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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5주년 츠빙글리 종교개혁 기념학술대회’
츠빙글리 생애와 신학으로 위기 속 한국 개혁파 교회와 신학을 진단하다
지난 달 29일 ‘종교개혁자 츠빙글리 한국기념대회’는 ‘제505주년 츠빙글리 종교개혁 기념학술대회’(대회장 주도홍 박사)를 백석대학교 비전센터에서 개최하고 총 11편의 논문을 발제했다.
이번 기념학술대회는 발제 1 주도홍 박사(백석대)의 츠빙글리 종교개혁의 확장, 발제 2 이은선 박사(안양대)의 츠빙글리의 선택과 언약의 통일성, 발제 3 박찬호 박사(백석대)의 츠빙글리와 재세례파 제자들, 발제 4 이신열 박사(고신대)의 츠빙글리와 미코니우스, 발제 5 안인섭 박사(총신대)의 츠빙글리와 칼빈의 국가론 비교, 발제 6 양신혜 박사(합신대)의 츠빙글리의 ‘평화’ 이해, 발제 7 강민 박사(남원예닮교회)의 취리히 종교개혁과 아 라스코(John à Lasco), 발제 8 조용석 박사(안양대)의 마르부르크 회담 전후 츠빙글리 편지 연구, 발제 9 서창원 박사(총신대)의 기도에 관한 츠빙글리의 가르침, 발제 10 임종구 박사(대신대)의 츠빙글리와 칼뱅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베른과 제네바를 중심으로 그리고 발제 11 유정모 박사(횃불트리니티신대원)의 하인리히 불링거의 섭리론에 대한 연구 발제로 진행했다.
주도홍 박사는 “츠빙글리 종교개혁의 확장”에서 츠빙글리(Ulrich Zwingli, 1484-1531)의 연구가 한국교회에서 밀려난 상황에 문제를 제기하며 발제를 시작했다.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 연구에 비해 츠빙글리 연구는 초라할 정도다. 특히 한국교회가 츠빙글리의 성찬론을 단지 상징설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츠빙글리가 강조한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를 부각했다. 이미 유럽은 오래전 츠빙글리를 개신교의 선구자, 종교개혁 신학의 아버지와 선생, 개혁교회의 원조로 평가하고 있으며, ‘제2 스위스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17세기 언약 신학, 나아가 1934년 ‘바르멘 신학선언’이 츠빙글리 신학에 근거한다고 주장했다.
이은선 박사는 “츠빙글리의 선택과 언약의 통일성”에서 선택과 언약을 상호보완적 관계로 정립하고자 했던 연구에 주목하였다. 츠빙글리는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결함인 원죄에 대해 하나님께서 아담과 원 계약을 맺으셨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셨기 때문에 선택과 언약은 우리에게 믿음으로 주어진다고 본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선택의 결과이며, 언약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정을 맺어 구원받게 하신다는 더 분명한 표시가 되므로 선택과 언약은 하나님 구속사역의 확실성에 대한 통일된 증거가 된다.
박찬호 박사는 “츠빙글리와 재세례파 제자들”에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츠빙글리의 견해를 다루었다. 루터보다 국가에 대해 더 긍정적 기능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과 유아세례 시행에 대한 츠빙글리의 견해는 그의 제자들과 논쟁과 분열을 야기했다. 급진적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츠빙글리 국가관은 타협이었지만 츠빙글리에게 모든 공권력과 유아세례를 부정하는 것은 종교개혁의 대의를 위협하는 사안이었다.
이신열 박사는 “츠빙글리와 미코니우” 발제를 통해 츠빙글리의 취리히 종교개혁에서 다방면에 걸쳐 동역했던 미코니우스를 조명하였다. 특히 두 종교개혁자의 상호 존중과 사랑, 진리 탐구에 나타난 상호 교류와 신뢰 그리고 스위스 독일어권 종교개혁 연구의 지평을 확산시킨 점에 역점을 두었다.
