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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역사 유적지 탐사기<2>
종교개혁의 배경으로서의 로마-어둠과 비진리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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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언
“16세기 종교개혁은 중세의 어둠을 배경으로 하여 태동된 진리운동이었다”
종교개혁의 유적지를 찾아가는 이번 탐사는 절묘한 방식으로 코스가 잡혔다. 그것은 종교개혁의 현장을 찾기에 앞서 먼저 로마를 탐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빛의 빛됨의 가치가 짙은 어둠의 상황에서 더욱 드러나듯이 16세기 종교개혁이라는 하나님의 복되고도 놀라운 진리운동은 아무런 배경없이 생겨난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가운데 중세의 어둠을 배경으로 하여 태동된 진리운동이었다.
로마와 그 주변에 산재해 있었던 중세 교회의 현장은 참으로 비진리의 현장이었다. 참담하리만큼 위선적이며, 우상숭배적인 냄새가 진동했었다.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진리는 사라지고 인간 교황권위의 허구, 수많은 인원의 고통과 막대한 물질이 동원되어 지어진 껍데기 건물의 화려함만이 지금도 남아있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거짓의 상징이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온 우주를 지금도 통치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신데, 감히 그런 하나님 자리의 권위를 넘보는 오만, 무지한 백성들로부터 온갖 찬양과 숭배를 받는 허구의 자리, 그것이 성베드로 성당이며, 밀라노 두오모 성당이었다. 그 엄청난 크기와 규모로 500여년전에 그 같은 건물을 지을수 있다니! 그것은 비진리의 힘도 현실에서는 가공할만큼 작동될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진리의 참된 힘의 가치를 더욱 역설적으로 느끼고 확증할수 있는 탐사였다.
5월 10일 월
오후 두시에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출발했다. 현지시간 저녁 여섯시에 도착했다. 장장 열한시간 만에 도착하여 비행기장에서 다시 약 세시간을 기다렸다가 거의 파김치가 되어 아홉시에 로마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로마까지는 두시간이 걸려 밤 11시에 도착했다. 첫날 탐사부터 보통 강행군이 아니었다.
성베드로 성당에서
그 다음날 아침 일어나 최초 탐사지인 성베드로 성당으로 향했다. 지난번 탐사시에도 한번 방문을 했지만 이번에는 좀더 자세히 관찰하고 확인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에도 그랬듯이 성베드로 성당은 여전히 세계 각국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발디딜 틈이 없이 붐볐다.
엄청난 건물의 위용, 수많은 미술작품들의 소장은 과연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 들일만한 흡인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탐사팀들의 관심은 다른 차원에 있었다. 그 토록 찬사를 아끼지 않는 세계적인 화가들의 그림과 조각품속에 담겨있는 정신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들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가치는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그들이 믿는 신앙의 내용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이런 질문들이 뇌리를 맴돌았다.
수많은 예술품이 소장되어 있는 긴 바티칸 박물관의 통로를 지나서 그 유명한 시스틴 소 예배당(the Sistine Chapel) 에 당도했다. 솔로몬 성전과 동일한 규격으로 만든 예배당이라고 한다.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었다. 이미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 구약 솔로몬 성전을 재현하는 작태를 행하다니. 그것이야 말로 복음을 가리우는 행위가 아니던가. 구약 솔로몬 성전의 영광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그리고 그의 부활사건으로 온전히 성취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 솔로몬 성전 건물을 신약 시대에 다시 재현하고자 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천장에는 당대 최고의 화가인 미켈란젤로의 벽화가 웅장한 자태로 그려져 있었다. 천장은 천지창조, 모세의 그림, 그리고 예수님의 그림 그리고 최후 심판으로 되어 있었다. 최후 심판이라는 벽화는 철두 철미 가톨릭 신학 사상이 반영되어 있었다.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이라는 구도로 되어 있었다. 완전히 비성경적인 사상을 담고 있었다.
