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답지를 옆에 둔, ‘젊은 날의 방황’
글쓰기를 평생의 업으로 삼겠다고 비장하게 다짐한 순간부터 글이 한 자도 써지지 않는다. 아니 사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중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글을 쓰려면 글의 주체가 되는 ‘나’를 정확히 아는 것인데 도저히 해답이 내려지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 나의 정체성, 나의 자아, 나의 존재. 얼핏 심오한 물음들 같지만, 실은 이것들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까뮈 역시 <시지프의 신화>에서 이런 말을 한다. ‘참으로 중대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자살이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을 판단하는 것, 이것이 철학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그 이외의 것은 이후의 일이다. 그것들은 장난이다. 우선 근본 문제에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그와 같은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었고, 그 상황은 나를 끝내 궁지로 몰아넣었다.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했다. 학자들은 어떤 식으로 이 문제를 풀었을까. 예술가들은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 지인들도 가능한 한 많이 만나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답은, 그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했다. 나는 그 중에서 내게 맞는 답을 취사선택 하거나 혹은 그들의 사유를 밑천으로 새로운 해답을 만들어야 했다. 거꾸로 말하자면 그것은 ‘정답이 없다’는 뜻이었다. 이 세계는 상대성과 다양성이 무수하게 존재하므로 내 해답 역시 그 다양성에 또 하나를 보탤 뿐 기준이 명확한 모범 답안이 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게 크나큰 절망으로 다가왔다. 정신이 황폐해졌다. 신은, 하나님은 그런 나와 전혀 상관없는 멀고 동떨어진 존재 같았다.
그 때 청년부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해주셨다. 그 속에서 답을 찾는다면 아마 너는 평생 찾지 못할 거라고. 하나님은 인간들처럼 나는 어떤 존재다, 너는 어떤 존재다 구구절절 말씀하진 않으셨지만 가장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당신의 존재에 대해 선명한 계시를 해주심으로써 그를 힘입어 사는 우리 또한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해주신다고. 막상 글로 옮겨놓으니 평이하고 별 것 아닌 말처럼 느껴지는데 내겐 구원과도 같은 말이었다. (당시의 나는 내 주변의 모든 것들과, 내가 하려는 일과, 이 세계와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 냉소와 조소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체의 진심이 얼마나 소중하고 위력적인지 또한 그 때 깨달았다. 그리고 오늘 선생님의 ‘현대 복음주의’ 강의를 들으면서 목울대가 뜨거워짐을 느꼈다. 성경신학의 원리를 통해 해석되는 성경은 알면 알수록 깊고 우월하며 숭고한 말씀이다. 감히 비할 수 있는 대상이 없다. 이것은 매우 입체적이고 다면적이며 부분의 논리와 전체의 논리가 소름끼칠 만큼 꼭 들어맞는다. 빈틈이 없다.
신학계의 무수한 지성들이 이 문제를 풀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평생을 성경 연구에 매달린 학자들 또한 성경의 원리를 발견해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들은 그토록 열렬하게 갈구하고 목숨까지 바치며 원했으나 답의 근저에도 가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는 안다. 성경의 올바른 해석 원리를 알고, 성경을 알며, 성경에 계시된 여호와도 생생하게 인식할 수 있다. 그저 단지, 21세기의 한국을 산다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위업이 없음에도 말이다. 오늘 선생님께 다시 물었다. 하나님은 택자 중에서도 더 사랑하는 자와 덜 사랑하는 자의 차등을 두는 것 같다고. 그렇지 않다면 대체 왜 무슨 이유로 이 엄청난 보물을, 그것을 감당할 깜냥이 안 되는 나에게 주신 거냐고. 그 사무치는 감격에, 이십 칠년 평생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울어봤다. 탕자의 눈물이 이랬을까. 아니 그 감동은 내가 탕자보다 더 할 거다. 나는 아마 죽을 때까지도 하나님의 사랑을 반도 헤아리지 못할 듯 하다. 아무 것도 아닌 나를 귀히 여겨 내려주신 말씀인 만큼 한 알 한 알 곱씹고, 뜨겁게 매진해야겠다. 예전엔 성경 공부에 대한 당위와 사명을 가졌다면 이젠 그 모든 것을 능가하는 사랑의 감격을 안게 되었다.
감사하다. 내가 믿는 신이 야훼인 것이. 절대적인 애정을 거칠 것 없이 내리 꽂아주신 그 분의 일방적인 사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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