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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신학 탐방을 통해 본 향후 전망과 대비
북미 신학탐방 후기(3)
이번 북미 신학 탐방은 서구 개혁신학자들과의 직접적 접촉을 통한 성경신학적 진리의 우월한 가치 확인, 평상시 해외 성도들과의 긴밀한 교류를 통한 신령한 교회의 소중함을 확인하는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이런 의의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새로운 전망을 가지게 된다. 즉 전 세계를 바라보는 글로벌 상황 속에서의 복음전파의 필연성이 확고해 진 것이다. 말하자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인터넷 복음전파의 중요성, 지역교회를 넘어서는 신령한 교회관의 확립, 서구 신학계와 교회로의 역선교의 가능성, 아시아시대의 준비 등이 향후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이는 오래전부터 말씀을 사랑하는 말씀운동 산하 성도들의 세계를 품는 복음전파의 염원과 소망이 담겨있다. 이번 의미를 통해 볼 때 아래와 같은 새로운 향후 전망과 그에 비추어본 대비가 필요불가결 할 것이다.
이른바 “글로벌 교회시대”가 우리의 눈앞에 봉착해있다.
서구신학계와 교회로의 역선교의 가능성이 있다.
하나님은 아시아시대를 여시면서 한국 그것도 특별히 성경신학을 사랑하는 성도들을 마음에 품고 계신다.
1. 신학상황의 글로벌화
인터넷의 발달, 교통수단의 발달, 그리고 세계어가 되어버린 영어의 확산 등이 과거 신학교육 상황의 국지성을 벗어나고 있다. 이른바 신학상황의 글로벌화 현상이다. 그래서 과거 특정 지역에서 이루어지던 국지적인 신학교육은 시대착오적이다.
인터넷 강좌를 통해 한 지역에서의 신학교육이 동시간대에 전세계로 실어나르게 되는 시대가 되었다. 이미 미국의 유수한 대학의 강의가 인터넷을 통해 세계 각지로 전달되고 있다. 바야흐로 이제는 신학적 지식의 전 세계적 공유가 거의 동시간대에 이루어질 수 있는 글로벌 상황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대비하고 준비해야 하는가? 이미 성경신학의 구조적 골격은 완성되었고, 그 세부내용도 치밀하게 구성되고 있다. 이제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게 될 차세대를 바라보며, 전 세계로의 복음 전파를 위해서 적어도 두 가지를 분명하게 준비할 이유가 있다. 첫째는 영어 및 중국어 등의 외국어 번역사업의 적극적인 추진이다. 한국어로 된 성경신학의 결실은 한국 내에서만 통용된다. 한국은 성경신학의 모판일 뿐 성경신학의 무대는 전 세계이다. 이점에서 번역 사업은 화급하고도 중차대한 사업이다.
둘째, 영어를 통한 인터넷 사이버 대학의 준비이다. 이런 준비를 위해서 영어 성경공부, 영어 신학 주제 발표와 토론회 등을 개설하여 영어가 가능한 인재를 격려, 육성하고 향후 영어를 통한 복음 전파 사명의 준비를 충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분명히 해 둘 사항이 있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병적 영어 열풍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건전한 영어교육의 전제는 모국어인 한국어의 숙련이다. 인간의 근본적인 사유는 모국어를 통해서이다. 모국어를 통한 성경신학적 사유와 깊이가 배제된 영어는 무의미하다.
이제 멀지 않아 아시아권의 복음전도자들이 성경신학을 배우게 될 것이다. 필리핀, 인도, 싱가폴은 이미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중국이나 미얀마, 베트남 등지의 신학생들이 한국, 필리핀에 유학을 와 영어로 신학을 배우고 있다. 이 현상은 이미 시작되었고 앞으로 더욱 가속화 될 것이다. 이제 상이한 피부빛과 인종을 넘어 그리스도 안에서의 한 지체로서 진리를 나눌 마음의 대비가 필요하다. 이른바 글로벌 교회시대가 우리의 눈앞에 봉착해있다.
