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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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5-27 20:1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종교개혁 유적지 탐사기<1>


하나님의 위대한 영광을 보는 일
역사에 대한 신학적 관점은 모든 인간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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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글

  역사 유적지 탐사는 언제나 가슴 뛰는 일이지만 이번 탐사는 더욱 그러했다. 세계사의 지축을 뒤흔든 역사적 사건, 거짓과 허구로 가득찬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의 단단한 껍질을 부수고 성경이 가르치는 기독교로의 회복을 감행했던 16세기 종교개혁, 그 역사적 현장을 돌아본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16세기 종교개혁, 그 본질적 의미와 시사점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나님은 어떤 배경을 섭리하셔서 종교개혁을 일으키게 하셨는가? 기독교 역사를 새롭게 쓴 종교개혁의 핵심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오늘날 개신교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이제 500년이 지나면서 종교개혁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가? 이제 성경이 가르치는 전체 원리로서의 언약성취사적 성경신학이 드러난 지금 종교개혁은 어떻게 극복되어야 하는가?

  머릿속에는 이런 생생한 질문들로 가득차 있었다. 중요한 사실은 이런 질문들은 일반적으로 가질 수 있지만 그 해답을 얻고자하는 방향과 틀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역사 해석이 그러하지만, 역사는 보는 사람의 관점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역사는 전혀 다른 의미로 투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해석은 해석자의 관점에 의해 새롭게 쓰여진다. 이 탐사 보고서 역시 필자가 지니고 있는 신학적 관점을 에누리 없이 반영한다. 

 필자가 지닌 역사에 대한 신학적 관점은 모든 인간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일”이다. 현상적으로 보아 역사는 지극히 우연적 사건의 조합이되 그 진행과정에는 그때 그때 마다의 인간적 결단의 연속으로 보인다. 인간이 어느 시점에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도무지 인간의 의도와는 상관없다. 그것을 인본주의역사에서는 우연의 일로 간주한다. 구체적인 역사의 진행에 인간들의 의지적인 판단과 결단의 요소가 보이는 듯하다. 삼엄했던 보름스 재판정에서 루터의 단호한 결단이 종교개혁의 진행에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런 역사이해는 참으로 역사의 깊이를 제대로 보지 못한 판단의 오류이다. 그 모든 일의 배후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이 깔려있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머리털 하나도 하나님은 세신바 되시고,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다고 한다.(마10:29~30). 하나님은 참새와는 비교할 바 없이 귀한 언약백성을 역사의 중심에 두시고 그의 영원한 사랑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요셉을 애굽에 팔아 넘긴 것은 현상적으로 보아 형들이 한 일이지만 요셉의 역사해석은 차원이 달랐다. 그 일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이 행하신 은혜로우심의 계시로 고백하고 있다.

  이처럼 성경에 입각한 역사 이해는 인간을 역사의 주체로 놓는 인본주의적인 역사이해와는 전혀 다르다. 역사는 인간들의 결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정하심과 그에 근거하는 언약대로 성취되어가는 일이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의 위대하신 속성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역사를 통해 이런 하나님의 주권적인 영광을 볼 때라야 인생의 올바른 자리매김이 이루어질 것이다. 더 나아가 모든 역사에는 그것이 고통의 역사이든 형통의 역사이든 그 안에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뜻이 담겨있음을 알 때 언약 백성은 치열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런 역사관을 가지고 종교개혁의 역사유적지를 해석하고자 한다. 

2. 탐사 순서
 
  이번 탐사는 순서상 절묘한 조합의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 그리고 프랑스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즉 종교개혁사의 배경이 되는 중세 타락의 현장인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을 보고난 후, 북쪽으로 올라가 피렌체와 밀라노를 봄으로써 르네상스 영향아래 세워진 중세 성당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중세의 어둡고 거짓된 실상을 본 후에 성경의 진리성을 드러내고자 치열했던 16세기 종교개혁의 역사 현장으로 진행되었다.

  참으로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은 중세 신학과 교회의 타락과 허구를 웅변적으로 증명이라도 하듯이 버젓이 서 있었다. 성경의 순수한 진리에서 벗어나면 인간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가증된 일을 할수 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로마를 탐사한 후 북쪽 르네상스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는 피렌체와 밀라노로 올라갔다.  르네상스 역시 종교개혁의 중요한 배경이다. 르네상스의 영향아래 세워진 성당들은 참으로 사치스럽고 화려한 성당들이었다.

  밀라노를 거쳐 종교개혁의 진원지인 스위스 제네바로 갔었다. 칼빈이 활동했던 제네바도시는 참으로 깨끗한 도시였다. 아직도 남아있는 정직과 근면성, 그리고 자기 직업에 대한 철저함들은 종교개혁의 정신적 유산으로 남아있었다. 제네바를 보고난 뒤, 개혁자 츠빙글리가 활동한 취리히로 갔다.
 
