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지교회를 다녀와서
식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딸에게 일본 선교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엄마가 선교차 이번 동경사경회에 가고 싶은데 네가 후원 회원이 되어서 비용을 준비해 주면 어떻겠니?”하고 물으니, 딸이 “알았어” 한다. 든든한 후원자를 확보한 나는 딸에게 고마움과 함께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동경 지체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벌써부터 동경에 가 있는 듯 설레었다. 항공사에 예약하기 위하여 동행하기로 한 성도님들에게 연락을 하던 중 몇 분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취소하게 되면서 다시 점검에 나섰다. 분주한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은 마음이 안 좋은 듯 말을 던진다. “당신은 언제 일본 간다고 나한테 이야기 했어?” “저녁 식사 때 당신도 들었는 줄 알았는데?” 하니 남편은 기분이 안 좋은 표정이다. 그러고 보니 먼저 남편과 상의가 없었던 게 잘못임을 깨닫고 남편한테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어느 날 내게 어려운 일이 닥쳤다. 아들은 축구하다 발을 삐어 깁스를 , 남편은 목을 다쳐 목 디스크로……. 설상가상 일본 갈 인원은 여섯 분에서 세 분으로 줄어들고 갈 수도 안 갈 수도 없는 기로에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기도를 하며...
공항으로 출발하는 26일 아침에 떠나오면서 미안한 마음에 남편에게 나는 편지를 써놓고 왔다. “미안하고, 감사하고요. 당신 폰에 ‘착한 여보’로 되어 있는 내가 착한 아내가 아니고 고집도 세고 당신과 의논 못한 것 미안? ……. 다음부터는 꼭 의논할게요. 우리 딸이 후원금 많이 주었네요.” 하며 편지 봉투 안에 신사임당 2장을 살며시 넣어두고 ‘사랑합니다. -당신의 짝꿍이-’ 한결 마음이 편하다.
일본은 도착하는데 2시간 밖에 안 걸리는 지근(至近)거리의 나라였다. 작년에 왔었기 때문인지 도시가 낯설지 않았다. 집회소(동경 지교회)를 우리 집사님들에게 안내하고 송대성 장로님 댁으로 방문해 보니 권사님, 집사님, 아이들까지 모여 있었다. 작년에 비해 아이들도 많이 커 있었고, 엄마 곁을 떠나 잘 놀아준다. 저녁 시간은 잠시 워밍업 시간으로 한국에서 처음 온 두 분 집사님을 소개하고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성경신학을 통해서 말씀운동에 접하게 된 계기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각자의 삶을 인도해 오신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리얼하게 펼쳐졌다. 듣고 보니 집집마다 대문 열면 걱정이 많은 듯 살아온 과정들이 만만치 않았다.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청년의 이야기도 들었다. 한국에서 막 살아온 인생이 지금의 자신을 많이 변하게 했다며 여자 친구도 알게 되어서 결혼까지 하게 된다는 이야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게 개개인의 인생을 주관해주시고 계신다는 것. 일본 지체들도 작년에 비해 말씀으로 많이 성숙해진 모습이다.
일본의 황금연휴로 아메요코 시장은 발 디딜 틈이 없이 북새통이다. 외곽으로 나와 호숫가에서 차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며 추억의 사진도 담았다. 잠시 한국 물건 파는 시장 거리를 둘러보니 한국 시장에 온 것처럼 먹을거리가 많았다. 초밥이 유명하다는 곳에서 즉시 만들어 주는 맛도 즐겼다. 바쁘게 돌아오는 여정 속에서도 우리는 끝없는 대화 속에 죄성이 드러나서 깔깔대며 우리 죄를 후지산에 버리고 가자는 어느 집사님의 말.
집회소(동경 지교회)에 들어오니 모두 잠잠한 정적 속에 무언가 있는 듯? 일본에 복음을 전파한 집사님이 갑자기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들 침묵 속에... 그분을 추모하며 잠시 예배를 드렸다. ‘전도서’를 목사님이 읽어 주셨고, ‘해 아래서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며 위로부터 내려오는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가 사는 길’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하셨다. 일본 동경 지교회는 송 장로님과 안 권사님께서 품어주는 아름다운 교회였다. 일본 동경지교회가 진리 위에 체제가 더욱 견고케 세워져 가기를 하나님께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