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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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7-01 15:45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교회행정체제 개혁 방안 모색


강남노회 목사장로연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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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말라(갈 5:1)

강남노회(노회장 강희권 목사)는 지난 6월 16∼17일 호크마하우스(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에서 ‘교회행정개혁’을 주제로 목사장로연수회를 가졌다. 강사는 박용기 목사(성경신학연구소장). 박용기 목사는 이날 강의를 통해 왜 교회체제를 개혁하는지 그 이유와 당위성, 그리고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박목사는 “하나님이 만드신 율법에서는 벗어나게 하고 종교지도자들이 만든 헌법에서는 매이게 하는 것이 오늘날의 교회 모습”이라면서 “체제에 의해 성도들에게 직임을 부여하고 직임을 받은 성도는 그것을 은사로 생각하는 억압된 신앙생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체제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번 목사 장로 연수회 주제는 참으로 심대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이번 주제인 “체제개혁의 당위성”이라는 명제는 500년 구체제의 문제를 지적하고 새로운 체제의 절박성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씀운동의 역사 30여년를 거치면서 정립된 이른바 언약성취사적 성경신학의 토대위에 본격적인 체제개혁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이 된 셈이다. 이제 말씀운동의 제2기 도약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말씀운동의 역사에서 강조해 왔듯이 500년 개신교 교회사의 획을 긋는 새로운 체제개혁의 기치를 드는 일과 앞으로의 힘찬 추동은 인간이 하는 일이 결코 아니다. 이는 이미 오래전 하나님의 진리가 드러나면서 그 윤곽을 드러내었다. 이번의 체제개혁의 구체성은 이미 그동안 성경신학적 진리의 배움 안에 들어 있었던 내용들을 본격적으로 구체화 시킨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씀운동의 모토였던 “하나님께서 하게 하신다”는 명제대로 체제 개혁도 진리되신 하나님께서 진리를 깨닫게 하는 농도대로 행하게 하시는 일이다. 말하자면 사람들이 주도해서 하는 일이 아니다. 이는 지난 30년의 말씀운동의 역사에서 치열한 내부적인 자기반성과 성찰을 거치면서 도출해낸 내용이기에 더욱 값지고 복된 내용을 담고 있다.

1. 체제 개혁의 당위성

  성경신학연구소 소장이신 박용기 목사님께서는 강론에 앞서 본인의 심경을 토로했다. 이번 주제 강의는 먼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진리 증거자로 나선 목사님들이 뼈를 깎는 자기성찰과 더불어 자기개혁의 절실한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했다.  만약 교회운영에 있어서 기득권이 있다면 그것을 하나님 앞에 과감하게 내려놓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체제개혁의 당위성은 네가지 측면에서 검토되었다.
 
  첫째가 역사적 측면이다.

  종교개혁은 중세 교황제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출현하였다. 중세 교황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인류의 역사가운데 존재해온 왕정의 교회적 실현에 불과하다. 왕정은 오래전 애굽 시대로부터 로마를 거쳐 중세에 이르기 까지, 그리고 동양에서도 면면히 이어온 타락한 정치체제이다. 요컨대 왕정이란 인간이 하나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욕망의 실현인셈이다. 

  중세 교황제는 인간이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정치적 야망을 오래동안 유지하면서 진리를 사장시켜 왔다. 이런 그릇된 체제를 부정하고 오직 성경의 권위에 의해 교회를 다스리겠다고 하는 것이 종교개혁의 이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은 구속사적 진리에 의한 지엽적인 성경이해에 기초하기 때문에 중세적 전제주의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즉 교황중심체제가 목사 중심체제로 바뀐 것에 불과하다.

  그래도 종교개혁 당시는 교황제에 대한 치열한 비판을 감행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종교개혁 정신을 따른다는 장로교회는 거의 목사일인의 주도하에 전제정치의 형태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교회체제를 세워놓고 규칙들을 정하고 규범적인 가르침 속에 성도들은 알게 모르게 억압당하고 있다. 이점에서 현존 장로교회 체제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새롭게 개혁되어야 한다.

  둘째, 시대적인 측면이다.

  이 시대는 이제 정보 전자시대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 과학적 합리성이 발달하였고, 사실에 근거한 주장이 아니면 설득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과거 기독교의 과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의 두뇌를 점령하지 못한 것이다.
  합리적 근거를 따지는 새로운 세대에게는 논
리적이고도 사실에 근거하는 진리의 말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두뇌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안테나로서 기능한다. 이제 구세대에서처럼 한 장소에 모아놓고 감성을 자극하는 선동적 부흥회 방식은 이미 지나갔다. 정확한 진리의 말씀을 어디서라도 인터넷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이제는 인터넷을 통한 다양한 공부모임이 형성될 수 있으며 그것들을 묶을 수 있는 학교체제가 필요하다. 즉 학교 체제란 신학적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으로서 신학적 연구와 검증을 해가는 것을 의미한다. 공부는 다양한 채널과 방편을 통해 이루어 질수 있으며 학교체제는 신학적 지원작업을 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신학적 측면이다.

