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문화

 
작성일 : 13-02-04 23:4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거지라서 행복해요, <무장원 소걸아>


아찬은 '장군 아버지'라는 든든한 빽을 가진 귀족이었다.
어느 날 기방을 찾은 그는 어여쁜 기생에게 반하게 되었고 그녀가 원하는 남자가 되기 위해 관직에 도전한다.그러나 시험을 치르던 중 부정행위를 저질렀던 사실이 발각되는 바람에 거지의 신분으로 좌천되고 만다. 귀족으로써의 명예, 권력, 재산 뿐 아니라 다시는 무공을 쓸 수 없도록 혈맥까지 다친 그는 눈 앞의 현실을 쉽사리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자신 대신 구걸을 하러 다니던 아버지가 배고픔에 만두를 훔쳐 먹은 죄로 끌려가는 광경을 목격한 아찬은, 아버지를 놓아주겠다는 조건으로 길거리의 개밥을 먹으라는 요구를 받는다.
과거의 영광이 조롱 당하는 것으로 모자라 무릎을 꿇은 채 개밥을 손으로 퍼먹던 그는 개밥의 맛있음에 눈이 번쩍 떠진다. 그렇게 진정한 거지로 다시 태어난 그는 이제 거지'왕'으로 등극하여 자신을 괴롭혔던 황제의 측근을 물리치고 새로운 세력으로써의 입지를 굳힌다.

<무장원 소걸아>는 거지에 대한 편견을 뒤집는 유쾌하고 매력적인 영화다.
'거지라서 불행해요'가 아니라 '거지라서 행복해요'를 이야기한다. 아니 도대체 거지의 어디가, 왜 행복하단 말인가.일단 거지는 자유롭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다.
일상이 산책이고 여행이다.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도 자유롭다. 거지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고로 그에 부응하기 위한 노력 또한 필요하지 않다.
도전도 자유롭다. 실패해도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과감하게 부딪칠 수 있고 같은 이유로 금세 일어설 수 있다.
 
이것은 거지가 거지일 때에야 쥘 수 있는 행복들이다.
아찬은 개밥을 먹던 그 순간 진짜 거지가 되었다.
귀족으로서의 자신, 장군의 아들로서의 자신, 한 때 잘나갔던 자신이 물러가고 그 자리에 초라하지만 새로운 거지로서의 자신이 들어선 것이다.
그리고 그는 거지로써 할 수 있는 최고의 것에 도전한다.
거지왕. 무엇이 필요하냐는 황제의 물음에 필요한 것이 없다 말하는, 정말로 필요한 것이 없는 거지왕.

한계를 받아들이고 분복을 인정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상대적 존재인 인간은 비교하기가 습관이기 때문이다.
'왜 저 자는 귀족인데 나는 거지인가'는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어주지 못한다.
일단 내가 거지임을 긍정하는 것, 그리하여 거지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것을 찾고 '거지 라이프'를 즐기는 것.
즉, '하나님 앞에서의 나'만 생각하면 된다. 나를 거지로 설정하신 데에는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이 있다.
또한 앞으로 살아갈 날들 중에도 거지이기에 느낄 수 있는 사건과 감정들을 구석구석 배치해 놓으셨다.
그저 깡통밥에 던져주는 주먹밥 잘 얻어먹고 배 꺼질 때까지 흥얼흥얼 노닐면 된다.
이 거지의 모습이, 내가 하나님 자녀로서 (대책없는) 평안을 누릴 때와 닮아있단 생각에 얄궂은 미소가 지어진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진짜’라는 하나의 확신,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하나가 아닌 둘, 둘 아닌 셋이 주는 포근한 위로 <어바웃 어 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