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대의 역사
찬양대의 역사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신 은혜의 영광을 신령한 노래로 찬양하기 위하여 다윗은 찬양대를 조직하였으며, 이것이 찬양대의 시초이다. 역대상 6장에는 다윗이 레위인들을 성전에서 찬양하는 자들로 임명한 것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언급하고 있다.
“언약궤가 평안한 곳을 얻은 후에 다윗이 이 아래의 무리를 세워 여호와의 집에서 찬송하는 일을 맡게 하매, 솔로몬이 예루살렘에서 여호와의 전을 세울 때까지 저희가 회막 앞에서 찬송하는 일을 행하되 그 반열대로 직무를 행하였더라.”(대상 6:31~32)
역대상 16장에는 다윗이 언약궤를 장막 가운데에 두고, 찬양대를 조직하여 여호와께 찬송을 드린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또 레위 사람을 세워 여호와의 궤 앞에서 섬기며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칭송하며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으니, 그 두목은 아삽이요 다음은 스가랴와 여이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맛디디아와 엘리압과 브나야와 오벧에돔과 여이엘이라 비파와 수금을 타고 아삽은 제금을 힘있게 치고, 제사장 브나야와 야하시엘은 항상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나팔을 부니라.”(대상 16:4~6)
이어서 다윗은 아삽과 그 형제를 세우고 여호와께 드리는 감사와 찬송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언급하고 있다.
“그 날에 다윗이 아삽과 그 형제를 세워 위선 여호와께 감사하게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 모든 기사를 말할지어다. 그 성호를 자랑하라.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그 종 이스라엘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 행하신 기사와 그 이적과 그 입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도다.”(대상 16:7~14)
역대상 23장에는 다윗이 나이 들어 아들 솔로몬에게 이스라엘 왕위를 넘겨주고 레위 자손을 정비한 내용이 나온다.
“레위 사람은 삼십 세 이상으로 계수하였으니 모든 남자의 명수가 삼만 팔천인데, 그중에 이만 사천은 여호와의 전(殿) 사무를 보살피는 자요 육천은 유사와 재판관이요, 사천은 문지기요 사천은 다윗의 찬송하기 위하여 지은 악기로 여호와를 찬송하는 자라.”(대상 23:3~5)
역대상 25장에는 다윗이 성전의 기능을 원활히 하기 위해 찬양대를 체계적으로 조직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다윗은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자손 중에서 구별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하였는데, 그들로 수금과 비파와 제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게 하였다. 아삽의 아들 4명은 아삽의 수하에 속하여 왕의 명령을 좇아 신령한 노래를 하였고, 여두둔의 아들 6명은 여두둔의 수하에 속하여 수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며 여호와께 감사하며 찬양하였으며, 헤만의 아들 14명은 나팔을 부는 자들이었고 헤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드는 왕의 선견자였다. 24명의 아들들이 각각 파트장이 되어 각 파트에 12명씩 24개 파트를 구성하였고, 총 288명의 오케스트라를 구성하였다.(대상 25:)
느헤미야 12장에는 유다 총독인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 재건 후 봉헌 예배를 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으며 두 찬양대가 교송(시편 등을 교독하듯 번갈아 찬송)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에 감사 찬송하는 두 떼와 나(느헤미야)와 민장(지도자)의 절반은 하나님의 전에 섰고, 제사장 엘리아김과 마아세야와 미냐민과 미가야와 엘료에내와 스가랴와 하나냐는 다 나팔을 잡았고, 또 마아세야와 스마야와 엘르아살과 웃시와 여호하난과 말기야와 엘람과 에셀이 함께 있으며 노래하는 자는 크게 찬송하였는데 그 감독은 예스라히야라. 이 날에 무리가 크게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의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느 12:40~43)
신약 성경에는 찬양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찬양의 종류와 방법 등이 여러 차례 묘사되어 있다. 따라서 신약 시대에는 찬양이 구약 시대의 제사장적 역할이 아니고, 회중 속에서 찬양이 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약 시대 이후의 찬양대는 중세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예전(禮典)이 발달함에 따라 교회에서 노래하는 집단인 찬양대가 출현하게 되었다. 중세 시대의 찬양대는 남성으로만 구성되었으며 높은 음역은 변성기를 지나지 않은 소년들이 참여하였다. 그레고리 교황(540~604)은 예배 의식을 통일하였고 ‘스콜라 칸토룸’(Schola Cantorum, 중세 시대에 훈련된 교황 합창단으로 교회에서 무반주 육성만으로 찬양을 전문적으로 불렀음)의 교육을 강화하여 통일된 의식을 가르쳤다.
현대 찬양대의 형태인 혼성 찬양대는 18세기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이전까지는 찬양대가 남성만으로 구성이 되었으나 소년들이 부르던 고음부를 여성이 부르게 되었고, 직업적인 전문인들이 아니라 자원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미국 청교도들은 음악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체계적인 찬양대가 없었으나, 뉴욕 삼위일체 영국교회가 찬양대원과 오르간 반주자를 영국으로부터 초청하여 미국에서 처음으로 찬양대를 조직하였다. 1774년 매사추세츠주의 스타우톤에서 빌링스(William Billings, 1746~1800)에 의하여 최초로 성가학교(Sacred Singing School)가 설립되었고, 그때 창단 멤버는 남성 17명과 여성 31명으로 구성된 혼성 찬양대였다.
19세기에는 메이슨(Lowell Mason, 1792~1872)에 의하여 가창(singing)이 공립학교의 교과목으로 채택되었고, 보스톤 음악협회가 창립되어 교회음악을 중심으로 한 활발한 음악 활동이 이루어졌다. 19세기 후반 교회가 성장함에 따라 전문적인 가창 인도자가 발생하게 되었고 이것이 혼성 사중창단이다. 이 혼성 중창단의 역할은 자원 찬양대원과 함께 노래함으로써 자원 찬양대원들을 노래로 돕고, 찬양대를 대신하여 찬양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하여 찬양대의 질적 수준이 향상되었고, 찬양대 내에 독창자를 두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
요즈음은 ‘교회음악과’, ‘종교음악과’ 등을 통해 바른 찬양과 수준 높은 찬양을 위한 전문 교회음악인을 양성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음악이 양적·질적으로 발전하였다고 하여도, 찬양이 기교적이고 우리의 감성에 호소하는 음악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위에 언급한 대상 16:7~14에서 다윗이 말하였듯이 우리의 감사와 찬양의 대상은 언약대로 성취하시는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명심하고 또 명심할 일이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 내 영혼이 여호와로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가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시 34:1~2)
참고문헌 문현호 저,『개정판 교회음악사』, (코람데오,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