  전통적 구체제는 종교개혁의 전통을 따르는 구속사적 신학에 기초하여 만들어 졌다. 근원적으로 말해 구속사적 신학은 인본주의적인 동기를 가진다. 즉 인간 구원이 성경의 근본적인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구속사적 신학은 목사 중심의 인본적인 목회와 체제구축의 근거를 제공한다. 말씀중심의 체제가 형성되지 못하고 인위적인 정치체제의 구축으로 말미암아 성도의 신앙양심을 억압하게 된다. 자유로운 교회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억압적 분위기가 형성된다. 

  인간의 구원이 결코 성경의 근본 기록목적이 될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시며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이심을 확증하는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말씀이다. 구속은 하나님의 은혜의 귀결이다. 이런 말씀에 비추어 볼때 구속사적 신학의 틀에 의해 생겨난 구체제는 근본적인 차원에서 새롭게 개혁되어야 한다.
 
 넷째, 제도적인 측면에서이다.

  전통적 체제에서의 신앙생활은 어떠한가? 명분상 교회의 진리에 의해서 운영된다고 하지만 실제는 그와 거리가 멀다. 실제적인 교회생활은 이미 구속사 진리를 기초로 하는 장로교회의 구축된 체제가 있고 그 체제에 의해 규정된 규범과 규칙들이 있다. 체제에 의해 직임이 주어지고 직임자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주일을 안식일로 규정하고 반드시 나와야 된다. 직임자는 십일조를 반드시 내야한다 등등의 규칙 혹은 규범이 있다. 이런 틀 속에서 성도는 알게 모르게 영혼의 억압을 받는다.
 
  그러나 목하 성경신학적 입장에서 추구하는 체제개혁은 이와는 정반대의 복음적 원리에 기초한다. 즉 진리에 의해 복음의 가치를 깨달은 성도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은사를 깨닫게 된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는 모두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가는데 있어서 아름다운 도구이다. 그 은사를 실현하는 것이 실질적인 직임을 수행하는 것이 된다. 은사 실행을 통한 실질적 직임수행자들이 자연스러운 체제가 형성된다.
 
  이때의 체제는 이전의 구체제와는 질적으로 다른 자유로운 체제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진리를 깨닫게 하심으로 자발적으로 은사를 실현하고자하는 생각이 우러났기 때문이다. 은사의 실현에는 모두가 수고가 따른다. 그러나 이때의 수고는 진리에 의해 우러나오는 사랑의 수고이기 때문에 자유함속에 즐거운 봉사이지 결코 무거운 짐이 아니다. 이런 자유로운 체제를 지향하는 것이 체제개혁의 근본적인 취지이다.

2. 체제 개혁의 구체성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함이라 (고전 12: 4~7)

성경신학적 교회관에 근거하는 체제개혁의 구체성

  체제개혁을 어떻게 구체화시켜나갈 것인가 하는 것은 성경신학적 교회관에 근거한다. 성경신학적 교회관에 의하면 교회란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들의 모임이며 전적으로 성령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주관하신다. 그래서 모든 성도들은 성령하나님의 주관하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갈수 있는 은사를 직접적으로 부여 받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교회관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신령적인 통일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전통적 로마 카톨릭 교회는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조직적 통일성을 주장한다. 이는 완전히 비성경적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장로교회는 명분상으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그 실제 내용을 들여다 보면 목사의 전제주의적인 체제에 의해 이끌어간다. 그래서 위에서도 언급한대로 성령께서 부여하신 은사중심의 자유로운 체제 운영이 아니라 체제에 의해 규정된  일을 하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그런 체제 속에 억압을 느낄 수밖에 없다. 

 당회나 노회 그리고 총회는 성도들 위에 군림하는 기관이 결코 될수 없다. 그 기관들은 성령의 직접적인 통치 안에 살아가는 성도들을 섬기는 기관으로서 존재한다. 다시말해 성령 하나님은 성도들을 주관하시되 각자에게 교회를 세워 갈수 있는 은사를 베풀어 주신다. 당회나 노회를 통해 은사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당회나 노회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살아가는 성도들을 주관할 수 없다. 단지 먼저 말씀을 깨닫고 말씀의 원리를 통해 믿음으로 섬기는 기관일 뿐이다. 
 
  목사 중심의 교회관에서 비롯되는 결정적인 문제점은 전통적인 예배관이다. 현존 개신교 예배관은 지금 거의 카톨릭화 되어간다. 종교개혁당시만 해도 카톨릭적 요소를 거의 배제하면서 말씀중심의 예배가 드려졌다. 그러나 5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다시 예전 중심의 예배관으로 변질되었다. 목사는 거의 카톨릭 교회의 사제처럼 구약적인 제사장처럼 인지되고 있다. 그래서 제사장 역할을 수행하는 목사가 없는 예배는 가능하지 않는 것처럼 인식된다. 연보는 구약의 예물처럼 인식되고 교회당 역시 성전으로 오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예배관은 복음의 변질이다. 이런 예배관이 무의식적으로 개신교내에 보편화되어 있고 시간이 지나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과연 목사가 없으면 교회가 아니며 예배가 불가능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 목사는 가르치는 직분이되 설령 목사가 없다하더라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두 세사람만 모여도 실제적인 교회이며 목사가 없어도 하나님께 예배할수 있다.