안인섭 박사는 “츠빙글리와 칼빈의 국가론 비교”의 발제를 통해 개혁교회를 출범시켰던 츠빙글리와 종교개혁의 종합적 열매로 평가하는 제네바의 칼빈이 바라본 교회와 국가론을 비교했다. 두 개혁자의 유사점은 모두 인문주의자 출신이며 국가의 역할에 적극적 의미를 부여한 점이다. 개인의 경건한 삶과 시민의 국가에 대한 책임은 분리할 수 없다. 또한 국가는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 위에 서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츠빙글리는 국가에 더 권위를 부여하는 경향을 띤다면 칼빈은 국가로부터 교회가 독립하는 것에 역점을 두고자 했다.
양신혜 박사는 “츠빙글리의 ‘평화’ 이해”를 통해 종교개혁 당시 한 도시공동체 안에서 이념이 다른 형제들과 전쟁을 해야만 했고 전쟁터에서 자신도 처참하게 죽어야 했던 츠빙글리의 글 “발발 가능성이 있는 전쟁의 대비를 권면함”을 분석했다. 전쟁에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취리히 시민에게 츠빙글리는 병사와 지휘관 그리고 부대의 설교자에게 각각 하나님 앞에서 필요한 태도를 권면한다. 전쟁 상황 혹은 전쟁 불안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강민 박사는 “취리히 종교개혁과 아 라스코(John à Lasco, 1499-1560)”에서 피난민들의 개혁자 아 라스코를 소개했다. 엠덴과 런던 피난민들을 위한 개혁자였고 자신도 피난민이었던 아 라스코는 자신을 성경 연구로 이끌어준 츠빙글리를 만난 후 피난민 신앙공동체들의 독립교회를 설립하고 런던 피난민교회의 총괄 감독 사역을 담당했다. 교회 조직과 목회의 실제적 측면에 역점을 둔 아 라스코는 취리히 종교개혁의 ‘프로페시’ 전통 즉 교회 회중 전체가 교리의 합의에 따라 신앙고백을 공유하는 고백 공동체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조용석 박사는 “마르부르크 회담 전후 츠빙글리 편지 연구” 발제에서 마르부르크 종교회담 전후 츠빙글리가 동료 개혁자들에게 보낸 성찬에 대한 견해를 분석했다. 특히 프로테스탄트 진영의 분열을 야기했던 성찬론 논쟁의 맥락에서 동료 개혁자들에게 보낸 츠빙글리의 편지 분석에서 그가 어떻게 성찬에 대한 신학적 견해를 피력했는가에 주목했다. 이로써 로마-가톨릭교회와 명확하게 구별되는 프로테스탄트의 신앙적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칼빈은 성찬론에서 이를 어떻게 계승하는지 다루었다.
서창원 박사는 “기도에 관한 츠빙글리의 가르침”에서 하나님과 소통하는 수단으로서 기도를 강조한 츠빙글리의 성경적 기도관을 소개했다. 츠빙글리의 기도는 예수님의 기도와 닮았다는 점을 주목하면서 철저히 성경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다는 점이다. 주님을 향한 바른 기도란 철저히 찬양과 감사 및 고백적임을 강조하는 츠빙글리는 복음을 전할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이끌어 주시길 간구할 것을 역설했다.
임종구 박사는 “츠빙글리와 칼뱅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베른과 제네바를 중심으로”에서 츠빙글리로 시작해 칼뱅에 의해 완성된 스위스 종교개혁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1531년 츠빙글리의 사후 베른과 제네바를 중심으로 심화한 츠빙글리와 칼뱅의 신학적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집중 조명했다. 이로써 스위스 종교개혁자들이 보여주는 관용과 인내, 연합과 일치를 위한 성숙한 대화와 존중을 강조했다.
유정모 박사는 “하인리히 불링거의 섭리론에 대한 연구”에서 츠빙글리의 종교개혁 후계자 제2차 스위스 신앙고백서 작성자 불링거를 조명했다. 특히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다룬 츠빙글리의 섭리론에 나타난 의미 분석에 역점을 두었다. 전통 개혁주의 입장을 따르는 불링거 섭리론은 츠빙글리와는 달리 제이원인으로서 인간의 원인성을 인정하였고 섭리와 관련하여 수단을 무시하거나 반대로 수단에 너무 많은 것을 돌리는 극단적 견해들을 비판하였다. 무엇보다 불링거는 기독교의 섭리론이 인간의 자유를 파괴하고 하나님을 죄의 조성자로 전락시킨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였다.
편집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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