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드라마 <고교입시> - ‘정합성’이 주는 아름다움
단연컨대 이 드라마에는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다. 흉기나 비명 혹은 공포를 조장하는 음향효과도 없다. 등장하는 인물은 선생과 학생, 공간은 교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회 시청할 때마다 등골이 오싹하고 간담이 서늘해진다.
이치고교는 지역의 명문이다. 지역민들은 이 학교에 기이하리만치 강한 집착을 갖고 있다. 이치고교 출신이라면 대학을 가지 않거나 일을 하지 않고 빈둥거려도 된다. 이치고교를 나왔기 때문이다. 이치고교를 졸업한 선생들은 모교의 교가가 나올 때마다 벅찬 얼굴로 교가를 따라 부른다. 이치고교 입학에 떨어진 학생 중 몇은 자살을 하기도 한다. 학부모들은 자식을 이치고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마다 않는다. 그런 연유로 매해 고교입시를 치르는 날엔 소리 없는 전쟁이 치러진다.
입시를 하루 앞둔 날,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진다. ‘입시를 망쳐버리겠다’는 대자보가 시험장의 칠판마다 붙여진 것. 학교 내에는 감독인 선생님들뿐이었고 교실의 열쇠도 교무실에 걸려 있었다. 그러나 불길한 징조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입시시험을 예정대로 치르기로 한다.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게시판엔, 입시시험을 치르는 동안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생중계된다. 어떤 문제의 답이 무엇이고, 어떤 선생이 감독을 하는데 그 선생의 과거는 무엇이며, 교실 안의 움직임이 어떠하고, 누구의 학부모가 선생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는 등의 현장-즉 학교 내-에 있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일들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는 것이다.
‘망쳐버리겠다’는 경고대로, 입시는 망쳐진다. 무단으로 소지한 핸드폰이 울리는 바람에 경고를 받은 여학생이 과호흡으로 쓰러지고 그녀를 양호실로 데려가는 와중에 아수라장이 된 교실에서 커닝이 발생하며, 감독관들은 채점을 하다 영어 과목의 백지 답안지를 발견한다. 그 답안지의 주인인 학생은 전 과목 만점자였고, 감독관들은 이미 답안지 개수 확인이 완료되었다는 도장을 찍었기에 그가 항의를 한다면 모든 것에 책임을 져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덫에 걸린 것이다.
드라마는 입시를 망치는 존재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데서 오는 긴장감을 놓지 않으며, 그 존재를 찾아내기 위한 과정을 큰 줄기로 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치고교 출신들의 엘리트 의식과 허영, 거기 속하지 못한 자들의 패배감과 자괴감, 누군가에겐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시험의 채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무책임한 태도, 그로 인해 피해를 본 자의 분노와 한, 너무나 자연스러운 연인관계라 눈치 채지 못했던 선생과 제자의 원조교제, 자신의 아이를 나아가 규칙과 질서를 망가뜨리는 치맛바람, 일류고교를 지망한 탓에 왕따가 되었거나 스스로 왕따를 자처하는 아이들, 입시와 관련한 다큐를 찍고 악플에 시달려 세상과 단절한 자의 상처…
하나하나 그 무게가 묵직한 주제들을 자연스럽게 버무려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낸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지나치지도 않고, 어설프거나 빈틈을 보이지도 않는다. 아귀가 맞는 톱니바퀴가 잘 돌아가는 듯 하다.
그래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유한 캐릭터들이 지닌 생명력과 설득력, 회 차 별로 이야기 하는 사건의 균형 그리하여 하나의 드라마를 탄생시킨 완성도까지. 치밀하고 논리적인 구조와 연구가 이 드라마의 정합성을 구현해냈다.
결국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정합성에서 나오는 것 같다. 슬픔을 전달하기 위해 눈물 흘리는 장면만 주구장창 보여준다면 공감을 못할 것이다. 왜 슬픈지, 이 슬픔이 어떤 설득력을 가지는지를 분석한 후 완벽한 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은, ‘진리’의 텍스트와 닮아있다.
그래서 성경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구약의 인물들은 모두 ‘언약’이라는 꼭지점을 향해 움직인다. 신과 대비된, 나약하고 사악한 존재로서의 본성을 일관되게 갖고 있고 그 와중에도 다양한 캐릭터를 구사하며 삼대 언약의 큰 맥에 따른 여러 종류의 사건 사고를 만들어낸다. 신약의 첫 인물 그리스도는 구약의 ‘언약’이라는 바통을 이어받아 ‘성취’의 구조의 포문을 열며 교회의 성장을 통해 마지막까지 힘 있게 성취의 완결점을 찍는다.
또한 각 권이 각각의 주제를 가지고 있다. 아무 주제나 떼어도 큰 주제와 연결이 되며, 처음-중간-끝을 이어도 논리상의 어그러짐이 없다. 각 권 안에서도 고유의 구조와 맥을 갖고 있다. 결코 주제에서 벗어남이 없는 것이다.
즉, 성경은 신이 구현해낸 가장 완벽한 정합 그 자체이다.
동시에 지구상의 가장 아름다운, 오래된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신은 이 거대한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멋없게 스리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비유와 상징을 이용해, 베일 속에 꽁꽁 숨겨놓았다. 어디 찾을 테면 찾아보라는 듯 얄궂게. 그 비밀을 풀 수 있는 자들은 오직, 그가 영원 안에서 뿌려놓은 사랑의 씨앗들뿐이다.
다행히 결정적인 힌트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조리 확보한 우리는, 성경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다른 자들과 달리 매우 유리한 입장에 있다. 이제는 힌트를 조합해서 근사한 답을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면 신은 왜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에게 그 힌트를 다 주었을까?
해답은 간단하다.
우리가 당신의 존재를 알고, 그것을 증명해내길 원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