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심핫 토라’ 같은 축제 바이블 책거리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 중에 ‘책거리’라는 아름다운 관습이 있었다. 예전 서당에서 아이들이 책 한 권을 다 배우고 나면 훈장과 학동들이 함께 기쁨을 나누며 떡을 나누어 먹고 축하한 풍습이다. 작은 책 한 권을 마쳤지만, 그 속에서 얻은 지식과 깨달음이 얼마나 값지고 귀한지를 알고 있었기에 모두가 한마음으로 기뻐한 것이다.
유대교에도 이와 비슷한 명절이 있다. 바로 ‘심핫 토라(Simchat Torah)’이다. 히브리어로 ‘토라의 기쁨’이라는 뜻을 가진 심핫 토라는 수콧(초막절)의 마지막 날 다음에 이어지는 명절이다. 모세오경(토라)을 연중 주기적으로 읽는 전통에 따라, 1년에 걸쳐 오경을 끝까지 읽고 다시 처음부터 읽기 시작하는 날을 기념한다. 오늘날 이스라엘과 전 세계 유대인 공동체에서는 이날이 되면 토라 두루마리를 품에 안고 일곱 번 회당을 돌면서 노래하며 춤을 추고 온 마을이 기쁨에 넘쳐 축제를 벌인다.
심핫 토라의 역사적 뿌리는 구약 성경 느헤미야 8장에 기록된 한 사건에서 찾을 수 있다.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스라를 통해 율법의 말씀을 듣고 깨달았을 때, 처음에는 자신들의 죄악과 부족함 때문에 크게 슬퍼하고 울었다. 그러나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오히려 이렇게 권면한다.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 8:9-10)
이 말씀대로 백성들은 여호와의 율법을 듣고 깨닫는 것을 슬픔과 부담이 아니라, 오히려 커다란 축복과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율법의 말씀을 읽는 것이 곧 하나님과의 만남이며 삶의 기쁨이자 축제였던 것이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심핫 토라가 시작된 근본정신이다.
바빌로니아 유대 공동체가 1년 주기로 모세오경 전체를 읽는 전통을 확립하면서, 그 마지막 완성과 새로운 시작을 축제로 기념하게 되었다. 9~10세기경, 바빌론 지역의 유대 공동체로부터 시작되었고, 이후 11세기 이후 유럽 유대인 공동체에 전해지면서 크게 활성화되었다. 현대의 심핫 토라는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기쁨과 축제적 요소를 더욱 강조하여, 유대인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 개신교에서도 이러한 말씀 완독의 기쁨을 온 성도들이 함께 나누는 아름다운 전통을 만들 필요가 있다. 성경을 통독하거나 한 권씩 깊이 있게 배우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혼자 하면 때로 지치기도 하고,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교회 공동체가 함께 읽고 나누고 서로 격려하며 말씀의 바다를 건너다 보면 결국 큰 기쁨과 은혜를 얻게 된다. 그렇게 얻은 영적 자산은 결코 작지 않으며, 성도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커다란 영적 성장과 성숙을 가져온다.
오늘날 개신교회가 이 성경의 가치를 더욱 강조하면서도, 성경 읽기를 의무와 부담이 아니라 진정한 기쁨과 축제로 경험하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교회가 매년 일정한 기간을 정하여 성경 완독 운동을 펼치고, 한 해가 끝날 무렵 성경 완독을 축하하는 ‘성경 책거리’ 또는 ‘바이블 책거리’ 같은 날을 만들어, 공동체가 함께 즐거워하며 서로를 축복하면 어떨까? 이날은 단순히 성경을 읽었다는 성취를 축하하는 것 이상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받은 은혜와 감동을 나누고, 그 말씀의 능력이 우리 삶과 공동체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간증하며 함께 나눌 수 있다. 성도들이 손수 만든 떡을 나누거나 다과를 함께하며 말씀을 더욱 가까이하고 사랑하는 전통을 세우는 것이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 119:103)
말씀을 단맛처럼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신앙의 전통이 개신교회 안에도 정착된다면, 젊은 세대들에게도 더욱 매력적이고 흥미롭게 다가갈 것이다. 또 교회의 미래를 짊어질 다음 세대에게 말씀의 중요성과 은혜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사실 개신교의 역사 속에서도 종교개혁가 루터는 성경 번역을 완성한 후 말씀을 신자의 손에 돌려준 일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겼다. 또한 초대교회의 성도들도 사도들의 서신을 회람하면서 그 말씀을 배우고 나누는 것을 기쁨과 특권으로 여겼다. 우리 또한 이 아름다운 신앙의 전통을 새롭게 되살려, 말씀을 배우는 기쁨을 다음 세대에게 생생히 전달해 주어야 한다.
성경을 완독한 날은, 마치 심핫 토라의 축제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더 가까이 만나고, 말씀의 능력을 삶으로 경험했음을 축하하는 기쁨의 날이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개신교의 말씀 중심적 신앙을 다시 한번 깊이 있게 회복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말씀 축제 주간이나 성경 읽기가 끝날 때마다, 성경을 통해 받은 말씀의 기쁨을 축제로 나누고, 새롭게 다시 말씀의 세계로 들어가는 축복을 함께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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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여인갑 장로 (지구촌교회 / (주) 시스코프 대표이사·경영학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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