  성경이 가르치는 예배는 전 삶의 영역에서의 예배를 가르친다. 주일날 교회당에 모이는 것은 말씀을 배우는 시간이요, 친교와 회합의 시간으로서 예배라고 볼수 있다. 주일날 뿐 만 아니라 모든 날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도를 확신하며 살아가는 예배인 것이다. 이런 올바른 예배관에 비추어 보면 반드시 목사가 있어야 예배행위가 되는 것처럼 부지불식가운데 인식되어온 전통적 예배개념은 수정되어야 한다.
 
 연구소를 중심으로 지소 및 분소의 조직원리

  성경신학연구소는 앞으로 국내든지 해외 어디라도 성경신학의 말씀을 배우려는 성도들과 실제적인 연결이 된다. 이는 완전히 자유로운 의사에 기초한다. 예컨대 어느 지방에서든지 말씀을 듣고 배우고자하는 성도가 몇 가정이 있다면 자신들의 의사를 모아 자원하여 신청을 하면 연구소의 분소가 된다.  지소는 대개 도단위 혹은 광역시 단위에 하나정도로 구상중이며 해외는 어떤 나라든지 지소가 될수 있다.

  지소나 분소의 운영은 완전히 연구소와는 독립적으로 즉 자체적으로 운영을 해 가며 연구소와는 말씀의 가르침만으로 연결한다. 다시 말해 연구소는 지소 혹은 분소에 대한 신학적인 지원을 한다. 이렇게 되면 진리 안에서 튼튼한 결속을 이루게 되며 기타 모든 운영관계는 독립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되면 철두철미 자유롭되 진리에 의해 확고한 연결고리가 이루어지게 되며, 이는 결국 성경이 가르치는 본질적인 교회인 보편적 차원의 신령한 교회가 이루어진다. 

  연구소 산하 지소 혹은 분소의 개념은 현존 노회체제와는 별도의 원리에 의해 진행된다. 전통적인 노회 산하 교회들이 연구소를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가입을 하게 되면 점차 연구소 중심의 체제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노회는 점차 진리 중심의 체제로 승화되어 갈 것이다. 

  지소 혹은 분소는 개인이나 혹은 교회가 신청하여 세울 수 있다. 뿐 만아니라 앞으로 자신의 은사에 따라 각종 협력기구로서의 후원조직을 자유롭게 만들어 갈수가 있다. 예컨대 해외선교후원회 혹은 장학후원회, 혹은 출판후원회 든지 간에 누구나 자신의 진리깨달음에 기초하여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조직을 만들어 갈수 있는 결사의 자유가 있다. 이는 국내외 상관없이 누구나 은사 따라 자원하여 조직해 갈수 있다. 이렇게 되면 성경신학연구소는 명실상부한 국제적인 기관이 될 것이다.

  그간은 전통적인 구체제의 체제아래서 은사를 따라 결사의 자유가 다소간 장애요인이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선한 뜻에 자원적인 마음을 가지더라도 실제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반대나 다수의 힘에 의해 실현되기가 어려웠다. 그런 현상은 말씀운동 조직 전체의 활성화에 장애가 되었다. 쉽게 말해 하나님의 일을 추진함에 어려움이 있었고, 전체적으로 보아 조직의 건강성에 문제가 발생하며 하향 평준화 현상이 병적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3. 평가와 전망

 이번 주제는 너무도 혁신적, 혁명적인 의미를 가진다. 이는 적어도 지난 오백년 전통적 구체제에 대한 전면적인 혁신을 요하는 개혁적 의미를 지닌다. 이미 말씀운동은 여러해 전부터 전통신학을 넘어서는 신학의 혁명을 주장해 왔다. 이제 신학의 혁명에 기초한 체제개혁은 필연적인 코스이다. 앞으로 전통적 구체제와의 치열한 투쟁을 예고한다. 전통적인 관습을 넘어서는 일은 만만찮은 일이다.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은 수많은 도전과 박해를 무릅쓰고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은 무엇인가? 그것은 진리를 변질없이 지키고 과감하게 전파하는 일이다. 진리의 전파는 우리를 자유케 할뿐 아니라 진정으로 그 자유를 향유하게 하는 체제의 구축에 박차를 가하게 되어 있다. 박용기 소장님의 말씀대로 체제개혁은 우리가 계획을 세워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진리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고 되어지게 하시는 일이다.

  다시 말해 체제개혁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 일에 거룩한 쓰임을 받고 그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전보다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절실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 진리는 이론적인 수준에서만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과 체제의 운영을 통해서도 성도가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신령한 복을 누리게 된다. 체제개혁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만이 드높이 드러나기를 기원한다. 아멘.

김규욱 목사/주필

제46회 말씀운동사경회 개최
한국교회 언제까지 표류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