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연말이 되면 매년 연주되는 곡 중의 하나가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 1685~1759)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이다.
개신교의 종교개혁(16~17세기) 이후 가톨릭교회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개신교의 집회와 전도 활동은 가톨릭 지도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가톨릭교회 안에서의 음악도 성가대뿐 아니라 회중의 참여를 권장하였고, 다양한 교회 집회에서도 음악은 이전보다 자주 연주되었다. 오라토리오(Oratorio)라는 말도 원래 음악 형식을 말하는 용어는 아니었다. 라틴어 어원인 Oratorium(기도하는 장소)의 의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라토리오는 처음에는 가톨릭교회에서 몇 사람이 모여서 성경에 대하여 토론하고 기도하는 작은 모임이었으나 점차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대규모의 집회가 되었다. 지금과 같은 오라토리오는 17세기 이후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교회음악으로 독창, 중창, 합창, 오케스트라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라토리오는 하루 저녁의 음악회를 채울 수 있는 정도의 방대한 규모이다. 그리고 이야기 줄거리가 있지만, 무대 연기 없이 음악회 방식으로 공연되며 동작, 배경, 의상 등을 사용하지 않는 점에서 오페라와 구별되고, 가사는 주로 기독교적인 것에 한정되는 점에서 교회 칸타타나 수난곡과 아주 비슷하다.
헨델은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와 함께 독일 바로크음악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그러나 바흐가 교회음악에 주력한 데 비하여 헨델은 오페라에 정성을 쏟았다. 헨델은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 유학했고, 중년 이후 영국에 정착하여 40여 곡의 오페라를 작곡하였으며 직접 오페라 극장을 운영하였다. 처음 한동안은 성공하는 듯 보였으나 그의 명성을 시기하는 무리의 방해공작으로 여러 차례 파산을 겪어야 했다. 특히 1737년(52세)에 정치 문제로 귀족들이 방해하여 그는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고 과로에 의한 뇌일혈로 쓰러졌다. 이제 헨델은 반신불수가 되어 걸을 수도 말을 하거나 글을 쓸 수도 없게 되었다. 의사도 그가 회복할 가망이 없다고 판정하였으나 헨델은 초인적인 의지력으로 병을 이겨내고 회복한 후 런던으로 돌아왔다. 실패만 거듭해 온 헨델은 오페라를 포기하고 오라토리오 작곡으로 눈을 돌렸다.
헨델의 스무 곡이 넘는 오라토리오 중 가장 뛰어난 걸작이 「메시아」이다. 헨델은 아일랜드 더블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요청으로 곡을 쓰기 시작하였다. 헨델이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완성한 것은 56세인 1741년 9월 14일이었다. 헨델은 「메시아」를 쓰는 동안 몇 번이나 깊은 감동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제44번 곡인 ‘할렐루야 합창’ 부분을 마쳤을 때는 너무 감동하여 ‘하늘이 열리며 위대하신 하나님의 모습이 보였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헨델은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22일에 곡을 쓰기 시작하여 식사시간도 걸러 가며 작곡에 몰두하였다. 헨델은 규모가 큰 대곡을 쓸 때면 침식을 잊고 단숨에 써 내려가는 습관이 있었으며, 총 53곡으로 354페이지나 되는 「메시아」의 총보를 불과 24일 동안에 완성하였다.
「메시아」의 초연은 곡이 완성된 이듬해인 1742년 4월 13일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연주되었다. 가난한 사람, 고아, 과부 등에 깊은 관심을 두고 그들을 돕는데 앞장섰던 헨델은 더블린에서 출감자 보호회 및 자선병원의 기금 마련을 위한 자선음악회를 통해 「메시아」를 처음으로 연주하였다. 객석은 600석에 합창단은 남성 14명과 소년 6명이고 관현악단은 30명인 소규모의 연주였지만, 당시의 신문 「포크너」지는 ‘도취한 청중의 기쁨과 감동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마음과 귀를 사로잡은 최고의 작품’이라고 극찬하였다. 이 연주회의 성공은 헨델의 높은 예술성의 결실일 뿐 아니라 자선기금 모집의 목적도 충분히 달성하게 되었다.
이어 1743년 코벤트 가든의 왕실 가극장에서 런던 초연을 가졌을 때, 영국 왕 조지 2세가 참석하여 44번째 곡인 ‘할렐루야 합창’을 듣다가 감동한 나머지 기립했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 이후 이 곡이 연주되면 청중들이 기립하는 전통이 생겨나게 되었다. 헨델은 「메시아」 하나로 완전히 재기에 성공하였다. 이제 그를 시기하고 모함하는 자들도 없어졌다. 헨델은 그 후 「메시아」를 32회나 직접 지휘 공연하였다. 모두가 자선음악회였으며 수익금은 자선사업에 기부하였다. 헨델이 마지막으로 연주한 곡도 「메시아」이었다. 백내장으로 잘 안 보이는 시력과 체력을 정신력으로 버티며 연주하다가 마지막 곡인 ‘아멘 코러스’가 끝나자 쓰러졌다. 부축을 받고 무대에서 내려와 그대로 눕게 되었고 1주일 뒤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웨스트민스터 성당에 묻혔고, 독일인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이 아닌 영국인 조지 프리데릭 한델(George Frideric Handel)의 이름으로 표기되었다.
「메시아」는 서곡(제1곡)에 이어 제1부, 제2부, 제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제2곡~제21곡)는 구약성경의 예언에 따른 메시아(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의 기대와 그리움(제2곡~제11곡)과 메시아의 강림(제12곡~제17곡)과 강림의 의의(제18곡~제21곡)를 노래한다. 오케스트라의 서곡에 이은 제2곡에서는 테너가 구약성경의 이사야 40장의 메시아 언약에 대한 내용인 ‘내 백성을 위로하라’를 낭송하듯이 레치타티보로 노래하면서 전개되고, 이어서 아리아와 합창이 반복되며 제21곡 ‘주의 멍에는 편하고 짐은 가볍다’는 힘찬 합창으로 제1부를 마친다.
제2부(제22곡~제44곡)는 신약성경 구절에서 인용되었으며 제22곡에서 제36곡까지는 예수님의 수난이고 제37곡부터 제44곡까지는 속죄를 노래하고 있다. 제22곡은 요한복음 1장 29절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는 비통한 합창곡으로 시작되며, 제44곡인 「할렐루야」합창으로 마친다. 「할렐루야」를 들을 때면 천국의 음악을 듣는 듯한 착각이 일어나기도 한다.
제3부(제45곡~제53곡)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하나님에 대한 찬가이다. 제45곡은 아리아로 소프라노가 ‘살아계신 주’를 노래한다. 그리고 마지막 곡인 제53곡은 요한계시록 5장 12~13절(아래 참조)을 가사로 한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이란 예수님을 칭송하는 합창곡으로 마친다. 끝부분에서 ‘아멘’이라고 반복적으로 노래하므로 이 끝 곡을 ‘아멘 코러스’라고도 하며 마지막을 장식하는 웅장한 합창곡이다. 가슴속으로부터 ‘아멘’이 터져 나오고, 계시록 마지막 부분(계 22:20)에서의 사도 요한처럼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기도하게 된다. 「메시아」곡을 듣노라면, 창세전 하나님의 계획하신 작정섭리대로 성경을 통해 계시하시고 그 계시하신 언약대로 메시아를 보내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며 우리의 신앙심이 더욱 깊어져 감을 느낀다.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계 5: 12~13)
참고문헌 안동림 :『이 한 장의 명반 클래식』, 현암사 / 나진규 :『교회음악개론』, 가온음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