2. 서구 개혁신학자들과의 적극적 교류와 역선교의 가능성
서구교회는 이천 년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이 땅위에 교회의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하여 왔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고 있다. 이는 엄청난 세계사의 변혁을 의미한다. 서구 신학계의 위기의식의 확산, 서구 교회의 침체와 몰락현상, 한국교회와의 교류에 대한 기대감이 증대하고 있다. 미국의 중요한 보수신학교에는 한국 신학생들로 가득 차 있다. 여기에 한국교회, 특별히 말씀운동교회의 사명이 있다.
서구신학계는 성경의 영감과 무오를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에 오래 동안 시달려왔다. 보수신학은 이제 고사상태에 빠져있다. 아직은 소수의 개혁신학자들이 살아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신학 작업은 과거 교리적 틀을 크게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최근 복음주의권내에서 “전체성경 성경신학”(Whole Bible Biblical Theology)이라는 화두를 던지며 파편적 성경이해를 넘어서 ‘성경전체를 통한 하나님 이해’를 일각에서 추구하고는 있지만 성경의 논리적-구조적인 틀과 주제를 잡아내는 데는 전혀 미치고 있지 못하다.
이런 상황이 한국에서의 성경신학 출현의 배경이다. 이제 서구교회로부터 받은 사랑의 빚을 갚을 때가 왔다. 적어도 성경의 절대 권위를 받아들이는 복음주의적 신학계와 교회는 우리들의 적이 아니다. 그들은 이 땅위에 비진리의 도전을 막아내고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건설해갈 우군들이며 동역자들이다. 앞으로 그들과 교류하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신학적인 진리를 전해주고자하는 소망이 생긴 것이다.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들이기에 성경진리를 사모한다. 그리고 성경진리의 전모를 알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 토론회를 통해 역력히 드러났다. 여기에 서구신학계와 교회로의 역선교의 가능성이 있다.
이와는 다른 측면에서 교류의 필요성이 있다. 이번 신학토론회에서 그들이 보여준 학문적 정직성, 개방적인 태도, 상대에 대한 존중, 이해되지 않을 때 즉각 던지는 예리한 질문, 유쾌하고도 사심없는 칭찬과 격려가 있는 토론 분위기 등은 우리가 배워야할 소중한 덕목들이다. 그들은 동양의 한 무명의 신학자가 던진 주제에 대해 이전에 자신이 몰랐다고 정직하게 반응했고, 많이 배웠다고 인정할 줄 아는 신앙인격적인 여유가 있었다. 그들은 오랜 세월 기독교적 전통에서 담금질 된 좋은 인격화된 유산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선한 일에 생색내지 않고 기부할 줄 아는 깨끗한 태도, 상대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는 존중심, 상대의 주장을 들을 줄 아는 개방성 등은 그들의 몸에 배어있다.
이점에서 우리는 그들과 깊이 교류하고 서로 배워갈 이유가 분명히 있다. 우리는 신앙적 토론에 몹시도 서투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는데 매우 인색하다. 차분한 논리적인 토론보다는 감정이 앞선다. 나와 의견이 다르면 적대시하거나 관계 자체를 단절한다. 이는 미숙의 징후들이다. 성경의 절대적인 진리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를 지녀야한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실제적인 일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을 경청하고 조율해가는 인내심과 지혜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 데 필요불가결하다.
3.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동역자들과의 긴밀한 교제의 확대
이번 북미 신학 탐방과 결실은 오래전부터 준비된 동역자 들과의 접촉과 합력에 의한 하나님의 작품이었다.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가는 일은 집 짓는 것과 동일하다. 그리스도가 건물의 머리돌이 되시고, 하나님께서 건물의 재목을 불러 모으신다. 각 재목들이 서로 어거하면서 견고한 성전이 지어지듯이 진리 안에 뜻을 같이 하는 동역자 없이 하나님의 나라 건설은 불가능하다.
