 때 육상 선수였지만 능력 부족으로 그만둔 사람, 뛰어나지만 폭력 사건으로 퇴출당한 사람 정도를 빼곤 나머지는 특별히 육상과 관련한 삶을 살지 않은 인물들이다. 그러니까 마라톤에 관심이 없거나 의지가 없거나 재능이 없다는 얘기다. 기요세는 이들을 데리고 합숙 훈련을 한다. 사비를 들여 봉사하다시피 하면서 팀원들을 거두었던 이유는 하코네 역전 마라톤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기요세는 왜 기를 쓰고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려고 했을까. 바로, 자신의 꿈 때문이다. 오래 전 무릎 부상을 당한 기요세는 육상 선수에겐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개인의 꿈을 공공의 목표로 전환시킨 것이다.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함께 하기 위해서. 여기서의 ‘함께’는 ‘같이’ 혹은 분담의 의미는 아니다. 릴레이라고 할지언정 달리는 시간만큼은 개인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앞과 내 뒤에는 고된 훈련을 함께 했던 동지들이 있고, 바라보고 나아가는 방향 역시 동지들과 동일하다.
혼자라면 막막했을 노력에 대한 부담을 10등분으로 나누어 가진 셈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결코 포기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는 점이다. 혼자였다면 일찌감치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힘드니까, 아프니까, 재능이 없는 것 같으니까, 끝이 안 보이니까, 지겨우니까. 그런데 여럿의 목표라면 다르다. 개인적인 이유로 물러설 수가 없다. 싫든 좋든 아프든 지겹든 ‘해야 한다’. 그 당위를 위해 기요세는 영리하게 지독하게 팀을 꾸린 것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번거로운 절차와 수고를 스스로 감내할 깜냥이 없는 나는, 굳이 내가 나서 리드하지 않아도 리더가 있는 교회를 바라본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라는 곳은 결코 한 개인에 의해, 파편에 의해 존립하기 힘든 곳이다.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하며 분명한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에서 모였던 팀원들은 오합지졸이었지만, 목표가 설정된 후에는 오합지졸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각각의 팀원들이 ‘내가 시간을 단축시켜야 한다’ 라는 투철한 사명감으로 달렸고 그 결과 값진 승리를 일구어 낼 수 있었다.
교회 안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목표는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나의 움직임은 어떠한지도.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인 마라톤에 대충 참가만 하는 건지, 공동 운명체인 팀의 목표를 위해 사활을 걸고 달리는 건지. 어느 순간이나 비장해야 하는 거 아닐까 싶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금세 다른 선수가 따라 붙는다. 나의 외도가 팀에 위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