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조(列祖) 이전 시대의 역사(下)
구약 배경사 산책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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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0장에서 함의 둘째 아들로 등장하는 미스라임(Mizraim)은 이집트의 히브리식 명칭이기도 하다. 함의 자손이 이주한 이 땅은 열조의 왕래 자취뿐 아니라 요셉의 총리 등극과 400여 년 히브리 민족의 연단기, 하트셉수트(Hat-shepsut)의 양자로 길러졌던 모세의 청장년 시절, 인간적 계획을 의지했던 우매한 이들의 피신처, 72인에 의해 구약성서가 헬라어로 번역된 역사적 장소에 이르기까지 구약 시대 진행의 중요한 배경을 이루었던 지역이다. 개방적 지형의 메소포타미아와 확연히 구분되는, 북쪽과 동쪽의 바다 및 서쪽의 사막에 둘러싸인 막다른 골목의 폐쇄적 지세는 고대 문명 가운데 가장 오랜 지속성(B.C. 3100~ B.C. 331)을 갖게 하였다.
예측할 수 없는 범람으로 불안정한 사회였기에 법률이 발달했던 현세적 메소포타미아와는 달리, 우기(雨期)에 맞추어 정기적 홍수를 일으키고 상류의 비옥토를 실어다 준 나일 강의 선물로 인해 이집트는 타 지역의 기근과 무관히 대체로 풍요롭던 땅이었다. 이러한 고립된 안정성은 삶의 낙관과 함께 내세적 종교관을 지니게 하였고, 30여 왕조가 흥망을 거듭한 역사는 정치적 중심지의 변화에 따라 고(古)•중(中)•신(新)왕국의 셋으로 대별된다.
1. 고왕국 및 제1중간기
- 1~10왕조(B.C. 3100~2040)
나일강 유역에는 B.C. 4000년경부터 함족에 의해 다수의 도시국가가 들어섰으며, 3000년경 나르메르(Narmer)는 상하 이집트를 아우른 최초의 통일 왕조를 형성시켰다. 멤피스를 정치적 중심으로 최고(最古)왕국을 연 그가 황소 신앙을 전파한 이래, 아피스(Apis)는 후계자를 갖는 살아있는 신으로 신전에 모셔졌다. 사후에 지하세계의 신 오시리스와 결합해 혼성신 세라피스가 된다고 믿어져 미라로 만들어졌던 이 황소에 대한 숭배는, 이집트의 구습을 떨치지 못하던 출애굽기 32장의 금송아지 사건과 닿아 있다. ‘이집트인은 세계에서 가장 종교적’이라 말한 헤로도토스의 지적처럼, 범신론(汎神論)적 다신교가 강력히 창궐하던 곳을 유대 땅 지척의 영향권으로 두신 섭리는, 죄의 질곡 가운데 그리스도 은혜만을 갈구하는 겸손한 침묵으로 이끌어 가시는 깊은 경륜을 이해하게 한다.
현존 대부분의 피라밋이 조성된 시기는 고왕국이 시작된 제3왕조 이후 4~5왕조의 전성기인데, 최대 규모인 쿠푸(Khufu) 왕의 피라밋은 230만 장의 돌이 정사각형 밑변을 이루고 147m 높이로 세워진 사각뿔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지상에 현현한 호루스 신으로 자처하던 파라오의 권력은 제1중간기인 7~10왕조기에 지방 세력이 대두하는 불안정 속에 점차 약화되었고, 나일 하류의 삼각주에 유목민이 침입하면서 혼란의 상황은 극에 달하였다.
2. 중왕국 및 제2중간기
- 11~17왕조(B.C. 2040~1560)
테베 출신의 멘투호텝(Mentuhotep) 2세는 우르 제3왕조의 부흥 무렵 다시 이집트를 통일하고 11왕조를 열었다. 12왕조로 이어진 제2의 번영은 200년 이상 지속되었으나, 이후 13~17왕조의 제2중간기가 전개된다. (강력한 왕권의 중앙집권기를 왕국으로, 지방분권의 혼란기를 중간기로 명명한다.) 특히 18세기경부터 삼각주를 장악한 ‘이민족 통치자’ 힉소스(Hyksos)가 15왕조를 세운 이후 한동안의 암흑시대가 도래한다.
3. 신왕국
- 18~20왕조(B.C. 1560~1085)
아흐모세(Ahmose) 1세가 힉소스를 몰아내고 세운 18왕조와 람세스(Ram-ses) 1세가 개창한 19왕조의 통치는 종래의 고립적 기조를 버리고 주변 국가와 패권을 다툰 제국주의 시대였다. 마지막 신왕국인 20왕조를 끝으로 제3중간기 이후의 이집트는 빈번한 외침(外侵) 속에 피정복의 역사를 겪는다. 아시리아와 신바빌로니아에 의한 점령, 아케메네스조와 그리스계 왕조의 등장을 거치며 그 땅에서 왕이 다시 나지 못하게 하신(겔 30:13) 역사는 선지서 예언의 정확성을 확인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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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이재규 집사(자유기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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