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저물어 날 이미 어두니
(통일 531장, 새 481장)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이 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올해는 무슨 일을 하게 하셨나 되돌아보게 된다. 일 년이라는 긴 시간이건만 특별히 한 일이라고 기억나는 것도 없이 또 한 해가 지나갔다. 새해가 되면 금년에 하고 싶은 계획들을 또 세우지만 일 년이 지나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것 외에는 마찬가지 상황이 반복된다. 하나님으로부터 “악하고 게으른 종”(마 25:26)이라고 책망받아 마땅하다. 그러므로 각자의 위치에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 따라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의미있게 살아가도록 하여야겠다.
찬송시 ‘때(가) 저물어(서) 날(이) 이미 어두니’는 스코틀랜드 태생의 라이트(Henry Frances Lyte, 1793~1847) 목사가 지었다. 그는 영국 성공회 목사로 어촌인 브릭스함(Lower Brixham)에서 목회를 하였다. 이 시는 원래 1820년에 친구의 임종을 지켜본 어느 날 황혼을 바라보고 지었다고 한다. 라이트 목사는 결핵을 앓고 있었고 그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 1847년, 그는 결핵으로 요양하기 위해 24년간 섬기던 교회를 떠나면서 이 시를 꺼내 들고 교인들과 감격하며 낭송하였다고 한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세상을 떠났다. 이 찬송의 곡명 ‘황혼(Eventide)’은 영국 런던 태생으로 국립음악교육원 총장을 지낸 몽크(William H. Monk, 1823~1889)가 1861년 ‘고금찬송가(Hymns Ancient and Modern)’ 위원회의 위촉으로 라이트 목사의 시에 맞추어 작곡한 것이다. 아래는 찬송가의 가사이다.
때 저물어 날 이미 어두니 구주여 나와 함께하소서.
내 친구 나를 위로 못 할 때 날 돕는 주여 함께하소서.
내 사는 날이 속히 지나고 이 세상 영광 빨리 지나네.
이 천지 만물 모두 변하나 변찮는 주여 함께하소서.
주 홀로 마귀 물리치시니 언제나 나와 함께하소서.
주같이 누가 보호하리까 사랑의 주여 함께하소서.
이 육신 쇠해 눈을 감을 때 십자가 밝히 보여주소서.
내 모든 슬픔 위로하시고 생명의 주여 함께하소서. 아멘.
이 찬송의 영어 원어 가사는 ‘나와 함께 머무소서(Abide with me)’라는 기도로 시작한다. 그리고 매절마다 이 기도로 마치고 있다.
1절은 너무나 외로운 그의 모습이 느껴진다. 병들거나 나이 들어 몸이 약하여졌을 때 누구의 위로도 도움이 안 된다. ‘내 친구 나를 위로 못 할 때’에서는 가까운 식구들도 친구들도 위로가 되지 못함을 느낀다. 라이트 목사는 가장 외로운 상황에서 어느 누구도 위로해 줄 사람이 없을 때 주님께 간구하고 있다.
2절은 이 세상 사는 날이 빨리 지나고 천지 만물 모두 변하지만 변치 않는 주님께서 함께하여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
3절은 앞부분의 영어 가사를 직역하면 ‘나는 매시간 당신의 임재가 필요합니다. 당신의 은혜 외에 무엇이 유혹하는 자의 권세를 무너뜨릴 수 있겠습니까?’라는 내용이지만 번역 과정에서 차이가 느껴진다.
4절은 ‘이 육신 쇠해 눈을 감을 때 십자가 밝히 보여주소서’라고 기도하며 ‘생명의 주여 함께하소서’라는 마지막 구절에서는 우리의 마음을 찡하게 한다. 마지막 구절은 영어 원문으로는 ‘In life, in death, O Lord, abide with me.’(삶에서도 죽음에서도 주님, 나와 함께하소서.)로 작시 되어 있다.
시는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이 되면 고유한 운율은 사라져버린다. 특히 노래 가사인 경우에는 음표에 글자를 맞추어 넣다 보면 단어가 생략되거나 추가되기까지 한다. 그런 까닭으로 이 찬송은 영어권에 있는 사람들이 부를 때 느끼는 그 맛을 한글로 번역된 찬송을 부르는 우리가 100%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찬송은 해를 보내며 부를 찬송으로 적당하지만, 이 세상 삶을 마치는 순간에 부를 찬송으로도 알맞은 노래이다. 가사 내용이 그런 시기에 기도해야 할 내용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 찬송은 영국인들이 특히 좋아하여 장례식장에서도 불리지만 결혼식에서도 많이 부르고 있다. 조지 6세(1895~1952,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부친)의 결혼식, 엘리자베스 2세의 결혼식에서도 이 찬송을 불렀다고 한다. 심지어 1927년부터 FA컵 축구 결승전 경기 전에 이 찬송을 부르고 있으며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 때도 불렀다.
우리나라에는 민로아(Frederick S. Miller, 閔老雅, 1866~1937) 선교사가 번역하여 1902년 『찬셩시』에 소개하였다.
2022년 새해를 맞이하여 나이를 한 살 더 먹음과 함께 우리의 이 땅에서의 삶의 기간은 그만큼 단축되어 가고 있다. 우리가 부푼 꿈을 가지고 새해의 계획들을 세워도 그것을 이루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삶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남은 여생을 더욱 값지게 인도하시기를 간구할 뿐이다.
마음의 경영(계획)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잠 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