당대의 화가들은 자신의 생각대로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모든 그림들은 철두철미 교황성의 검열과 통제에 의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아! 참으로 부자유와 억압의 시대였다. 예술가의 혼이 거짓 종교 사상에 의해 철저히 지배당하고 있었던 암울한 시대였다. 우리는 믿음의 자유가 어떠한 것임을 이른바 세계적인 작품이라고 불리워지는 그림들앞에서 전율하듯 느낄 수 있었다.
참된 예술이란 사상의 자유함 속에서 하나님을 하나님 답게 찬양하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삶의 소박이 아니던가! 아무리 휘황찬란해 보여도 그의 작품세계가 어떤 자의 사상 검열속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예술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조작이요, 기술일 뿐이다. 우리는 그런 조작되고 통제되는 작품속에서 참된 영혼의 자유를 볼 수가 없었다.
시스틴 소예배당을 지나서 성베드로 성당을 향했다. 지난번에 한번 방문한 터이라 미리 그 규모의 엄청남과 현란성을 미리 함께한 탐사팀에게 일러주었다. 다시 보아도 그 당대에 이토록 큰 규모로 지어진 으리으리한 대리석 건물은 경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성당 내부에 정교하고도 찬란한 방식으로 조각해 놓은 예술품들이 즐비했다. 당대최고의 예술가였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와 같은 예술가들의 조각품들이 소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세계적인 예술 작품이 품고 있는 사상들은 너무도 우상 숭배적이었다. 인간 교황들의 조각상, 신전을 방불하게 하는 현혹적이고 위압적인 치장들, 어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상을 고혹적으로 드러냄으로 예수보다 마리아를 부각시키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조각 등은 참으로 성경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었다. 인간들의 그릇된 종교성과 권력이 만나면 이렇게도 허구적인 결과를 빚어내는 것이었다. 수많은 관광객들의 눈을 끌면서 지금도 미사가 행해지는 그곳에는 참된 기독교진리의 자유와 소박성은 찾을 수 없었다.
아! 참으로 복음은 무엇이며 복음이 가져다주는 진정한 자유는 무엇인가? 나는 찬란한 성베드로 성당의 위용을 보면서 묻고 또 물었다. 마음으로 생각했다. 내적 진리의 깨달음이 없는 외적 형상들, 그것은 허구였다. 하나님을 진지하게 알아가는 진정한 인간의 영적 성장이 없다면 엄청난 외형 앞에 감동할 이유가 없는 사실을 곱씹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제는 이산에서도 저산에서도 예배가 드리워지는 것이 아니라 신령과 진리로만 참 예배가 드리워진다는 사실! 복음 진리안에서라야 살아계시고 위대하신 분, 그리고 우리의 영혼을 한량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깨닫고 감사하게 되는 영적 예배가 이루어 질 것이다. 그 예배는 웅장한 허구적 건물안에서가 아니라 우리 몸을 성전삼으시는 성령의 인도가 있는 모든 삶의 현장에서 소박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이 시장 바닥일수도 있고, 가정일수도 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의 경우처럼 옥중일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진정한 영적 성장이 없다면 엄청난 외형 앞에 감동할 이유가 없었다”
정리
종교개혁의 배경이 되었던 중세 가톨릭 사상의 실현태인 성베드로 성당은 참으로 그렇게 서 있었다. 루터는 성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해 면죄부를 돌렸던 그 시대에 절규했다. 그것은 아니다! 라고. 진리안에 예와 아니요를 말하며 살라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리의 깨달음을 주신다.
16세기 종교개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사도행전 17장 바울의 증언대로 하나님은 인간의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한 것 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다. 오히려 생명과 호흡을 우리 인간에게 주시면서 온 우주만물을 지금도 주관하시는 살아계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그안에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참으로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다. 종교개혁자들은 중세의 허구적인 건물, 인간 교황의 권위안에 갇혀있는 기독교로부터 역사와 우주를 주관하시는 참된 절대주권자 하나님께로 시선을 돌렸다. 중세의 어둠을 깨는 역사의 혁명은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 진리를 발견하면서부터 그렇게 시작되었다.
김규욱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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