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나무와 목재
성경에 나오는 식물 가운데 번역이 잘못된 것이 종종 나오는데 뽕나무는 그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돌무화과 나무’와 이것이 우리말로 번역된 ‘뽕나무’는 생긴 모양새도 열매도 전혀 비슷한 구석이 없기 때문이다. 히브리어로 ‘쉬크마’로 불리는 돌무화과 나무는 단어 자체로는 ‘재활’ 또는 ‘갱생’을 의미한다. 이후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대로 뽕나무로 기록하는 것이 편할 것이다.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을 돌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같이 많게 하였더라”(왕상 10:27)
뽕나무의 특징은 산지와 평지의 구분 없이 어디서나 잘 자라는 올리브 나무와 달리, 산지에서는 자라지 못하고 평지에서만 자란다는 것이다.
이러한 뽕나무의 특성을 알 때, 솔로몬 시대에 은을 돌같이 흔하게, 그리고 레바논의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 같이 많게 했다는 표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곧 동작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삼하 5:24).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있었던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사울이 죽자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은 요단강 동편인 마하나임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한편 다윗은 가드 왕 아기스의 승인 아래 헤브론에서 7년간 유다의 왕으로 통치하면서 짧지만 남북 분열기의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헤브론의 다윗이 마하나임의 이스보셋을 흡수 통일하고 여부스(예루살렘)를 점령해 통일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자, 블레셋의 연이은 침략이 있었다. 가드왕 아기스는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다윗을 알아챘고, 통일된 이스라엘의 잠재력이 커지기 전에 미연에 싹을 자르려고 했을 것이다.
두번에 걸친 블레셋의 예루살렘 침공을 사무엘서 저자는 ‘블레셋 사람들이 올라와서 르바임 골짜기에 편만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르바임 골짜기는 예루살렘 바로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서, 이 말은 곧 ‘블레셋이 다윗의 코 앞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때 두 번의 블레셋 공격을 격퇴함으로써 다윗이 다스리는 이스라엘은 근동의 대제국으로 성장하게 된다. 짧은 블레셋 제국의 시대가 끝나고 다윗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스라엘 제국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번째 블레셋 전투 당시 하나님께서 주신 전략이 재미 있다. 하나님이 주신 전략은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동작하라’는 것이었다. 이 말은 예루살렘이 있는 산지와 그 밑에까지 쳐들어온 블레셋과 달리 실제 전투는 블레셋이 올라온 평지에서 벌어진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정면 공격이 아닌 평지로 내려가서 블레셋의 후미를 치도록 친히 작전 명령을 내리신 것이다. 뽕나무가 예루살렘과 같은 산지에서는 도저히 자랄 수 없는 나무라는 것을 모를 때 이 작전의 의미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 7:3)
뽕나무는 재목으로 자라는데 6년이면 충분한데, 이는 심은 후 7년째가 되는 안식년을 건드리지 않고 늘 재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나무였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는 최고의 건축자재로 인식되었다.
목재가 귀한 이스라엘에서는 사방의 벽을 돌로 쌓고 그 위에 종려나무 가지를 올린후 진흙으로 덮는 경우가 많았다. 지붕의 목재 빔으로 주로 쓰이던 나무가 바로 가볍고 단단하며 잘 썩지 않는 뽕나무였다. 지붕 위에 빔으로 까는 뽕나무가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들보’인 것이다.
탈무드에 보면 건축재로서 뽕나무의 유용성을 언급하는 부분이 있다. 2층 이상의 집을 렌트하는 사람이 지붕의 빔을 백향목으로 짓는 것을 금했고 만약 백향목으로 지은 집에서 지붕이 무너질 경우 뽕나무로 지은 집보다 더 많은 벌금을 집 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상해야 했다. 흔히 백향목을 최고의 목재로 알지만, 이스라엘에서는 뽕나무가 지붕의 빔으로서 안성마춤이었다. 이는 백향목보다 뽕나무가 가볍고 단단해서 크고 작은 지진이 많은 이스라엘에서 지붕이 무너져 내릴 가능성이 훨씬 낮았기 때문이다.
“게델 사람 바알하난은 평야의 감람나무와 뽕나무를 맡았고”(대상 27:28)
이스라엘에서 목재로서 뽕나무의 명성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했는데, 다윗 왕 시대에 뽕나무를 전담하는 내각 장관에 게델 출신의 바알하난이 임명된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바알하난은 감람나무와 평야의 뽕나무를 맡았는데, 그는 과연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한 것일까?
성서시대 이스라엘 집에서 지붕의 빔은 거의 대부분 뽕나무였다. 그런데 목재가 귀한 곳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 그루의 뽕나무에서 최대의 목재를 얻는 독특한 방법을 고안해 냈다. 이는 뽕나무가 어느 정도 자라면 도끼로 나무를 베어내는 것인데, 그러면 그루터기의 뿌리 주변의 사방에서 수많은 새로운 가지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로써 이스라엘 전지역 주택의 지붕을 커버했던 것이다. 아직 도끼로 한번도 쳐내지 않은 뽕나무를 ‘처녀 뽕나무’라고 불렀다. 탈무드의 부록인 ‘도세프타’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이스라엘에는 3종류의 처녀가 있다. 이는 남자와 자지 않는 처녀 여자’, 아직 땅을 경작해서 농작물을 재배한 적이 없는 ‘쳐녀 땅’, 그리고 아직 도끼로 쳐내지 않은 ‘처녀 뽕나무’가 그것이다.
바알하난은 뽕나무 배양, 즉 뽕나무 열매를 펀칭하고 올리브 기름을 발라서 수확시키는 일과 함께 처녀 뽕나무를 도끼로 쳐서 이스라엘 전 지역을 커버할 최대한의 목재를 얻는 일을 총괄했을 것이다.
아울러 그는 올리브 나무도 맡았는데, 이는 올리브 열매의 수확과 4번에 걸쳐 짜서 정확한 용도에 따라 사용되어야 할 올리브 기름을 책임지고 있었다. 이 일은 성서시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마치 가정의 주부 역할과 같이 섬세한 리더십이 필요한 직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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