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에 대한 칼빈의 신학
찬송에 대한 칼빈의 생각들을 전해주는 자료들은 「기독교 강요」, 「시편주석」, 「제네바 시편가」 서문 등이다. 칼빈은 대개 주중에는 구약을, 주일에는 신약을 강론하였다고 한다. 그러한 그가 시편에 큰 관심을 가지고 1549년~1554년 주일 오후 시간에 거의 매주 시편을 강론한 것은 예외적인 일이었으며 그가 시편에 그만큼 높은 신학적 가치를 두었다고 볼 수 있다.
16세기 종교개혁은 복음의 진리를 재발견한 데서부터 시작하였고, 재발견된 은혜의 교리는 당시 미사를 대신하는 새로운 예배를 요구하였고, ‘교리의 개혁’이 ‘예배의 개혁’으로 이어졌다. 당시 중세의 미사는 종교심과 선행심을 조장하였다. 그러나 ‘오직 믿음’과 ‘오직 은혜’를 말하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예배에서는 그러한 요소를 모두 제거하였고, 구원의 도리를 선포하는 것을 예배의 핵심으로 삼았다. 그는 말씀에 근거한 방식으로 예배를 개혁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성체성사 중심의 미사는 말씀 선포 중심의 예배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이전에는 소수의 성직자들만 성경을 배울 수 있었는데 인쇄술의 발달로 이제는 대중이 모국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칼빈은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라는 구절에 근거하여, 「제네바 시편가」에서 말씀, 성례, 기도와 찬송을 예배의 요소로 말하였다.
칼빈은 찬송을 기도의 한 종류로 보았다. 그에 의하면 기도에는 간구와 감사가 있는데 찬송은 그중 감사에 해당한다. 칼빈의 생각은 찬송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의 기도라는 것이다.
칼빈은 시편 부르기를 제안하고 그 유익을 강조하였다. 다른 어떤 기도보다도 시편을 노래함으로써 얻는 유익은 우리 마음이 자극되고 하나님께로 일으켜지며, 모두가 일치하여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기도를 더 열정적으로 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칼빈의 종교개혁 목표 중 하나는 교회가 찬송다운 찬송을 부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칼빈은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는 찬송이 바로 시편가라고 하였다. 시편가는 교회가 교화(edification)되는 유익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 이름의 영광을 부르고 높이려는 열정에 이르도록 우리를 자극한다고 말하였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도 찬송의 유익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칼빈은 공적 기도, 즉 말로 하고 노래로도 하는 공적 기도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고 거기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즉 사람의 마음은 불안정하고 변화가 많아서 여러 가지 수단을 통해 도움을 받아 흐트러지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바로 공개적으로 함께 드리는 기도와 찬양이 그러한 수단이 된다고 보았다. 신자들은 함께 한목소리,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함으로써 서로가 서로에게 신앙의 고백을 주고받게 된다.
칼빈은 찬송을 부를 때 성도들이 찬송의 가사, 즉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기독교 강요」에서, 공적 기도는 모든 회중이 공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국민적인 말로써 표현되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일상의 언어로 기도를 드리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신 분명한 명령이라고까지 말하였다. 그는 고전 14:16의 말씀을 빌려 그 이유를 설명하였는데,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라고 말하였다. 칼빈은 성경의 말씀을 통해, 성도들이 자신이 부르고 있는 찬송이 어떤 내용인지를 바로 알고 불러야 하며, 특히 그 영적 의미를 제대로 알고 불러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해는 그리스도인들의 마음과 감정을 움직이는 필수적인 선행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칼빈은 이렇게 지성의 바탕 위에서 마음으로 드리는 노래만이 바른 찬송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로 칼빈은 당시 가톨릭 미사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칼빈은 특별히 구별된 성직자들로만 이루어진 찬양대가 라틴어로 된 찬송을 불러서 성도들이 그 내용을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을 언급하면서, 미사에서 라틴어로 노래하는 것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찬양대원들은 아름다운 음성을 내기 위한 발성도 중요하지만 가사 전달을 정확히 하기 위하여 회중이 알아듣도록 정확한 발음을 내는 훈련을 하여야 할 것이다.
칼빈은 음악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하였다. 칼빈에 따르면, ‘음악은 사람을 재창조하고 기쁨을 주는 것 중에서 첫 번째 위치를 차지하며,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다. 음악의 목적이 여기에 있으며, 음악은 이러한 목적을 위해 주신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칼빈은 음악의 목적을 인간의 기쁨에 한정하지 않고, 더 큰 목적 즉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데로 확장시킨다. 그런데 우리의 기쁨이 하나님 안에서만 참되다고 말한 그의 가르침을 상기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음악만이 인간에게 참 기쁨과 만족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그런데 칼빈은 음악의 유익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끊임없이 음악의 위험, 정확하게는 그 오용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칼빈의 이러한 생각은 음악에 있어서 ‘절제’라는 개념으로 나타난다. 결국 타락한 인간은 음악을 잘못 사용함으로 인해 음악을 음란함이나 난잡함의 도구로 만들 수 있다. 교회음악조차도 이런 유혹에 빠지고 말았다는 것이 칼빈의 생각이었고, 이는 당시 로마 가톨릭의 의식들을 보면 잘 드러난다. 그는 곡조가 너무 아름답거나 화려하면, 그 아름다움에 빠져 가사가 갖는 영적 의미를 놓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칼빈은 가사의 영적 의미를 방해하지 않는 절제된 선율 하에서만 시편가가 성스럽고 유익한 것이 된다고 보았다. 우리는 이러한 칼빈의 말들을 통해 선율보다 가사가 더 우선이라고 여기는 그의 음악관을 엿볼 수 있다.
제네바 시편가가 공예배를 위한 것이었지만 사람들은 가정과 일터, 거리에서도 시편을 노래하였다. 칼빈은 시편가가 일상생활에서도 믿는 자들에게 영적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였다. 칼빈은 고린도전서 14장 15절과 골로새서 3장 16절을 인용하면서, 사도 바울이 시편가를 합창하도록 가르쳤고, 초대교회가 이를 시행하였기 때문에 시편가를 부르는 것은 성경적인 동시에 사도적 전통을 따르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칼빈은 초기에 종교개혁(정확한 표현으로는 교회개혁)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러나 칼빈의 교회개혁에서도 오류들이 있다. 그러므로 교회개혁은 계속 진행되어져야 하며 성경적인 기독교의 모습으로 무한 수렴하여야 할 것이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시 9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