  취리히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국경을 건너 독일 하이델베르그로 들어가서 일박을 하고난 뒤 루터가 재판을 받은 장소였던 역사적인 자리인 보름스로 가서 그 현장을 둘러보았다. 아쉽게도 거리상 루터가 95조항을 내걸고 개혁의 불길을 당겼던 비텐베르그 성당이 있는 곳은 둘러보지 못한 채 마지막 프랑스로 향했다.

  프랑스에서 에펠탑과 개선문을 돌아본 후 세계 최대의 박물관인 루브르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구라파 예술의 역사를 한눈에 볼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예술의 역사는 그 시대 신학과 사상의 흐름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인간 권력의 허탄한 허영과 오만으로 가득찬 베르사이유 궁전을 돌아보면서 인간이 하나님을 잃어버려 자기영광에 도취될 때 얼마나 내면이 초라해짐을 생생하게 볼수 있었다.

  거짓과 비진리의 상징인 성베드로 성당으로부터 출발하여 성경 진리와 영혼의 자유함을 추구했던 복되고도 치열했던 종교개혁의 현장, 그리고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에게 주어진 권력의 무상과 허무함의 실상을 두 눈을 통해 생생하게 볼 수 있었던 탐사였다. 아! 역사현장에서  성령의 인도아래 하나님의 주권적 영광을 볼 수 있고 누릴 수 있음은 참으로 이 시대 하나님이 베푸시는 크신 은혜임을 탐사 내내 확인할 수 있었다.

<제네바대학 학자들에게 제기한 칼/빈/관/련/질/문/요/지>

〈1권〉
①종교의 씨앗(종교성)에 대하여
칼빈은 타락한 자들에게도 종교성이 잔존해 있기 때문에 불신의 책임을 전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종교성은 구원의 효능이 없기 때문에 구원 받을 수는 없으나, 불신의 책임만은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책임을 담당해한다면 양자의 기능을 보유해야 할 것이다. 즉, 취사선택의 두 가지 기능이 공존할 때라야 양자에 대한 책임을 운운할 수 있지 않겠는가?

② 성경의 신빙성에 대하여
칼빈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진리인 것에 대해서 성경자체의 논리로 자증된다고 주장한다.성경의 자증적인 논리체계는 무엇인가?

〈2권〉
①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하여
칼빈은 타락한 인간의 지유의지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반대하지만, 단, 타락 이전의 아담에게는 자유의지가 존재했었다고 주장한다. 아담에게 자유의지가 있었다면,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는 서로 상충된 반대의 개념인데, 어떻게 존립할 수 있는가?

② 율법에 대하여
칼빈은 율법을 국가법(사회), 의식법(종교), 도덕법으로 분류했으며, 국가법과 의식법은 그리스도로 성취되었으나 도덕법은 성도생활의 규범으로 지속성을 갖고 유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구약의 율법은 계명, 규례, 율례, 법도로 구분되어 있으며 그리스도의 율법관은 포괄적으로는 구약전체를 함의하고, 직접적으로 모세오경을 지칭하며, 아울러 예수께서 구약의 율법을 성취하신 것은(마5:17) 율법 전체를 성취하신 것이지 도덕법은 남겨두고 사역하신 것이 아니지 않는가?

〈3권〉
①예정에 관하여
칼빈은 예정의 기초를 하나님의 뜻에 둔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 이전에 어떤 원인도 있을 수 없 없으며, 더욱이 하나님의 뜻은 어떤 원인에게도 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주권으로 하나님께서 섭리하셔야 타당성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유기에 대해서만은 인간의 타락에(자유의지) 의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조치라고 말한다.칼빈의 ‘예정’에 대한 전택설적인 주장에는 공감하지만, 유기에 대한 설명은 논리적으로 모순이 있어 보인다. 만약, 하나님의 뜻은 어떤 원인에도 영향을 받을 수 없다면, 그 뜻의 집행은 당연히 하나님의 계획과 의지 그리고 독자적인 주권에 의해서 실행되어져한다. 그런데 유기에 대해서만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타락을 원인으로 거론한다면 논리상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다.

②하나님의 예정과 사랑의 속성에 대하여
독일 신학자 바르트는 칼빈의 이중예정설을 반대하는데, 이유인즉, 하나님은 사랑의 속성을 지니셨기 때문에 어떤 원인도 없이 인간을 버리지 않으시며 모든 인간을 전부 선택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견해는 어떠하신지?

〈4권〉
①로마 가톨릭교회는 교회가 아니라는 칼빈의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②로마 교황은 ‘적 그리스도’라는 칼빈의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③현재 유럽교회의 쇠퇴원인과 대안은 무엇인가?

김규욱 목사/본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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