이번에 만난 성도들은 다양한 배경과 동기에서 해외로 건너가 현지에서 뿌리를 내리고 말씀을 듣고 있었다. 이미 오래전 캐나다로 건너가 이민의 삶을 통해 단련된 성도들, 구속사적 차원에서 복음을 전파하다가 절망적 상황에서 들려온 성경신학적 진리를 통해 새로운 비전을 갖게 된 성도 가정, 이미 말씀을 듣고 미국으로 건너가 유학 생활 중인 형제, 말씀을 들은 부모님 밑에 태어나고 자라난 한국인 2세, 여러해 전 일본에서 뿌리를 내리고 일본 동경교회를 섬기는 지체들 등이다. 누가 이들을 말씀 안으로 인도하고 있는가.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모두 글로벌 상황하에서의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현지 동역자 들이며 앞으로 전 세계를 하나로 묶어낼 말씀운동의 역군들이 될 것이다. 이런 말씀 안에서의 지체들이 세계도처에 이미 포진되어 있고 앞으로 연결되어 갈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보면 성도의 교제 차원이 지역교회에 머물러 있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확대된다. 더욱이 최근 인터넷, 스마트폰, 페이스북 등을 통한 교제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해외 성도들과의 교제를 원활하게 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차세대의 성도 교제는 지역교회 안의 면대면 교제의 차원을 넘어 설 것이다. 민족과 민족의 경계가 허물어질 것이며, 모든 족속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이라는 성경의 말씀대로 모든 족속에게로 복음이 전파되는 생생한 현장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이제는 이전의 사고방식을 훨씬 넘어서는 새로운 전망과 대비가 필요하다. 즉 지역교회 내에 눈에 보이는 성도들만을 교회성도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이미 함께 진리를 공유하는 전 세계 여러 지역의 성도들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즉 지체로서 혹은 동역자로서 간주하는 신령한 의식이 필요불가결하다. 성경이 가르치는 만물위에 있는 신령한 교회(엡1: 22), 그것은 지역교회를 훨씬 넘어선다. 이천 년 전 사도바울의 시대에도 이미 지역의 경계를 넘어 바울은 옥중에서 먼 지역의 성도들, 예컨대 에베소와 빌립보 성도들, 심지어는 얼굴도 모르는 골로새 성도들과 복음안의 긴밀한 교제를 하지 않았던가!
4. 아시아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
서구신학계와의 교류와 유대는 앞으로 아시아 시대를 향한 초석이다. 말씀운동이 한국에서 출현한 것은 역사적 우연이 결코 아니다. 한국은 여러모로 서구와 아시아시대를 통합적인 차원에서 연결하고 앞으로 아시아 시대를 견인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한류의 확대, 가수 싸이의 종횡무진 등은 예사롭지 않는 징후들이다. 무엇보다 성경신학의 출현은 그 뚜렷한 증거이다.
명실상부하게 하나님께서 아시아시대를 열고 있다. 중국의 거대한 변신과 지하교회의 용틀임, 침체국면 속에서도 아직은 저력 있는 일본, 한국 경제와 한류를 포함하는 문화의 힘, 싱가폴, 대만, 베트남, 인도네시아의 경제적 약진, 영어가 가능한 필리핀 성도의 전세계 디아스포라 현상, 미얀마의 정치적 개방, 인도의 엄청난 잠재력, 혹독한 시련 중에 있는 북한 지하교회의 소식 등은 아시아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복음은 이런 배경 속에서 아시아 국가를 향해 전파되어 갈 것이다.
복음 전파는 하나님의 언약성취의 역사를 따라 행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이되 언제나 영혼을 사랑하는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 아낌없는 대가지불과 숨은 헌신을 통해 이루어진다.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복음전파의 경로는 우리들에게 이를 잘 보여준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함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이다. 전능자 하나님은 당신 홀로 아시아 일대를 복음화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의 사랑의 수고를 통해서 복음을 전파하게 하신다. 그때라야 우리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깊이 있게 배울 수 있으며, 진리 안에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시아시대를 여시면서 한국 그것도 특별히 성경신학을 사랑하는 성도들을 마음에 품고 계신다. 그의 뜻을 심도있게 배우고 순종하는 신실한 종들을 하나님께서 세워가실 것이다.
김규욱 주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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