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문화

 
작성일 : 13-03-22 10:4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여성스러움의 진짜 의미 <웃는 얼굴의 법칙>


여주인공 유미는 일자리를 잃고 면접을 보러 다닌다. 그러던 중 유명 만화가 레이지로의 매니저 자격으로 유즈하라 온천에 몇 개월 묵게 된다. 이 곳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드라마를 꾸려간다. 밝고 명랑한 색채로 굵직굵직한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이다. 
2화에서는 ‘나다움’과 ‘여성스러움’이 충돌한다. 여성스럽다는 것을 ‘보여지는 것’에만 국한시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성스러움에 대한 잘못된 이해들과 관련한 예시들이 나온다. 화장을 하지 않고 다녔던, 복도에서 뛰거나 떠들었던, 지하철 바닥 아무데나 앉아서 음식을 먹었던 모든 등장인물들은 여관 주인아주머니와 반대편에 서 있다. 그들은 아주머니께, 여성스럽지 못하다며 비난을 받는다. 이에 유미는 반발한다. 아주머니의 사고방식은 멋있지만 구식이며 요즘 세대에겐 적합하지 않다고. 그러면서 ‘나다움’을 밀어붙인다. 당신다운 게 무엇이냐는 아주머니의 질문엔 정작 대답하지 못하면서.
여성성과 여성스러움은 좀 다른 의미이지 않을까 싶다. 여주인공의 반발은 그에 대한 오해 때문에 생긴 것 같다. 치마를 입고, 꽃꽂이나 요리를 잘 하고, 고분고분하게 굴고, 수동적으로 반응하며 남자의 그림자 역할을 하는 게 여성스러움이라고. 그래서 자신은 여성스러움에 동의하지 않으며, 나다움을 고수할 거라 말이다.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만화가 레이지로에게 영감(추파)을 주려 도쿄에서 내려온 여직원을 통해 보여준다. 요리를 통해 자신의 여자다움을 어필하려 했던 그녀에게, 아주머니가 일침을 가한다. 일전에도 당신 같은 아가씨가 있었다. 당신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즉, 요리를 이용해 여성스러움을 과시하려는 당신으로 인해 주방의 요리사들이 피해를 본다. 그것은 진정한 여성스러움이 아니다 라고.
그러니까 여성스러움의 중심에는 배려가 놓여있다는 말이다. 진짜 배려는 내가 ‘배려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날 배려하고 있구나’고 느끼는 것이다.
위에서 얘기했던 약속 장소에 화장하고 나가기, 여관 복도에서 조용하기, 지하철에서 공중예절 지키기 이런 것들은 결국 타인에 대한 배려에 앞선 기본 중의 기본이 되는 행위들인 것이다. 주인아주머니는 이것과 여성스러움을 같은 선상에 놓았고.
이렇게 해서 공존할 수 없던 [나다움-여성스러움]에 대한 딜레마를 드라마는 자연스레 해결한다. 결국 여성스러움이란 것은 나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그와 관계 맺은 사람들에게도 최선을 다하는 것. 나의 열심과 상대방의 요구가 맞물리는 지점에 여성스러움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는 것 같다.
이 여성스러움을 교회에 적용하면 ‘건덕’이 된다. 장성한 자는 장성한 자대로, 어린 자는 어린 자대로 노력하는 것이다. 드라마 속에서의 배려가 타인과 집단을 위해서였다면, 우리의 건덕은 성도와 교회를 위한 것이다. 기본을 지키는 것은 그야말로 기본. 나보다 교회를 먼저 생각하는 태도를 갖춘다면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자연스레 많아진다. 나는 가끔, 이 말씀을 어설프게 들어 더 이기적이 되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의 행동 어디에도 성도나 교회를 위한 배려는 없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신다고 당당하게 말하지만, 하나님의 자신을 통해 교회를 허물고 계시다는 무서운 사실은 모르는 듯 했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당연한 대전제이기 때문에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나 싶다. 그 이후에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나는 과연 잘하고 있는지, 그러한 나로 인해 내가 섬기는 교회는 어떠한 영향을 받고 있는지 문득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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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아닌 둘, 둘 아닌 셋이 주는 포근한 위로 <어바웃 어 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